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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불탄 이웃, 잿더미된 가족…퐁니마을 학살 생존자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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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2월 베트남 퐁니·퐁넛마을서 민간인 70여명 사망

한국정부는 부인…서울행정법원, 자료공개 판결했지만 국방부·국정원은 거부

생존자 응우옌티탄, 2020년 한국법원에 손해배상소송 청구…9일 증언

미군 진상조사보고서는 가해자로 한국군 지목

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노컷뉴스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 씨가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국가배상 소송 법정 진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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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 씨가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국가배상 소송 법정 진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 나오면 수류탄 던진다."

쌍커풀 없는 눈에,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이 방공호에 숨어있던 사람들에게 외쳤다. 사람들이 나오기를 주저하자 군인은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는 듯한 소리를 냈다. 한 소년이 방공호에서 나왔고 군인은 바로 총을 난사했다. 그 다음 소녀가 올라왔고 총탄에 쓰러졌다. 군인은 한명씩 방공호에서 나오는 족족 바로 총을 쐈다. 마지막으로 아기를 안은 여성이 방공호에서 나오자 군인은 집에 불을 붙이려고 했고, 여성이 이를 막으려고 하자 총검으로 찔렀다. 8개월된 아기와 그 엄마는 즉사했다. 소년과 소녀는 죽은 척 하다 군인들이 집을 떠나자, 볏짚으로 기어가서 몸을 숨겼다.

총에 맞아 쓰러졌던 8살 소녀 응우옌티탄(62)씨는 지난 9일 한국 법정에서 퐁니 마을 학살 현장을 증언했다. 그는 한국군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1대대 1중대 소속 군인들이 1968년 2월12일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 마을에 들어가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 70여명을 학살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지난 2020년 한국정부를 상대로 3000만원을 배상하라며(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사건 직후 이뤄진 주월미군사령부 감찰부의 조사보고서를 보면 티탄씨 말대로 퐁니마을에서 민간인 학살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학살 직후 미군이 찍은 사진에는 신체 곳곳이 훼손된 채 숨진 베트남 민간인과 잿더미에 묻힌 시신, 시체더미가 담겨 있다. 시신 주변에 총알 자국이 없다는 점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총에 맞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정부는 "확인되지 않은 사건"이라고 부인한다. 가해자가 한국군으로 위장한 베트콩(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라는 것이다. 베트남전쟁 중 자행된 민간인 학살 중 가장 악명높은 '미라이 학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초기 반응과 비슷하다. 정부는 이번 소송에서 △양국 진상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 △베트남정부의 반대 △한국정부에만 배상을 청구한 점 등을 내세우고 있다.

한국어로 대화한 군인들…가해자가 베트콩일 수 있다는 정부

노컷뉴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로 알려진 응우옌티탄씨(오른쪽)와 당시 피해 현장을 목격한 응우옌득쩌이 씨(왼쪽)가 8일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방문, 정근식 위원장과 면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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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로 알려진 응우옌티탄씨(오른쪽)와 당시 피해 현장을 목격한 응우옌득쩌이 씨(왼쪽)가 8일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방문, 정근식 위원장과 면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9일 재판에서는 티탄씨와 삼촌 응우옌득쩌이(82)씨의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먼저 득쩌이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그는 학살 당시 망원경과 맨눈으로 현장을 목격했다. 양측 신문은 물론 재판부의 질문도 총을 쏜 가해자가 한국군이 맞는지를 규명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득저이·티탄 모두 군인의 외모와 행색, 언어가 한국인이었다고 각각 증언했다. (※당사자 증언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득쩌이씨와 티탄씨는 분리돼 증언했다)

2022. 8. 9 응우옌득쩌이·티탄 증인신문
원고 측 대리인: 증인은 학살 장면을 맨눈으로 보고 망원경으로도 봤다. 퐁니마을 학살한 군인들이 대한민국 군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나.

득쩌이(통역): 네, 맞습니다

대리인: 증인은 그들이 대한민국 군인으로 위장한 베트콩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나?

득쩌이: 얼굴이 다르고 눈도 달랐다. 지금 여기 법정에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생겼다.

대리인: 사건을 벌인 사람들이 한국군이라고 기억하는 이유가 뭔가.

티탄(통역): 한국군인은 얼룩무늬 군복과 철모를 쓰고, 그냥 막 못 알아듣는 소리를 냈기 때문에.

대리인: 한국 군인의 외형적 특징을 잘 알고 있었는가.

티탄: 네, 당시 한국 군인들은 쌍커풀 없는 눈이 특징이었다.

정부 주장대로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아 게릴라전을 펼쳤던 베트콩이 종종 '덕 헌터(duck hunter)'로 불리는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민간인을 살해했던 사실은 미군 보고서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확인된다. 그러니 퐁니마을 학살 가해자도 한국군 전투복을 흉내 낸 사제 전투복을 입은 베트콩이 저지른 소행이라는 것이 정부 측 주장이다. 반면 득쩌이씨와 티탄씨는 전투복 뿐만 아니라 얼굴 생김새는 물론 군인들이 한국어로 대화를 나눴다는 공통된 증언을 내놨다.

국내에도 당시의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자료가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18년 서울행정법원은 학살 뒤 중앙정보부에서 신문한 청룡부대원들의 자료를 공개하라고 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베트남 당국과의 공동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고, 국정원은 "외교상의 파장이 있을 것"이라며 공개를 거부했다. 국방부는 자료가 없다고 했지만, 국정원은 외교적 문제가 있을 것이라며 공개를 거부한 다소 의아한 상황이다. 티탄씨가 소송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다.

한국정부에만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타당한가

노컷뉴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씨(오른쪽)와 목격자 응우옌득쩌이씨(오른쪽두번째)가 한국 정부의 책임 인정과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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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씨(오른쪽)와 목격자 응우옌득쩌이씨(오른쪽두번째)가 한국 정부의 책임 인정과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재판에서는 원고가 한국정부에만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사실도 쟁점이 됐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사과 의사를 밝히자 이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 이전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간인 학살에 대해 배상 의사를 밝혔지만 거부당했다. 베트남에서는 북베트남에 의한 남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양국 정부의 진상조사가 이뤄지고 있지 않은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남베트남 출신인 원고가 북베트남의 후신인 현 정부에 소를 제기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감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1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법정에 한국 참전군인들 분들도 와 있었다. 옛날 생각이 나면서 많이 긴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왜 원고가 자국에서는 아무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한국에서만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는지 따져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2022. 8. 9 응우옌득쩌이 반대신문
피고 측 대리인: 퐁니마을 주민들이 베트남 정부나 법원에 소를 제기한 것에 대해 알고 있나.

득쩌이(통역): 소송은 하지 않았다.

대리인: 혹시 왜 소송을 하지 않았는지 아는가.

득쩌이: 남베트남에서 일어났던 일이라 소송하지 못했다.

재판부: 그게 무슨 얘기인가.

득쩌이: 베트남은 그 당시 분단됐었고, 해방 뒤에 (북베트남 주도로) 베트남 정부가 세워졌다. 남베트남은 해방되지 않은 지역이었다.

재판부: 왜 소를 제기하지 않았나.

득쩌이: (북베트남 정부의 후신인 현 정부가) 무서워서 하지 못한 것 같다. 만약에 (전쟁에서) 남베트남 정부가 이겼다면 소송을 제기했다. 베트콩이 이겼으니까 소송을 제기하지 못했다.

생존자의 절규…"왜 엄마만 죽고 나는 안 죽였나"

노컷뉴스

총상으로 생긴 응우옌 티 탄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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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상으로 생긴 응우옌 티 탄의 상처
한국군이 얼마나 잔혹하게 학살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도 나왔다. 득쩌이씨는 마을 두 곳에 쌓여있던 시체더미에는 아직 숨이 붙어있던 아기도 두 명 있었다고 했다.

원고 측 대리인 임재성 변호사는 물론 여러 역사학자들은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 학살이 유독 잔인했던 이유로 '보복 공격'을 꼽는다. 퐁니마을의 경우에도 마을에 잠입한 베트콩이 한국군을 향해 총탄을 한 발 쏴 학살당한 경우다. 격분한 한국군이 공포심을 심기 위해 이른바 '킬링 컴퍼니'를 동원해 더욱 악랄하게 학살을 했다는 것이다.

2022. 8. 9 응우옌티탄 증인신문
원고 측 대리인: 원고 가족들이 방공호에서 나온 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상세히 진술해 달라.

티탄: 오빠(당시 15세)가 올라가자마자 총을 막 쐈다. (중략) 오빠가 먼저 올라가고 그 다음에 (방공호에 남아있던) 저희가 올라갔다. 올라가는대로 총격을 받았다. 저는 총에 맞아 쓰러져 있었다. 그 뒤로 이모가 자식들을 안고 올라왔고, 한국군인은 집을 불 태우려고 했다. 이모는 군인들을 말리다 총검에 팔을 여러 차례 찔렸다. …왜 엄마만 죽이고 저는 죽이지 않았을까.

(중략)

재판부: 재판부에 하고싶은 말 있으면 하라.

티탄: 저는 생존자입니다. 제 발 앞에서 한국 정부가 사실을 인정하길 원한다. 사실대로 판결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미라이 학살'의 주범 윌리엄 캘리 중위는 40여년이 지난 뒤에야 "미라이에서 있었던 일을 후회하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다"고 사과했다. (※퐁니·퐁넛 학살은 '한국판 미라이 학살'로 불린다)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데 수십년이 걸린 까닭은 캘리 중위 스스로 어린아이를 포함한 민간인을 잔인하게 사살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J.M. 캄파넬리 당시 미 해병대 소령은 진상조사보고서에 "한국군이 퐁니마을에 사과하는 뜻에서 30 가마니의 쌀을 줬다"고 기록했다고 한다. 기록이 사실이라면 한국군과 정부가 70여명의 민간인 학살을 어느 정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근현대사에서 오롯이 피해자의 처지에만 놓여봤던 힌국이 처음 가해자의 위치에 선 낯선 경험이기도 하다. 54년 전 자국 군대에 의해 베트남 민간인들에 대한 학살이 이뤄졌는지를 판단해야하는 쉽지 않은 과제에 재판부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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