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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텐트 간격 10㎝ 다닥다닥 대피소… 코로나까지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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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들 수해·더위·코로나 3중고

강남·동작, 확진자 5명 나와

사당 1동 주민센터 대피소 폐쇄

이재민들 경로당 2곳에 급히 옮겨

서울만 3300명… 깊어지는 한숨

“씻을 곳 부족, 수건 물 묻혀 닦아”

“고3 동생, 불편해 잠도 못잔다”

조선일보

12일 서울 강남구 구룡중학교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서 시민들이 쉬고 있는 모습. 이곳에선 지난 8~9일 내린 폭우로 집이 무너지거나 침수된 구룡마을 주민 약 90명(11일 기준)이 머물고 있다. /남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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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구룡중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 약 600㎡(180평) 크기 체육관 안에 베이지색 텐트 77개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2명이 들어가면 내부가 꽉 차는 6.6㎡(약 2평)짜리 텐트 사이 간격은 10cm도 되지 않았다. 이곳에선 지난 8~9일 내린 폭우로 집이 무너지거나 침수된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주민들이 12일까지 5일째 머물고 있다. 강남구청이 전국재해구호협회 등의 후원으로 지난 8일 텐트를 설치했다. 11일 기준 여기에 머무는 사람은 90여 명으로, 대부분이 65세 이상 어르신이다. 12일에는 이 대피소에서 코로나 확진자까지 나왔고, 같은 날 동작구 사당 1동 주민센터 대피소에서도 확진자가 발생으로 폐쇄돼 인근 경로당 2곳으로 주민들이 대피해야만 했다. 이날까지 서울 전체 이재민 대피소에서 확진자가 총 4명 나왔다.

폭우 피해를 본 데다,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도는 꿉꿉한 날씨에 코로나 위협까지 닥치면서 고령자들이 상당수인 주민들은 삼중고를 겪고 있었다. 이번 폭우로 서울에 이재민 대피소가 생긴 것은 약 4년 만이다. 이런 대피소는 12일 기준 서울에 64곳이 있고 이재민 총 3300여 명이 머물고 있다.

구룡중학교 대피소 주민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더위 속 제대로 씻을 곳이 없다는 것이다. 남녀 주민들이 각각 이용할 수 있는 샤워기는 3개, 세면대는 단 2곳뿐이다. 이 때문에 아픈 다리를 이끌고 하루에 두 번 걸어서 20분 거리의 집으로 씻으러 다녀오는 주민도 있었다. 이조화(85)씨는 “1년 전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 지팡이를 짚고 걷는데, 샤워실 물이 너무 차서 일부러 집까지 가서 씻고 온다”고 했다. 구룡마을 자택에서 30년 동안 혼자 살았다는 정모(80)씨는 “날이 갰지만 집 안에 있는 전선들이 이미 물에 다 젖어서 감전될까 봐 무서워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겠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 이순심(78)씨는 “땀이 마를 때까지 참고, 정 죽겠다 싶으면 수건에 물 묻혀 겨우 닦는다”고 했다.

동작구 사당2·3동 이재민 50여 명은 사당종합체육관의 텐트 30여 곳으로 대피해있다. 사당동 극동아파트에 거주하다 인근 옹벽이 무너지며 긴급 대피한 김태운(23)씨는 “동생이 고3인데 공부하고 돌아오면 제대로 씻지도, 자지도 못해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했다. 신대방동 수재민이 모인 동작구민체육센터에서 만난 조동연(84)씨도 나흘째 대피소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원래 한 빌라 반지하 방에 살았는데 살림살이가 대부분 물에 잠겼다. 그는 “당시 물이 가슴까지 차는 바람에 쓰던 숟가락 젓가락 다 내버렸다. 손녀가 사준 진열장도 다 젖어서 내놓은 상황이라 이제 집은 쳐다도 보기 싫다”고 했다.

조선일보

발로 꾹꾹 밟아 이불빨래 자원봉사 - 12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부평동의 한 골목에서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관계자와 자원봉사자들이 폭우로 물에 잠겨 더러워진 주민들의 이불과 옷을 발로 밟으며 세탁하고 있다. 지난 8일부터 내린 폭우로 인천소방본부에는 10일 오전 6시까지 집에 물이 찼거나, 폭우로 고립된 사람들의 구조 요청 등 492건의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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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에서는 한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거의 통째로 이재민이 된 사례도 있다. 지난 8일 밤 ‘강남 물폭탄’으로 승용차 수십 대가 지붕까지 잠긴 서초대로 인근의 아파트 주민들이다. 15층짜리 7개 동(棟)에 615가구 1900여 명이 사는 이 아파트는 폭우 때 1층까지 물이 차면서 단지 전체가 수도가 끊기고 정전됐다. 이 탓에 지난 9일 새벽부터 인근 호텔이나 가족, 친지 집으로 대피했다. 전기 시설, 수도 펌프 등이 있는 지하에 가득 찬 물을 빼야 하는데, 일부 시설만 복구돼 폭우 후 3일 이상이 지난 12일에도 5~6층까지만 물이 나오고 엘리베이터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 탓에 전체 입주민 중 절반쯤이 아직 ‘피난처’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하루에 몇 번씩 15층까지 걸어서 오르내리는 사람도 여럿이다. 경비원 A(72)씨는 “언제 다시 들어갈 수 있냐”는 주민들 문의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통씩 온다”고 했다.

인근 한 저렴한 호텔에 머무르고 있다는 입주민 박모(56)씨는 “급하게 나오느라 아무것도 못 가지고 나왔다. 엘리베이터도 작동하지 않아 하루에 한 번씩 15층에 있는 집까지 걸어 올라가서 옷이랑 세탁물을 챙겨서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딸이 고3인데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아 나쁜 영향을 줄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입주민 김모(75)씨는 “52평짜리 집에 살면서 1년에 재산세를 230만원씩 내는데 이런 물난리를 겪어야 하냐”고 말했다.

[신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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