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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논란 회피 박민영, 그 '말빨'은 이렇게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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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정치는 '승리'가 중요한 대회 아냐... 맹목적 분노 거두고 포용적 해법 내놓는 정치인 되길

오마이뉴스

▲ 지난 1월 28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열린 'MZ세대라는 거짓말' 북콘서트에서 저자인 박민영 국민의힘 청년보좌역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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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대통령실 대변인실에서 일하게 된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이 생각지 못한 암초를 만나 휘청거리고 있다. 일베 논란에 휩싸이며 언론과 정치권에 일일이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그는 "계정을 공유한 두 살 터울의 동생이 작성한 것"이라며 일베 관련설을 부인했다.

가족과 계정을 공유한다는 것도 금시초문이려니와, 동생이 일베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썼다는 사실을 태연히 밝히는 당당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아무렴 그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애꿎은 동생을 걸고넘어지지는 않았겠지만, "(일베에) 들어가본 적도 없다"는 부연 설명을 보니 일베라는 낙인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관련 기사 : '용산행' 박민영 "일베 아니지만... 깊게 말씀드리기 어렵다").

전라도 출신을 비하하는 '네다홍'과 고 노무현 대통령의 조롱하는 표현인 '×운지', 기독교를 폄훼하는 '개독' 등의 일베 용어가 그의 계정으로 작성된 커뮤니티 게시글에서 속속 발견된 뒤 벌어진 사달이다. 일베의 영향력은 예년에 견줘 많이 위축됐지만, 온갖 혐오 표현을 양산하며 여전히 활동 중이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일베 용어들은 청년 세대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 아이들에게도 상당한 소구력을 발휘한다.

현재 언론과 정치권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일베의 판별 기준은 소셜미디어 등에서 일베 용어를 사용했느냐 여부다. 일베가 극우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 일베라는 낙인은 사회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하물며 대중의 지지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에겐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적개심'은 어디서 왔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논란은 현란한 말솜씨로 나이 서른에 대통령의 참모 자리에까지 오른 그의 입지전적인 이력에 커다란 오점으로 남게 될 듯하다. 그가 일베 용어를 썼느냐 여부는 이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단 과거 그가 언론 인터뷰 등에서 쏟아낸 발언들이 다시금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어서다.

지난 5일, 그는 YTN 뉴스 채널에 나와 민주화 세대를 청산해야 할 잔재로 규정했고, 전교조와 민주노총, 시민단체들을 '사회악'의 뿌리로 묘사했다. 그러한 '사회악'들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투표했다고 덧붙였다. 당시에는 다른 굵직한 사회적 이슈가 많아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이번 논란으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그의 발언으로 인해 민주노총 산하의 전교조 조합원이자, 이러저러한 시민단체에 발을 담그고 있는 난 졸지에 '사회악'으로 낙인찍혔고, 청산해야 할 잔재로 전락했다. 대변인실에서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게 될 테니, 그의 말이 괜한 엄포로만 들리지 않는다. 이런 글을 쓰는 것조차 책잡힐까 싶어 솔직히 두렵다.

과연 그의 민주화 세대를 향한 '적개심'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인간의 속마음을 어찌 알까마는 그의 학창 시절과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는 과정을 통해 어림짐작해볼 수는 있다. 대학을 갓 졸업한 그 또래의 청년 세대에겐 가정과 학교에서의 일상 속 경험이 자신의 정체성 형성에 바탕일 테니 말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명문대에 합격했다.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10대 시절을 오랫동안 방황했다고 한다. 특히 '박사' 아버지와의 갈등은 그의 보수적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중앙일보>에 쓴 칼럼(<어릴적 여가부 도움받은 청년, 기꺼이 폐지 지지한 이유>)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운동권을 자처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도 않고 폭력적이며 권위주의적이었던 아버지를 그는 경멸했다.

그는 아버지를 통해 386 운동권의 위선적 행태를 일찌감치 경험했다. 이후 '내 인생을 살겠다'며 동생들의 학비 조달을 그에게 미룬 어머니에 대한 애증도 포개졌다. 한때 아버지와 이념적 동지였던 그의 어머니는 여성학을 공부하며 홀로서기를 했고, 끝내 이혼소송으로 귀결된 고단했던 학창 시절을 보냈다.

부모의 삶으로부터 세상에 처음 눈뜬 그에게 386 운동권은 '악' 그 자체였다. '꼰대' 아버지가 가정을 지배했듯이, 386 운동권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고 단정했다. 또, 지금 386 운동권들이 보여주고 있는 위선적 행태가 어릴 적 봐온 아버지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칼럼에서 그는 '진보 교육감 자녀의 특목고 입학'과 '귀족노조의 일자리 세습', '진보 성향 국회의원의 기득권 집착'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따지고 보면, 이태 전 '조국 사태'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다. 당시 민주당 정권을 비롯한 진보 성향의 정치 세력의 도덕적 권위를 일순간에 허물어뜨린 사건으로, 정권 교체의 방아쇠가 됐다는 건 부인하긴 어렵다.

그런데, 그가 386 세대를 '악'으로 단정한 근거들은 386 세대만의 문제로 한정할 수 없을뿐더러 일부의 사례를 확대해석한 일반화의 오류다. 아무리 그들의 위선적인 행태가 혐오스럽다고 해서 '위선 떨지 않고 대놓고 부패를 저지르는' 세력을 옹호하는 건 '홧김에 바람피운다'는 식의 자가당착이다. '오십보백보'라며 다 같은 놈들이라고 눙치는 건 더 나쁜 놈들의 손을 들어주는 짓이다.

그의 언어가 향해야 할 곳

누군가 부패한 세상을 향해 일갈했다. "위선은 역겹지만, 위선마저 사라진 세상은 야만"이라고. 그가 386 운동권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세대의 위선을 질타하며, 공정과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군사독재정권의 후예를 자처하는 국민의힘을 대안 세력으로 추켜세우는 건 '정치공학적 선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민주화 세대를 청산해야 할 잔재로 여긴다면, 위선을 문제 삼기보다 무능을 지적하는 게 적확하다.

청운의 꿈을 품은 정치인이라면, 진보 교육감이 자녀를 특목고에 보냈다고 발끈하기 전에 그들조차도 무시하지 못하는 고교 서열화 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가 우선되어야 한다. 귀족노조의 정규직 세습을 비난하기 전에 비정규직에 대한 극심한 차별 문제에 공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게 먼저다. 하물며 정치에 대한 환멸을 부추기는 건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다.

이른바 '흑화'한 386 운동권의 존재를 부정하진 않는다. 과거 민주화운동의 이력을 종잣돈 삼아 권력과 부를 거머쥔 채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화 세대를 싸잡아 폄훼해선 곤란하다. 민주화 세대를 한 덩어리로 묶어 이해하려는 건, 마치 청년 세대의 처지와 고민이 같다고 말하는 것처럼 황당하다.

민주화운동에 청춘을 바친 수많은 이들을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소액이나마 기부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그에게 충고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부디 민주화 세대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를 거두길 바란다. '꼰대' 아버지가 386 운동권의 대표일 리도 없으려니와 그들의 위선에 대해선 한때 동지였던 같은 민주화 세대가 더 치를 떨고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아울러,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고, 대변인의 역할 또한 말하는 게 팔 할 일 테지만, 베일 듯한 말의 날을 조금만 무딜 수 있길 바란다. 화려한 말속에 진심을 담아내긴 어려운 법이다. 듣는 이의 마음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말은 그저 한낱 소음에 불과하다. 그의 말에선 견강부회의 차디찬 논리와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투지만 가득할 뿐 포용적 태도를 전혀 느낄 수 없다.
오마이뉴스

▲ 지난 3월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국민의힘 대변인 선발 토론배틀 ‘2022 나는 국대다’가 열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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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자니까, 그는 대학에 진학한 뒤 각종 토론대회의 우승 상금으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했을 정도로 자타공인 '토론의 달인'이었다. 그가 정치계에 두각을 나타낸 것도 토론배틀 '2022 나는 국대다'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국민의힘 대변인이 된 직후다. 그에게 토론이란 상대를 제압해야 하는 말의 전쟁터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이야 그렇듯 승부를 봐야 하는 토론은 학교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억지 주장과 말꼬리 잡기가 횡행한다는 이유로 찬반 토론조차 지양하는 추세다. 외람되지만, 이러한 토론 방식의 변화 필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그가 최근 보여준 행태가 아닐까 싶다. 토론은 이기기 위한 게 아니라 상대와의 민주적 소통 행위이자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그가 몸담게 된 정치는 승부를 봐야 하는 토론대회가 아니다. 정치란 설득하고 조율하고 타협하고 합의하는 일련의 과정일진대, 과거 그의 '말빨' 이력이 발목을 잡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부디 대변인을 넘어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년 정책통으로서, 큰 정치인을 향한 그의 건승을 기원한다.

서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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