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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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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압 물줄기로 때린 벽, 남부터미널 반짝이던 그 건물…재료가 바꾼 건축[건축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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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BA 이소정·곽상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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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일루젼(The Illusion) 건물 외벽은 서로 난반사를 일으키는 알루미늄 패널을 사용해 이면도로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을 과시한다. [신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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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서영상 기자]건축가가 프로젝트를 접근하는 방식은 매우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머무는 그 결과물은 논리 보다는 감성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다양한 재료를 통해 건축 속 공간을 이성에서 감성으로 바꾸는 이들이 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OBBA(Office for Beyond Boundaries Architecture) 사무실에서 만난 이소정, 곽상준 대표는 전 직장에서 동료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2012년 설립된 OBBA가 수행하는 모든 프로젝트는 사람과 건축, 그리고 그것과 관계 맺는 일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으로부터 출발한다.

“건축가의 가장 큰 역할은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객과의 오랜 대화를 통해 추상적인 이야기를 정리하고 단 하나의 물리적인 공간으로 창조해 나아가는 과정이 건축인 것이죠. 그 과정에서 공간을 어떤 재료를 통해 만드는 것이 좋을지 항상 고민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오고 있습니다.”(이소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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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남부터미널역 인근. 평범한 건물들 사이로 더 일루젼(The illusion)이 보인다. [신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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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건축가는 “좋은 건축물은 좋은 건축주에게서 나온다”며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우선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예로 서초구 남부터미널역 인근에 위치한 건물 더 일루젼(The Illusion)을 들었다. 건축주는 장소가 대로변에서 살짝 떨어진 이면도로라는 점을 걱정했다. 임대를 목적으로 하는 오피스 건물인 만큼 불특정 다수에게 효율적인 업무공간을 제공함과 동시에 눈에 띄는 건물이라는 확실한 정체성이 있는 것을 원했다. 두 건축사는 알루미늄이라는 소재를 통해 건축주의 ‘니즈’를 구현했다.

15층 높이의 건물은 정면에서 보면 커다란 ‘니은’(ㄴ) 위에 ‘미음’(ㅁ)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구조다. ‘ㄴ’과 ‘ㅁ’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외벽에 불규칙해 보이는 육각형 알루미늄 패널 5000여 개를 다닥다닥 붙였다. 전략은 주효했다. 남부터미널역 인근의 천편일률적인 타워형 구조 빌딩들 사이에서 이 건물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통해 앞 대로변의 다른 건물과의 원근감을 무시하고 존재감을 과시했다. 거울 효과가 나는 알루미늄 패널이 서로에 난반사를 일으켜 멀리서 봐도 빛이 난다.

이 대표는 “주위의 환경들과 조화를 이뤄 돋보이지만 튀지 않게, 독특한 소재를 시도하지만 경제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알루미늄을 선택했고, 또 어떻게 가공할지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작업이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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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BA(Office for Beyond Boundaries Architecture) 이소정·곽상준 대표. [OB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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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콘크리트다. 두 건축가의 재료에 대한 철학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건물이 서울시 중구 신당동에 있는 청바지 도매 의류회사의 사옥이다. 건물은 신당동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다. 클라이언트와의 대화를 통해 극도의 간결함 속에서 청바지 회사 사옥이라는 정체성을 나타내고 싶었다.

이 대표는 “다양한 워싱을 통해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청바지라는 소재가 흥미로웠다”며 “청바지 소재를 콘크리트에 빚대 동일한 재료지만 다양한 거푸집을 사용해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건물은 세개의 각기 다른 회색빛 박스가 위로 쌓여져 있는 모습이다. 외벽 콘크리트를 ‘워싱’하기로 했다. 1, 2층 외벽의 콘크리트 거푸집은 나무 부스러기를 접착제와 혼합해 압착시킨 OSB합판으로 짰다. 표면에 코르크의 질감을 남기는 재료다. 3, 4층은 콘크리트가 완전히 굳기 전에 고압 살수 장치로 물줄기를 쏴 거친 질감을 불규칙하게 표현했다. 긁거나 찢어 맵시를 내는 청바지 원단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5층은 보통의 깔끔한 노출콘크리트 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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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구 신당동에 있는 청바지 도매 의류회사의 사옥. 콘크리트를 세가지 방식으로 가공해 각 매스(Mass)마다 다른 질감이 나타난다. [신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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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대표는 “수압을 이용한 콘크리트 가공방식은 기존에 없던 방식이었지만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거친 질감을 표현하고자 했지만 콘크리트 치핑(chipping) 장치를 주택가인 신당동에서 사용하는 것은 소음과 분진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죠. 그때 고안한 방법이 수압을 이용한 가공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전라북도 완주에 있는 노부부의 시골 주택은 자연을 닮은 건축물로 만들고자 했다. 장소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측으로는 대나무 숲이 자리 잡고 있었다.

건물의 외관은 대나무를 주재료로 사용했다. 1층은 대나무를 거푸집으로 사용한 노출콘크리트 방식으로, 2층은 대나무를 구워서 강성을 높이고 색상을 검게 그을려 외장재로 붙이는 방식을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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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에 있는 노부부의 시골 주택. 외장재에 인근 대나무 밭의 대나무를 사용했다. [신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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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건축방식이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대나무가 자연 속 재료인 탓에 그 크기나 퀄리티도 일정하지 않아 일일히 직접 가서 고르고 선정하는 작업을 거쳤다. 이 대표는 “서울이었다면 이같은 (무모한)시도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 말하고 웃으며 “자연과 다양하게 관계할 수 있는 공간을 찾고자 집중했던 프로젝트였다”고 소개했다.

재료에 대한 고민과 재해석은 그들이 그간 선보인 설치작업에서도 빛이 났다. OBBA는 2018년 벨기에 브루게 트리엔날레에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초대됐다. 두 건축가는 브루게 시내 북부 지역 운하에 인공 구조물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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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게 시내 북부 지역 운하에 설치한 인공 구조물. 플로팅 아일랜드. 로프를 사용해 지나가는 시민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했다. [신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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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로프를 이용해 그네를 타기도 하고 해먹에 누울 수도 있어 휴식과 놀이, 산책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 구조물이다. 작품의 소제목은 ‘Beyond Boundaries(경계를 넘어서)’로 정했다. 이 대표는 “과거 무역의 수단으로 쓰였던 운하에 곡선의 인공 구조물을 세워 시민과의 경계를 없애 그들이 즐길 수 있도록 했다”며 “물리적인 경계를 넘어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경계를 만드는 시도”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자신을 ‘고생을 자처하는 건축가’라고 표현했다. 매번 새로운 재료와 가공 방식을 고민하다 보니 디테일을 해결하기 위해 CMF(color·material·finish, 컬러·소재·마감)를 다시 공부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곽 대표는 “일상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통해 디자인이 나온다는 점이 순수예술과 건축의 다른 점인 것 같다”며 “일상에 대한 삐딱한 시각으로 엉뚱한 상상을 지니고 살며 앞으로도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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