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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586=기득권=민주당=불공정=진보=위선이란 ‘담론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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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586과 청년정치

청년정치, 내용 없는 이름에 불과

정치권·언론 담론공세 산물일 뿐

‘586’을 진보 향한 욕설로 쓰며

진보·민주 vs 청년 구도 만들어


한겨레

지난달 8일 국민의힘 당 윤리위원회에 출석했던 이준석 대표.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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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징계 처분을 받고,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은 당권 도전 관련하여 얼마간 잡음을 일으키고 자당 지지자들의 싸늘한 시선만 남겼다. 평단에서는 이들을 두고 ‘청년정치의 위축을 우려한다’거나 ‘청년정치가 후퇴, 실패, 폐기됐다’느니 이야기를 한다. 동의하기 힘들고,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다. 위축된 것은 저 두 사람이지, 청년정치가 위축된 게 아니다.

무엇보다 ‘청년정치’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제대로 논의된 바가 없다. 적어도 현재 한국의 지배적인 정치담론에서는 말이다. 단지 만 40살 미만의 정치인이 하는 정치를 청년정치라고 하는 거라면, 이것이 모종의 이유로 망했다느니 후퇴했다느니 논하는 것은 다소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매스컴의 가시권에서 ‘활약’하는 몇몇 젊은 정치 셀럽들이 있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데서부터 천천히 훈련받고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을 묵묵히 수행하는 젊은 정치인들도 있다. 대체로 언론이나 평단, 정치권에서 청년정치를 거론할 때 젊은 셀럽의 정치만을 염두에 두는 듯하다. 요컨대 현재 한국의 지배적인 정치담론에서 ‘청년’ 및 ‘청년정치’라고 말하는 것과 실제 청년 및 청년정치 사이에는 작지 않은 차이가 있다.

보수언론과 정치세력의 담론공세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한국 정치담론에서 말해지는 청년정치라는 것은 내용 없는 이름에 불과하다. 이 이름은 지난 2~3년 동안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끈질기게 진행되어왔던 담론공세의 부산물이다.

정치권과 언론의 담론공세는 현재 삼척동자에게도 일종의 멸칭, 욕설과 다름없이 쓰이고 있는 ‘586’이라는 말과 결부된다. 신진욱 교수가 <그런 세대는 없다>에서 인용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34살 미만의 청년 중 44%가 ‘586’이라는 말 자체를 잘 모른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586세대는 한국사회의 기득권세력이다’라는 문항에 응답자 80%가 동의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제대로 아는 것은 없으면서 ‘586’이라는 이름에 대한 반감만 잔뜩 가진 것이다.

주지하듯 1980년대 대학생 신분으로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운동가 및 이론가 상당수가 90년대 말부터 제도정치권과 학계에 진출함에 따라 이들을 가정용 피시(PC)의 중앙처리장치(CPU) 모델명에 빗대어 촉망받는 차세대 리더로 집단 호명한 것이 ‘386’이라는 용어다. 일종의 정치 유망주였던 저 사람들을 2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무리하게 머리숫자를 바꿔가면서 집단으로 묶어 호명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정치권과 언론은 끈질기게 486, 586이라는 이름을 부르기를 고집하는데, 그러한 호명이 갖는 효과가 자신들에게 매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 효과란, 586이라는 이름에 함축된 운동권의 역사와 함께 60년대생이라는 사실과 기득권이라는 관념을 동시에 상기시키는 것이다. 그로써 오늘날의 사회적 악조건들, 사회경제적 문제에 관련한 불만을 세대론적인 불만으로 축소시키고, 그 불만을 운동권 출신이 다수 포진한 것으로 알려진 문재인 전 정권과 민주당 세력을 향하게끔 유도할 수 있었다. 그렇게 586이라는 이름이 보수세력과 언론의 담론공세에 의해 민주당 세력을 공격하는 용어로 ‘무기화’되었기 때문에, 보수세력에도 운동권 출신에 60년대생이 다수 있지만, 이들을 가리킬 때 586이라는 말은 사실상 쓰이지 않는다.

한겨레

지난달 18일 더불어민주당 대표 선거 후보자 등록에 나섰던 박지현 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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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공세의 결정적 계기는 2018년 평창겨울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한 청년세대의 유다른 반발이었고, 보수세력은 이 반발을 기회로 십분 활용하고자 ‘불공정에 분노하는 청년들’을 호명하고 586을 청년의 적으로 제시했다. 그로써 획책한 효과는 30대 이하 청년들을 반정부, 반진보의 첨병으로 징병하는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소위 ‘분노하는 청년’의 몇몇 목소리가 과잉대표되기 시작했고 언론과 정치권이 앞다퉈 청년의 입을 빌려 복화술 잔치를 벌였다. 역량 미달의 ‘청년정치인’의 별것도 없는 발언에 언론이 주목하며 억지로 셀럽의 그것으로 만들어낸 것도 이 맥락에 있다.

보수세력과 언론의 담론공세는 ‘586=기득권=문재인 정권=민주당=진보세력=불공정=위선=무능’이라는 담론사슬을 형성했다. 다시 말해 저 단어들 중 하나만 거론되면 나머지 단어들이 동시에 상기되는 의미의 연결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586에 맞선 반대 진영에는 ‘청년=2030=엠제트(MZ)세대=공정성에 민감한 세대=불공정과 위선에 분노하는 세대’를 만들었다. 이렇게 청년세대는 반진보 반민주당의 첨병, 핵심 병기로 동원됐다. 요컨대 지금 한국의 정치담론에서 ‘청년’이라는 이름은 보수세력과 언론의 담론공세의 산물이다. ‘청년정치’는 부산물이다.

따라서 청년정치라는 이름이 어떻게 형성됐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관한 고찰 없이 청년정치를 표방하고 나서면 역효과를 피할 수 없다. 지금 담론에서 청년정치는 보수세력에 유리한 기표다. 그러므로 진보정치의 장 안에서 청년정치를 표방한 메시지를 내면 종국에는 진보진영에 대한 공격으로 되돌아온다. 아무리 진보적인 가치를 지닌 메시지일지라도 그것이 청년정치의 표피를 쓰고 발화되면 보수정치의 알리바이가 된다는 것이다. 청년정치가 공정을 말하면 언론보도를 경유하여 ‘불공정한 진보’를 공격하는 레토릭이 되고, 청년정치가 위선을 규탄하면 ‘진보의 위선’을 공격하는 것이 된다. 처음부터 보수세력을 겨냥한 메시지일지라도 청년정치의 발화는 아주 정교한 워딩이 뒷받침하지 않는 한 세대론적인 메시지로 희석되기 마련이다. 결국 586에 대한 공격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정치권과 언론, 논단에 의해 청년정치의 세례를 받고 발언권을 얻은 청년정치인이 셀럽으로 성장하면 할수록 자당 지지율이 떨어지는 이유가 이것이다.

‘청년=반진보’ 만들어진 굴레 벗어야


진보진영에서 청년정치가 제 기능을 하려면 먼저 청년정치라는 기표의 굴레를 벗어야 한다. ‘586=진보=불공정’의 안티테제로서 ‘청년=반진보’라는 인위적으로 꿰어진 담론사슬이 굴레다. 굴레를 벗지 않고서는 청년정치라는 이름의 주먹을 날려봤자 자기 얼굴을 때리게 된다. 현재 ‘청년정치가 실패’했다는 것은, 586이 청년에게서 기회를 빼앗았고, 그 기회를 청년이라는 이유로 본인이 마땅히 가져야 한다는 사이비 세대론을 자기 정치의 당위와 알리바이로 삼는 행태에 동의하는 유권자가 더 이상 없음을 말한다.



첫 책 <프로보커터>에 이어 <급진의 20대>를 썼고, <인싸를 죽여라>를 번역했다. 한국의 20대 현상과 좌파 포퓰리즘, 밈과 인터넷커뮤니케이션 같은 디지털 현상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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