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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유럽 ‘전기차 폐배터리 활용 의무화’ 카드…K배터리 발목 잡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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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폐배터리 원료 의무화 법안 준비

유럽업체 “2030년 너무 늦어, 5년 앞당겨야”

원료 중국 의존도 높자 역내 순환구조 의도도

국내 배터리 업계의 유럽진출 장벽 될지 우려


한겨레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한 빌딩에서 전기차가 충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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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이 ‘지속가능한 배터리법’을 자국 내 배터리 산업 보호를 위한 장벽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리튬·니켈 등 배터리 재활용 원료 사용을 의무화하는 법안으로, 유럽연합이 역내에서 배터리 원료 조달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장기전략으로 분석된다.

12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노스볼트·유미코어 등 유럽 배터리 관련 업체들은 올해 상반기 유럽연합이 진행한 회의에 참석해 지속가능한 배터리법안에 담긴 재활용 원료 사용 의무화 시행 시기를 앞당기자고 주장했다. 이 법안은 유럽 내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에 폐배터리를 재활용한 원료를 일정 비율 섞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이다.

성능이 저하된 전기차 배터리를 활용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재사용’과 ‘재활용’이다. 재사용은 중고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ESS)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걸 말한다. 재활용은 폐배터리를 분해한 뒤 화학적 과정을 거쳐 핵심 부품인 양극재·음극재 등에서 리튬·니켈 원료를 뽑아낸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보도자료를 보면, 지속가능한 배터리법안은 2030년부터 배터리에 코발트 12%, 니켈 4%, 리튬 4%를 재활용 원료로 의무 사용하고, 2035년에는 코발트 20%, 니켈 12%, 리튬 10%를 의무 사용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럽연합은 이 법안을 연말부터 시행할지 고민 중인데, 유럽 업체들이 법안의 내용을 강화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유럽연합이 한국 배터리를 제외한 채 전기차 보급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어서, 유럽 업체의 요구를 반영해 급진적인 법안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동시에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온 유럽 업체들이 자신감을 내비친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배터리 전문가는 “노스볼트, 유미코어나 유럽 자동차 회사들이 (폐배터리 재활용을) 열심히 준비해왔다. 특히 노스볼트는 처음부터 100% 재활용 원료를 활용해 (배터리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노스볼트는 스웨덴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로, 지난 5월 유럽에서 상업 생산을 시작한 회사다.

한겨레

지난 6월29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22 세계 태양광에너지 엑스포'에서 한 업체가 폐배터리로부터 리듐을 효과적으로 추출해 자원회수 시스템을 소개하는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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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은 폐배터리 재활용을 강조하는 이유로 탄소중립을 강조하지만 다른 속내도 있다. 전기차 배터리 원료의 역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폐배터리 원료의 역내 순환 시스템을 만들려는 것이다. 특히 중국 의존도가 높아서 향후 배터리 원료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채굴한 광물은 배터리 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련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리튬·니켈·코발트·흑연의 주요 광물의 절반가량이 중국에서 이뤄진다. 유비에스(UBS)의 팀 부시 애널리스트는 11일(현지시각) 배터리 원료 가격 급등에 따른 자동차 업계의 고민을 담은 <파이낸셜 타임스>의 기사에서 “현재 배터리에 들어가는 재료의 85~90%가 중국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아직 국내 폐배터리 재활용은 걸음마 단계라는 평가가 많다. 국내 3개 배터리 제조사 모두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투자하고 있지만 아직 재활용 원료 사용 비율은 높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에스케이(SK)온, 삼성에스디아이(SDI)는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량품에서 뽑아낸 원료를 생산에 다시 투입하고 있다. 엘지(LG)에너지솔루션은 아직 재활용 원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엘지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재활용 원료) 상용화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의 재활용 의무 규정 강화가 국내 배터리 제조사에 장벽으로 작용할지에 대해서는, 새 전기차 수요와 폐배터리 공급량 가운데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의견이 갈렸다.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 관계자는 “점점 전기차가 많아지고 배터리도 대형화되고 있어 의무화 비율이 한자릿수여도 그 양이 엄청날 것이다. 유럽연합이 제시하는 비율을 맞추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 교수(에너지화학공학과)는 “향후 전기차 보급이 확대되면 폐배터리도 쏟아져 나올 예정으로, 유럽이 제시한 비율을 충분히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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