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르포]"1만원 속옷→2000원에", "수십억 날려"…수해 상인들의 '눈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머니투데이 정세진 기자]
머니투데이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동 남성사계씨장에 위치한 장주영씨의 식자재 저장 창고 모습. 지난 8일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뒤 복구 중이다./사진=정세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일 동안 배달을 못 했어요. 추석 대목이라 물건을 가득 들여놨는데 거래처가 끊길 판입니다."

장주영씨(59)는 남편과 서울 동작구 사당동 남성사계시장 내 한 건물에서 식자재 유통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지상 1층은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식자재를 판매하는 마트이고, 지하 1층은 냉장·냉동시설과 물품을 쌓아놓는 창고로 쓴다. 장씨는 인근 식당, 공장, 마트 등에 공급하는 도매업도 함께 하고 있다.

장씨는 추석 대목을 맞아 창고를 식자재로 가득 채웠다. 추석 물품과 별개로 국산 새우와 김, 멸치는 한 번에 1년 치를 미리 구입해 놓는다. 5월에 나오 햇뱅어포도 5000개 들여놨다. 장씨가 새우와 김, 멸치 구입에 쓴 돈만 10억원이 넘는다.

하지만 지난 8일 내린 폭우로 가게가 잠기면서 대부분 상품 가치를 잃게 됐다. 지난 8일부터 이틀 밤낮을 양수기 12개를 동원해 물을 퍼내고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과 보좌진의 도움으로 식자재를 가게 뒷편 공터로 옮겼지만 여전히 식자재 3분의 1 가량은 지하에 남아 썩어가고 있다. 피해는 최대 수십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장씨는 "일손이 부족하다"며 "국민의힘 의원 한 명이 말을 잘못해서 욕을 많이 먹었다고 하던데 내가 느낄 때는 거의 모든 의원과 보좌진이 진심으로 우리를 도와줬다. 한 명의 말실수로 다른 사람들의 노고가 평가 절하되는 거 같아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12일 기자가 찾은 남성사계시장 상인들은 수해복구를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경찰과 군인들이 돕고 있지만 다음 달 10일부터 시작하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복구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머니투데이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동 남성사계시장에 위치한 장주영씨 식자재 가게 뒤편에 창고에서 꺼낸 식자재들이 놓여 있다. /사진= 정세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장씨는 거래처를 잃을 수 있다고 걱정한다. 3일 이상 거래처에 물건을 공급해주지 못해서다. 언제 다시 거래처에 물건을 보내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장씨는 "거래처 입장에서는 추석 대목을 앞두고 물건이 들어오지 않는 상황을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을 것"이라며 "가입한 화재보험사에 전화해봤더니 자연재해는 보상해주지 않는다고 했다"고 말했다.

"원래 다 1만원 넘는 거야"

상인들은 한푼이라도 건지기 위해 물에 시장을 찾은 손님들에게 젖은 물건을 팔려고 노력을 하기도 했다. 속옷 상인 A씨의 좌판에는 종이 포장은 물에 젖어 뜯어지고 비닐 포장만 남은 속옷이 쌓여 있다. 이런 제품은 한 벌에 2000~3000원에 판매됐다. 비닐포장 마저 남아 있지 않은 속옷은 검은색 비닐봉지에 담아 팔았다.

머니투데이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서 한 상인이 침수된 속옷을 말려 팔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코로나19(COVID-19) 대유행으로 손님이 줄어 대출까지 받았던 요식업자들은 이제 장사를 접어야 할 상황이다. 남성사계시장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김태욱씨(36)는 방역조치 일환으로 영업시간이 단축되면서 영업을 위해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았었다. 지하 1층에 있는 김씨의 호프집은 이번 폭우 때 완전히 침수됐다.

김씨는 지난 8일 오후 8시쯤 손님들에게 "계산하지 않으셔도 된다. 빨리 나가셔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뒤 자신도 급히 빠져나왔다. 침수로 식용유와 물을 뒤집어쓴 집기류는 하나도 쓸 수 없게 됐다. 김씨는 침수로 1억3000여만원의 피해를 본 것으로 예측한다. 수해복구를 끝내고 언제쯤 다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을지는 예측조차 어렵다.

지하에 위치한 노래방의 피해도 컸다. 이곳 시장에서는 기계가 모두 침수되면서 3억~4억원의 피해를 본 노래방도 있다. 김덕상씨가 관리하는 건물 지하 1층에도 코인노래방이 운영 중이었다. 지난 폭우로 노래방기계 17대가 모두 망가졌다. 노래방 업자는 1억 3000여만원의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재열 남성사계시장 상인연합회 회장은 "추석 대목을 앞두고 10억원 넘게 피해 본 사장님들이 많다"며 "지금은 수해복구 단계라 정확한 피해 상황을 파악하기조차 힘들지만 복구가 끝나면 위로의 말이나 라면 몇개 주는 것보다 정부가 자금을 지원해줘야 상인들의 재기가 가능하다"고 했다.

머니투데이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1동 다세대 연립주택 사이의 도로에 주민들이 내다 놓은 집구류가 쌓여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집은 다 잠겼다…"보증금 달라니 도배비 빼고 주겠대"

이번 수해로 서울 동작구에는 이재민이 다수 발생했다. 피해는 특히 동작구에서도 지형이 낮은 사당 1동에 집중됐다. 사당1동에서만 900여가구가 침수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사당 1동에서 부동산을 운영 중인 손춘택씨(63)는 "2002년 이전에 지은 건물들은 대부분 지하층이 있다"며 "거의 모든 이 주변 건물이 2002년 이전에 지어졌고 반지하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원,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 수준"이라고 했다. 손씨는 "가난한 사람들 집이 다 잠겨서 어디 갈 데도 없다"며 "이제 가려면 외곽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침수 이후 손씨 부동산을 찾아와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냐'고 묻는 집주인도 많다고 한다. 이날 손씨의 부동산을 찾은 주민 박모씨는 "집이 침수되고 하루 5만원짜리 모텔에서 자다가 지금은 아는 언니 쪽방에서 자고 있다"며 "방을 빼달라 했더니 집주인이 보증금에서 도배와 장판 비용을 빼고 준다더라. 그럼 200만~300만원뿐인데 그 돈으로 어디서 방을 구하냐"고 했다.

머니투데이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 1동의 한 반지하 주택에서 수해 복구를 위해 시멘트 바닥을 깨고 물을 퍼내고 있다./사진= 정세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날 오후에도 사당 1동 일대 다세대 연립주택 밀집 지역의 도로는 주민들이 내놓은 집기류와 장판, 쓰레기로 곳곳이 막혀있었다.

주민 임모씨(71)는 "언제 치울지 기약이 없다. 이게 사람이 사는 거냐"며 "일하러 나가야 하는 세입자를 대신해 사흘 동안 집을 치웠다"고 했다. 임씨 이웃에는 가재도구와 옷가지 등 살림살이를 하나도 건질 수 없어 그대로 버리고 집을 옮기려는 주민들도 있다.

그나마 가족이 도울 수 있는 집안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날 경찰 40여명과 군인 100여명이 사당 1동 지역 수해복구에 투입됐지만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도 많았다.

홍모씨는 딸과 딸 친구가 이틀 밤낮을 새며 수해복구를 도왔다. 홍씨 옆집에는 60대 노부부가 살고 있다. 노부부는 딸 집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사실상 홍씨 옆집은 방치됐다.

홍씨는 "딸이 130만원 주고 맞춰준 장롱을 이제는 다 버려야 한다"며 "손자와 TV를 보다가 갑자기 물이 쏟아져 들어와 맨발로 뛰어나왔다"고 했다.

대다수 반지하 가구가 지난 9일쯤 침수된 물을 모두 퍼냈지만 여전히 장판을 걷어내고 시멘트 바닥을 깨 물을 퍼내기 바빴다. 이곳 일대의 반지하 가구 대다수는 지난 폭우 때 싱크대와 화장실 등에서 물이 역류하고 창문과 현관문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장판을 걷어내고 바닥을 말려도 시멘트 바닥 아래 고인 물이 방바닥으로 스며 나오는 이유다.

박모씨도 보일러를 틀고 여러 차례 걸레질했지만 결국 시멘트 바닥을 깨야 했다. 이같은 반지하 침수가구는 단열재를 제거하고 보일러를 다시 설치해야 한다.

사당동 주민들은 13일 비가 온다는 예보에 다시 걱정이 앞선다. 기상청은 주말 동안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최대 120㎜ 이상 강한 비가 내릴 수 있다고 예보했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