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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세월호' 그곳 맞아? 팽목항서 치떠는 여객선 승객들, 무슨 일 [e즐펀한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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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즐펀한 토크] 최경호의 시일야 방방곡곡


“에이 X, 이제야 차를 실으면 어떡하냐? 진짜 갑갑한 사람이구만…” 지난달 27일 오전 9시45분 전남 진도군 팽목항. 진도 본섬과 거차도 일대를 오가는 H여객선 승무원이 승객 김모(52·광주광역시)씨에게 한 말이다. 이날 운항 코스 섬 중 가장 멀리 있는 서거차도로 갈 자동차를 늦게 실은 것에 대한 힐난이었다.

당황한 김씨가 “승선권을 살 때부터 (서거차행) 차를 먼저 실으라는 안내를 받지 못했다”고 하자 “그걸 모르는 게 말이나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내방송이나 안내판도 없고 주민도 아닌데 어떤 차를 먼저 배에 대는 지 등을 어떻게 알겠느냐”는 말에는 “여기(진도) 사람들은 다 안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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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여객선은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서 5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출항한다. 팽목항은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의 상처가 남은 곳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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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불친절에 ‘원성’…“눈치 보며 배 탄다”



그는 “안내도 제대로 하지 않고 이렇게 승객에게 윽박지르는 상황을 신고하겠다”고 했다가 더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한 승무원이 주먹을 불끈 쥐며 “당장 이 차 (배에서) 내려, 빨리 내려”라는 고함을 질러서다. 김씨는 “억울한 마음에 ‘선장에게 (이 문제를) 물어보겠다’고 하자 ‘아까 당신한테 더 크게 소리친 사람이 선장이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11일 중앙일보에 “대기선에 1시간 전부터 차를 대놓고 (배에 실을) 순서를 기다렸다”고 수차례 설명했지만 승무원 3~4명에게 번갈아가며 고압적인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상 중요한 약속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배를 탔지만 너무 분하다”며 “우리나라에서, 그것도 팽목항에서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라고 말했다.

팽목항에서 운항하는 H해운 소속 여객선의 안전 불감증과 승객에 대한 횡포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팽목항은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상처가 남아있는 곳이다. 참사 후 분향소가 차려지고 유가족이 사고해역을 찾을 때 반드시 거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H해운 여객선은 팽목항 방파제에서 5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출항한다. 주요 기항지는 관사도~관매도~동거차도~서거차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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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여객선의 고박 밴드. 선박안전법 상 ‘연안 여객선의 경우 해상 파고가 1.5m 이상, 풍속이 초속 7m를 초과하면 모든 차를 고박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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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 신원 확인·승객 하차 안내 생략



중앙일보 취재 결과 여객선 승선 전 탑승자 신원 확인이나 탑승객 차량 하차 등의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승객 신원 확인은 세월호 사고 당시 탑승객 신원과 숫자가 확인되지 않아 혼란을 겪은 후 강화된 규정이다.

현행 해운법 상 ‘여객운송사업자는 여객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여 승선권 기재내용을 확인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이는 선박에 비치된 H여객선 운항관리규정에도 담겨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또 승선 때 운전자와 동승한 승객을 차에서 내리게 한 뒤 신분증을 검사하는 절차도 생략됐다.

H여객선 관계자는 “매일 같이 탑승하는 주민이 많은데 굳이 신분증 검사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 물론 신분증 검사를 못하는 날도 있지만 가급적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승선시 자동차에서 승객을 내리게 하는 것 등은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요구하는 게 어려워 실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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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거세기로 유명한 맹골수도(孟骨水道) 주변을 운항하는 H여객선의 운항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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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후 차량 하차 등 요청 안해”



주민들은 H여객선이 운항하는 구간이 파도가 거세기로 유명한 맹골수도(孟骨水道) 주변이라는 점을 들어 고박(賈舶) 등에 더욱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H여객선은 최대 승선인원 279명에 차량 43대를 실을 수 있는 297t급 여객선인 데도 차량 고박을 하는데는 인색하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해경에 따르면 현행법상 H여객선은 운항시 기항지간 항해시간이 1시간 미만이어서 반드시 차를 고박해야하는 선박은 아니다. 하지만 선박안전법에 따르면 연안 여객선은 해상 파고가 1.5m 이상, 풍속이 초속 7m를 초과하면 모든 차를 고박하도록 규정돼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서거차도 인근 해역의 파고와 풍속이 고박 기준을 넘는 날이 닷새가량 됐는데도 H여객선은 승용차 등은 고박을 하지 않아 주민들이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주민 정모(55)씨는 “고박 규정을 지켰다고 하더라도 파도가 요동칠 때면 고박을 하지 않은 내 승용차가 앞뒤차와 부딪힐까봐 내려가 보게 된다”며 “한 달에 1~2번은 뭍으로 나가는데 홀숫날에는 이 배만 운항하니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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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운항하는 H여객선 내 승객용 의자. 시설이 노후화돼 등받이가 떨어져 나가고 녹슨 채 방치돼 있다. 이 배를 자주 이용하는 주민들은 안전장치 및 선박 내 시설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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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싸우는 사람이 없다”…공무원들도 놀란 ‘불친절’



H여객선 측은 “규정보다는 현장 상황에 따라 고박 여부를 결정할 때가 많다”며 “(선박 운항) 현장과 규정이 맞지 않은 게 많아 기상 상황이 고박 기준을 넘어서더라도 모든 승용차를 고박하지는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H여객선은 가급적 타지 않으려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인근을 운항하는 여객선들은 철저히 운항 규정을 지키고, 선원들도 친절한데 유독 H여객선만 배짱 운행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자동차는 물론이고 가전제품이나 건축자재 등 대형 상품을 섬으로 실어나를 때마다 불안감이 크다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엔 한 가전제품 업주가 “물건을 실을 때 고박을 잘 하는지 해경이 와서 봐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H여객선 관계자는 “선박 내 모든 안전장비나 시설 등은 모두 법규에 맞게 비치를 해놓았다”며 “고박장치 등도 배 곳곳에 많이 있는데 기상이 크게 나쁘지 않다고 판단되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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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팽목항에서 1㎞ 남짓한 곳에 들어서고 있는 ‘국민해양안전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추진된 약 10만㎡ 규모의 추모 및 재난안전교육시설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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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들의 불친절한 태도나 선박 관리 미흡 등에 대한 불만도 컸다. 사소한 일에도 고함을 치거나 선원 2~3명이 몰려가 고압적인 언행을 하는 바람에 주민은 물론이고 관광객까지 번번이 봉변을 당한다는 게 주민들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한 공무원은 “(승무원들이) 주민은 물론이고 경찰관이나 공무원들까지 안 싸운 사람이 없을 정도”라며 “워낙 다툼이 잦은 탓에 승객들이 두려워하면서 배에 오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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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비 270억원’ 국민해양안전관…“설립 취지 무색”



관광객들은 “다른 곳도 아니고 팽목항을 오가는 배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하느냐”는 반응이다. 현재 팽목항에서 1㎞ 남짓한 곳에는 올 연말 준공을 목표로 ‘국민해양안전관’이 들어서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추진된 약 10만㎡ 규모의 추모 및 재난안전교육시설이다. 이때문에 인근 주민 사이에서 “국비 270억 원을 들여 세월호 추모시설을 지으면서도 정작 팽목항에서 출항하는 여객선 운항에는 관심도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이에 대해 H여객선 관계자는 “말을 잘 듣는 승객에게 뭐하러 승무원들이 싸움을 걸겠느냐”며 “말귀를 못 알아 먹으니 (선원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고, 이런 일은 차량과 승객을 실을 때 어쩔 수 없이 매일처럼 발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도=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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