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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취재파일] 감사원과 전현희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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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희 특별감사, 8월 중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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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이 국민권익위원회에 대한 본 감사에 착수한 지 14일째 접어들었습니다. 피감기관 수장인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 2주간 감사원의 특별감사를 비판하는 글을 본인 명의의 SNS 계정에 잇따라 게재해 오고 있습니다. 오늘(14일)까지 게재된 관련 글은 모두 9개에 달합니다. "권익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게 해달라", "감사원의 고래사냥에 전현희가 표적이 됐다", "망신주기식 감사로 수치감과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권익위 유권해석은 법령과 원칙에 기한 엄격한 해석이다" 등의 내용입니다. 가장 최근에는 권익위 내부 고발자의 고발 의도와 관련해 "승진을 원한다"라며 정치적 추정(해석)을 덧대기도 했습니다. 감사원을 비판하는 글을 언제든 추가로 게재할 수 있어 보입니다. 피감기관장이 나서 감사원의 감사에 맞불을 놓으며 역습을 위한 방어 겸 반격 전선을 견고히 구축하고 있습니다.

전현희 특별감사…무엇을 확인하고 있나?



먼저, 감사원이 권익위에 대한 감사에서 진위(眞僞 : 참과 거짓)를 가려내고자 하는 의혹이 어떤 내용인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익히 잘 알려진 건 '근태' 관련 의혹입니다. 이에 대해 전현희 위원장은 앞서 언급했듯 장관급 인사의 근태를 감사하는 것은 다른 장관들과 비교했을 때 형평에 어긋나고 부당하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번 감사는 조국 전 법무장관과 추미애 전 법무장관 관련 사건에 대한 권익위의 유권해석 과정이 적절했는지 여부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그 과정에 윗선의 부당한 영향력이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입니다.

권익위는 지난 2020년 9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2020. 01. 02 ~ 2021. 01. 27) 아들의 군 휴가 특혜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와 추 장관의 직무가 이해 충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렸습니다. 당시 추 장관 아들 군 휴가 특혜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지휘 라인에 김관정‧이종근 검사 등 이른바 '추미애 사단'이 배치돼 비판이 일기도 했는데, 전현희 위원장은 당시 검찰로부터 "장관에게 수사 내용을 보고하거나 지휘받지 않았다"라는 입장을 전달받아 이같이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은 이후 추 전 장관과 추 전 장관 아들을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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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사진=국민권익위원회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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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희 위원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재임 당시(2019. 09. 09 ~ 2019. 10. 14) 부인 정경심 씨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이러한 논리를 적용하면 이해 충돌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직무 관련성이 있어서 업무 배제 처분도 가능하다는 의견을 낸 박은정 전임 위원장과는 상반된 의견을 냈습니다.

권익위 내부고발자들은 이러한 유권해석의 결론을 사실상 미리 정해 놓고 판단 과정에 부당한 영향력이 있었다는 취지의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감사원은 이들의 제보를 토대로 의혹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유권해석 과정에서 어떤 판례를 준용했는지 어떤 법리를 적용했는지 어떤 데이터를 활용했는지도 조사하고 있습니다. 한 감사원 관계자는 "당시에도 국회에서 충분히 의혹이 제기됐었고 내부 제보까지 들어왔는데 감사를 안 할 수도 없다. 들여다 보고 결론으로 말하겠다"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3년 전, 여‧야 합의로 이뤄진 원전 감사 때도 감사원은 산업부 등이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불리한 자료를 제외하거나 삭제하는 등 사실상 결론을 정해 놓고 평가를 왜곡한 부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과정에 따라 결론이 바뀔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둬야 하는데 원치 않는 결론이 나오면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이 '죽을래?'라고 힘을 행사하며 결론을 강요하다 보니 산업부 공무원들의 위법 부당한 행위들이 이어졌습니다. (참고로 탈원전 방향은 보기에 따라서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감사원은 정책의 당부(當否 : 옳고 그름)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게 아니라 그러한 판단 과정에 공무원들이 법규를 어긴 부분을 중점적으로 감사했습니다.)

이번 권익위 특별감사 과정에서 감사원이 명확한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느냐도 관건입니다. 원전 감사 때는 공무원들의 위법 부당한 행위에 대한 진술과 증거가 충분해 재판에까지 넘길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번 권익위 감사에서 내부자들의 제보나 의혹 제기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치 않을 경우 또는 전현희 위원장 설명대로 만약 제보자들이 승진을 위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거나 이러한 목적에 따라 증거나 정보를 오염 시킬 경우 감사원의 감사가 추후에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묵과할 수 없는 제보"라고 하더라도 면밀히 따져봐야 합니다. 모든 정보에는 독(毒)이 있기 마련입니다. 전현희 위원장은 줄곧 "권익위 유권해석은 법령과 원칙에 기한 엄격한 해석이다"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감사원이 전현희 위원장의 말을 반박할 수 있는 사실관계를 확립하고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느냐, 오염된 정보를 가려내느냐에 이번 감사의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전현희의 딜레마 : 내부고발자



한 감사원 관계자는 "감사원의 감사를 반기는 피감기관이 어디 있나. 의혹이 어떻든 통상 피감기관은 감사원의 감사에 반발하기 마련이다. 감사원과 피감기관의 긴장 관계는 불편하지만 당연하고 어떻게 보면 건강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중순 시작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원이 지난 20대 대선 당시 불거진 '바구니 투표'와 관련해 선관위의 투표 관리 업무에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살피겠다고 하자, 선관위는 과한 처사라며 반발했습니다. 대법관 출신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은 지난 5월 13일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당 백혜련 의원의 관련 질의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선관위는 (직무감찰 대상에)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변명의 여지없이 잘못한 것이지만…."


노정희 선관위원장 시절 선관위가 잘못은 했지만 중앙선관위에 대한 감사원의 직무감찰은 과하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권익위의 반발은 산업부나 선관위와 비교했을 때 반발 방식에 차이가 있습니다.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이나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감사원에 직접 항의를 했습니다. 전현희 위원장은 이에 더해 여론에 적극 호소하고 있습니다. 억울한 마음을 담아 여론에 호소하는 것도 정당한 방어권 행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나 전현희 위원장 입장에서는 이 위기가 정치인으로서의 몸집을 키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본인에 관한 불리한 의혹이라 하더라도 이름이 여러 차례 언급되는 게 중요하다. 정치인에게는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좋은 이슈든 나쁜 이슈든 굳이 가릴 이유가 없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전현희 위원장이 적절한 방어권을 행사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섣불리 내부고발자를 추정케 할 수 있는 발언이나 정치적 해석을 덧댄다면 권익위가 괜한 오해만 더 살 수 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내부고발자 보호기관입니다. 전현희 위원장은 최근 자신의 SNS 계정에 "또 언론에 보도된 민주당의 지적처럼 용산 대통령실과 '윤핵관' 그리고 승진을 원하는 권익위 고위관계자 제보 등 삼각편대로 이뤄진 권익위원장 사퇴와 승진과 당권구도 정리라는 모종의 정치적 거래에 감사원이 동원된 하명 청부감사라는 정치권의 의혹도 제기된다"고 밝혔습니다. 전현희 위원장 입장에서 누군지 추정되더라도 이를 반복 언급하면 결국 제보자가 누군지 관심을 갖게 만드는 셈입니다. 내부 고발자의 신분은 비공개 대상이며, 조직 내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참조 ▶ 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 '내부고발자를 지키기 위한 노력' 中 : "신고자의 신분은 비밀에 부쳐지며 … (중략) …직장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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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의 딜레마 : 중립성



감사원은 이번 특별감사를 8월 중 끝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감사원이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감사원 입장에서는 감사 방향 또는 취지가 옳다고 해도 최근 잇따라 불거지는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뼈 아프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100일이 다 돼 가는데 그간 감사원은 정권과 같이 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서해피살‧강제북송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비롯해 문재인 정부 인사에 대한 의혹에 대한 감사 비중이 높다 보니 의구심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전 정권에서 불거졌던 의혹이 그만큼 많아서 일 수도 있고 이러한 연유로 유병호 사무총장은 '새 정권에도 똑같이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겠다'라고 공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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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호 사무총장-최재해 감사원장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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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말이 무색하게도 지난달 29일 최재해 감사원장이 국회 업무보고에서 '감사원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 한다'라고 실언을 하며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습니다. 김도읍 위원장조차 귀를 의심케 한다고 반응했습니다. 감사원법 상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라고 돼 있습니다. '대통령 소속 기구'라는 문구는 사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대통령에 소속하되'라는 문구에 방점을 둔다면 감사원의 중립성과 독립성은 후퇴하게 됩니다. 최재해 원장도 누구보다 이를 잘 알기 때문에 지난해 11월 15일 취임하면서 "중립성이 핵심 가치"라고까지 했습니다.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면, 언행에 보다 신중했어야 합니다. 감사가 진행 중일 때 지휘부는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해야 합니다. 뱉어버린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특히나 국회에서 한 실언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앞으로 진행될 감사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결국 그 부담은 고스란히 현장에서 뛰는 일선 감사관들의 몫이 됩니다.
배준우 기자(gat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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