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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 만드는 거대한 빗물저장소, ‘대심도 저류배수시설’이 대도시를 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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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가 도심 지역의 수해를 막기 위해 지하 43m 지점에 건설한 ‘간다천·환상7호선 지하조절지’의 내부. 지름 12.5m, 길이 4.5㎞ 규모의 거대 터널 형태로 건설된 이 조절지는 한 번에 54만t의 물을 담아놓을 수 있다. | 도쿄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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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일상으로 만든다. 서울에 이틀간 524㎜가 내린 폭우는 분명 이례적이지만, 빈번해진 현상이기도 하다. 기상이변으로 발생하게 될 재난의 크기에 대한 경고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존재했다. 대심도 빗물저장시설과 대심도 배수터널은 심각해지는 위기를 겪을 때마다 등장했던 대안이다.

13일 서울시에 따르면 5년 내 강남역·도림천·광화문 일대에 대심도 빗물저류배수시설이 건설된다. 시간당 110㎜ 폭우를 감당할 규모인 강남역은 3500억원, 100㎜ 폭우에 대비하는 도림천은 3000억원의 사업비가 들어간다.

이들 지역은 상습 침수 위험 지역으로 2011년에도 대심도 배수터널이 논의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시 서울시는 신월·신대방역(도림천)·강남역·사당역·삼각지역·길동과 광화문 등 7곳에서 한강의 본류 혹은 지류까지 이어지는 지하 빗물 터널 건설을 계획했다. 지하 30~40m 깊이에 지름 5~7.5m(광화문 3.5m) 터널을 뚫어 물길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실행된 곳은 신월 한 곳뿐이다. 물난리 직후에는 기후변화에 대비해 과거보다 치수를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로 대책이 마련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토목사업’으로 ‘과잉대응’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김병식 강원대 방재전문대학원 교수는 “강우량 증가는 예견됐지만, 정치·사회적 이유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됐다”며 “전 세계적으로 재난 관련 예산을 경제적 관점에서 계산해 줄이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10여년 전 대심도 배수터널 계획, 왜 유보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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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집중호우가 내린 지난 8일 밤 서울 대치역 인근 도로가 침수돼 차량이 물에 잠겨 있다. /성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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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의 경우 대심도 빗물저장시설이 논의됐지만 도심 한복판에서 장기간 공사를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서울시의 판단으로 종로구 통인동에서 청계천까지 2㎞를 잇는 예산 320억원의 대심도 터널로 방향을 틀었다. 많은 예산과 시간을 들일만큼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마저도 거주지가 아닌 지역 특성상 시급하지 않다는 의견에 밀려 실현되지 않았다.

결국 2011년 침수 당시 배수에 취약하다고 지적받은 기존 ‘C자형’ 관로에 관로 하나를 더 보강하는 데 그쳤다. 강남역 역시 1300억원의 예산 확보의 어려움과 긴 공사에 따른 민원 등을 우려해 지대가 높은 주변 빗물이 반포천 중류로 바로 흐를 수 있도록 유역 분리터널만 추진됐다.

반면 신월은 지형과 침수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다른 대안이 없었다. 서울에서 처음으로 대심도 빗물저류배수시설이 양천구 신월1동에서 목동빗물펌프장까지 지하 40m 깊이에 저류배수터널과 유도터널이 총 4.7㎞의 길이로 연결됐다. 1380억원이 투입된 이 대심도 시설은 비가 오면 지상의 3개 입구에서 빗물을 받아 최대 32만t까지 저장한다. 큰비만 오면 물에 잠겼던 일대는 시설 완성 후 더는 과거와 같은 침수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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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 대심도 저류배수시설 개념도. 경향신문 자료사진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번 집중호우에 양천구 피해가 적었던 사실을 언급하며 “대심도 빗물저류배수시설의 유효성은 이번에 명확하게 드러났다. 강남역 등 3곳에 추가로 대심도 시설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을 부르는 대도시의 공간


서울은 1962년 전체 면적의 7.8% 수준이던 불투수층이 2010년 47.7%, 2015년 49%까지 증가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아스팔트와 건축물이 빼곡하게 들어선 도심 공간에서 빗물이 물길을 찾지 못해 오히려 도심 침수가 빈번해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

여기에 기상이변의 변동성은 갈수록 커진다. 2010년 9월 광화문을 침수시킨 이틀간의 폭우는 시간당 최대 98.5㎜(강서) 수준이었고, 이듬해 우면산 산사태로 이어진 폭우는 시간당 111㎜(관악)로 강해졌다. 지난 8일 집중호우의 시간당 강우량은 116㎜(강남)로 더 세졌다.



비의 양은 늘어나고 빗물이 흐를 곳은 적어지면서 집중호우는 때마다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을 불렀다.

대형 토목공사보다는 녹화작업 등을 통해 물이 흡수되지 못하는 불투수층을 없애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됐지만, 최근 강수는 이런 수준으로 대응할 수 없는 ‘재해’로 악화됐다. 최근 재난의 강도는 강남 등 고도로 도시화된 곳에서 더 거세다는 특징도 있다.

이의훈 충북대 토목공학부 교수는 “배수 시스템 확대 등을 이야기하면 ‘폭우가 그만큼 자주 오는지’를 되묻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며 “배수 능력 확보에 집중하지 않는 사이 도시화 면적이 큰 강남의 부하가 가중됐다”고 말했다.

‘과잉대응’ ‘가성비’ 관점의 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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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서울에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서울 동작구 상도동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주민 이 집안에 고립돼 사망했다. 사진은 11일 사고 현장 옆집 모습.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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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에 맞선 대도시의 물순환은 치수·방재를 비롯한 도시 전반의 재설계가 이뤄져야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재개발과 건축 등 개발이 이뤄질 때부터 빗물이 흐르는 경로를 고려해 토지 이용 계획을 세우고 도로과 공원 등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개발 사업에서 투수성을 높이는 마감과 빗물 저장시설과 옥상녹화 등을 적용하도록 인센티브로 유도할 수도 있다.

김이형 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개발 사업은 불투수 면적을 넓힌다”며 “치수 등에 영향이 적은 설계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가 광화문 침수 이후 물순환회복 및 저영향개발 기본 조례도 만들었지만, 법적인 근거는 없어 권고사항에 그친다”며 “고층 건물과 지하공간 등이 확대되는 환경에 맞는 방재대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도 밑 지하에 만든 수도권방수로
평소엔 도로, 폭우엔 빗물 저장 터널


기후위기에 따른 극한 날씨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는 서울을 비롯한 모든 대도시의 숙명이다. 특히 지상은 공간 확보가 어려운 환경이 대심도에 지하방수 혹은 지하하천을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하공간을 개발하는 데 대한 안전 문제, 공사 예산·기간에 대한 압박이 크지만 도시 침수를 막기 위한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도쿄 인근 사이타마시에서 가스카베시까지 이어지는 16번 국도 지하 50m 깊이에 지름 10.6m 크기의 수도권외곽방수로를 2006년 완성했다. 6.3㎞ 길이의 터널에서 인근 지천에서 넘친 강물을 모아 주변 침수를 막는다. 최대 67만t까지 가뒀다가 비가 그친 뒤 밖으로 배출한다.

또 도쿄 도심 수해를 막기 위해 지하 43m 지점에 건설한 ‘간다천·환상7호선 지하조절지’는 지름이 12.5m, 길이 4.5㎞ 규모의 거대한 터널 형태다. 1996년 완공될 때까지 1000억엔(1조원)이 넘게 들어간 이 조절지는 최대 54만t의 물을 받을 수 있다. 시설을 관리하는 데만 매년 1억엔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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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이타마시에서 가스카베시까지 이어지는 16번 국도의 지하 50m 깊이에 설치된 수도권외곽방수로의 빗물 저장 과정. 6.3㎞ 길이의 터널에서 인근 지천에서 넘친 강물을 모아 주변 침수를 막는다. 최대 67만t까지 가뒀다가 비가 그친 뒤 밖으로 배출한다. 일본 국토교통성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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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클랑강 범람 피해를 막기 위한 대심도 SMART 터널은 홍수조절 기능과 교통체증도 해결하기 위한 도로 기능이 결합된 복합 터널이다. 지름 13.2m에 물을 담아 홍수를 조절하는 9.7㎞ 구간과 소형차만 다닐 수 있는 지하 4차선 도로 3㎞ 구간으로 총 12.7㎞ 길이다. 약 5100억원 투입된 이 사업으로 2007년 터널이 완성되면서 도심지에서 초당 200t의 물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날씨가 맑거나 적은 비가 올 때는 도로로 사용하다가 초당 70t 이상의 비가 내리면 우수터널 역할이 시작된다. 초당 150t 이상의 강우량이 시작되면 교통은 통제된다. 과거 시정개발연구원(현 서울연구원)도 중랑천에 이같은 대심도 겸용 터널 조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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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클랑강 범람 피해를 막기 위한 대심도 SMART 터널은 홍수조절과 도로 기능이 복합된 터널이다. 말레이시아 물환경부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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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카고의 터널저수지계획(TARP)도 땅속 50~90m 깊이에 지름 3~11m 크기의 터널이 170㎞ 길이로 이어지는 대심도 터널이다. 미시간 호수에 오염된 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처리하기 위해 처음 구상됐으나 홍수경감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100년 빈도의 강우량인 378만t을 수용할 수 있다.

이의훈 교수는 “대심도 빗물터널뿐 아니라 도심 주차장 등을 비가 많이 올때 저류시설로 활용하는 사례가 도쿄와 오사카 등에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심도 저류배수시설은 여러 지역을 지나는 경우도 있고, 민원도 많다는 특징도 있다”며 “규모와 비용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주도해 지자체간 협력하는 방식 등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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