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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전기레인지 얼룩 지우다 드는 생각, 왜 이러고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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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하는 중년 남자]

3년 전부터 전기레인지를 쓰고 있다. 가스레인지에 비해 열 효율도 높고 청소하기도 편하다고 했다. 열 효율로 치면 인덕션이 최고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게다가 인덕션은 전용 팬이나 냄비를 써야 한다고 해서 전기레인지를 택했다(왜 전기레인지를 ‘하이라이트’라고 부르는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전기레인지는 가스레인지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다. 우선 뚝배기를 올릴 수 없다. 그러니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추가로 쓸 수밖에 없다. 바닥이 오목한 팬도 화구에 닿는 면적이 좁다 보니 열효율이 떨어졌다. 납작한 프라이팬보다 궁중팬을 자주 쓰는 나로서는 아쉬운 대목이었다. 차를 끓일 때는 가스레인지보다 훨씬 편했다. 차가 끓기 시작하면 중불로 줄여놓고 타이머를 맞춰둘 수 있다. 그러면 저절로 꺼지고 잔열로 차를 더 우려낼 수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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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레인지보다는 확실히 깔끔했다. 음식을 할 때마다 삼발이를 다 들어내고 청소해야 하는 가스레인지와 달리, 상판이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행주로 닦아내면 그만이었다. 다만 기름때나 물때가 눌어붙었을 경우가 문제였다. 행주로는 어림도 없고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섞은 이른바 ‘만능 물티슈’로도 미세한 때는 지워지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쟁여뒀다가 잘 쓰지 않게 된 손 소독 젤도 훌륭한 기름때 청소 도구인데, 그것으로도 되지 않았다.

결벽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군대 내무반처럼 먼지 하나 없이 사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전기레인지에 눌어붙은 때는 가만둘 수 없었다. 한 통에 1만5000원 안팎 하는 전기레인지 전용 클리너가 있었다. 이걸 뿌려서 때를 불린 뒤 ‘스크레이퍼’라고 하는 면도날 달린 도구로 유리 상판을 긁어내면 때가 벗겨지기도 한다. 전기레인지 상판이 강화 유리여서 면도날로 긁어도 잘 상처가 나지 않는다. 완전히 새것처럼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눈에 거슬리는 때는 다 벗겨내야 성이 찬다.

가끔 만나면 살림 이야기를 하게 되는 후배가 있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다가 아이 둘을 낳은 뒤 전업주부가 됐다. 전기레인지뿐 아니라 레인지 후드에 끼는 때와 먼지를 참을 수 없어서 매일 반짝반짝 닦는다고 했다. 새벽 한두 시에 의자 위에 올라가 레인지 후드를 닦을 때면 왜 이러고 살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전용 클리너를 뿌려둔 전기레인지 때를 면도날로 긁어낸 뒤 행주로 닦아낸다. 고려 도공이 청자에 유약 발린 상태를 살피듯 유리 상판을 비스듬히 빛에 비춰본다. 아주 작은 기포처럼 남아있던 흔적이 비로소 사라지고 상판이 까맣게 빛난다. 나 왜 이러고 살지.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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