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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한글 자막 입힌 '한산'·'우영우'…청각장애인 '콘텐츠접근권' 확대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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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산'에 한글 자막 등장

김한민 감독 "엄청난 고민 끝에 용기 낸 시도"

한글 자막 제공하는 OTT에 익숙해진 콘텐츠 소비자

청각장애인 콘텐츠접근권 보장 관련...입법 통해 확대해야

아시아경제

박해일·변요한 주연의 '한산: 용의 출현' 대형 전광 포스터. 사진은 지난 1일 서울 한 영화관의 영화 홍보물.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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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군찬 인턴기자]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한글 자막이 등장하고 있다. OTT(Over The Top·인터넷으로 영화, 드라마 등 각종 영상을 제공하는 서비스)의 확산으로 한글 자막에 익숙해지는 콘텐츠 소비자가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청각장애인들의 콘텐츠접근권 보장을 위한 수단으로, 한글 자막 제작이 더 활발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달 27일 개봉해 누적 관객 450만 명을 넘어서며 흥행에 성공한 '한산:용의 출현'은 극장용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한국어 대사에 한글 자막을 입혔다. 영화 후반부 조선 수군의 해상 전투장면과 의병의 육상 전투장면에서 자막이 등장한다. '발포하라'라는 이순신 장군 역의 배우 박해일의 대사가 기존 자막과 같이 스크린 하단에 등장하는 방식이다.

한산을 제작한 김한민 감독은 언론사 인터뷰에서 한글 자막에 대해 "엄청난 고민 끝에 용기 낸 시도"라며 "본질에 충실하면서 생생한 전쟁의 밀도감을 표현하기 위해 자막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관객들은 한국어 대사를 한글 자막으로 처리하는 신선한 시도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 주말 영화관에서 한산을 관람했다는 대학생 김모씨는 "평소 한국 영화를 볼 때 대사가 무슨 말인지 잘 안 들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에는 전투 장면 사운드가 커도 밑에 자막이 있어 인물들의 대사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온라인 영화 커뮤니티에서도 "전혀 이질감 없이 나온 지도 모르게 쓱 지나가서 좋았다", "전체 자막은 별로지만 잘 안 들리는 곳엔 일부 자막을 넣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전문가는 관객이 한글 자막의 효과를 느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관객들의 반응에 대해 "자막은 몰입감을 깰 수 있는 요소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독이 자막을 쓴 이유가 있는 것"이라며 "실제 자막 효과가 있어 많은 관객들이 거기에 대해 호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자막은 팬과 관객을 배려하는 것"이라며 "자막을 통해서 친절하게 배려하는 모습, 전달력을 높이는 모습은 다른 장르에 비해 늦었지만 반갑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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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의 대사뿐만 아니라 문이 닫히는 소리 등 해당 장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소리가 한글 자막으로 처리되는 폐쇄형 자막이 사용된다. /사진=ENA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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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표준어 대사에 한글 자막이 입혀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모가디슈', 2020년 개봉한 '강철비 2: 정상회담'과 올해 방영된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등에서 북한말과 제주도 방언 대사 정도에 한글 자막 처리가 이뤄졌을 뿐이다.

한글 자막을 제공하는 OTT에 익숙해진 관객들이 영화·드라마계의 불문율을 깨고 등장한 한글 자막에 호응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현재 대부분의 OTT는 제공하는 콘텐츠 수의 차이는 있지만 한글 자막 서비스를 지원하는 중이다.

넷플릭스는 대부분의 콘텐츠에 한글 자막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 따르면 8일 기준 넷플릭스 화면해설 프로그램은 총 130종(1327편)이다. 특히 자국에서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에 한해서는 모든 소리를 자막으로 보여주는 '폐쇄형 자막'까지 제공하고 있다. 가령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의 대사뿐만 아니라 문이 닫히는 소리 등 해당 장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소리가 한글 자막으로 처리되는 방식이다.

웨이브, 왓챠 등 국내 OTT 업체도 한글 자막이 포함된 콘텐츠를 늘리는 추세다. 왓챠의 경우 현재 240여 편에 한글 자막을 제공하고 있고, 웨이브는 한글 자막을 추가로 적용한 콘텐츠 수를 12개로 늘렸다.

정덕현 평론가는 콘텐츠 소비자가 한글 자막에 익숙해지는 현상에 대해 "영상 콘텐츠 소비 자체가 글로벌해지면서 봉준호 감독이 말한 '1인치 장벽'이 깨지고 있다"며 "자막이 소비자에게 이물감으로 다가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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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 장애인들이 상영관에서 자막 서비스가 제공되는 안경을 쓰고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제공=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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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OTT 업계에서의 한글 자막 서비스는 단순히 시청자 편의를 위해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청각장애인들의 콘텐츠접근권 보장과도 관련이 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자막 서비스와 관련해 OTT 업계의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영화계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김철환 장애벽허물기 활동가는 "영화발전기금을 통해서 지원하는 형태로 한글 자막을 제작하는 상황"이라며 "예산이 한정돼 있어 공공기금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현재 영화 제작사가 한글 자막을 제작해야 한다는 내용의 입법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영화를 제작할 때 의무적으로 한글 자막을 만들게 해 제작 과정 중 일부분으로 포함하는 형태로 정책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관련해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2일 발행한 '2022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OTT의 배리어프리 활성화'가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이슈 중 하나로 선정됐다. 장애인의 OTT 폐쇄 자막 등 구매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과 배리어프리 콘텐츠 확대를 위한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 정립이 필요하다는 게 입법조사처의 분석이다.

김군찬 인턴기자 kgc600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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