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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한 목욕탕에서 마주한 따끔한 전쟁의 기억[책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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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을 좋아하는 두 일본인의 한국·일본·태국 목욕탕 탐방기

부산 주둔 일본인이 개장한 욕장, 일본 내 무기공장이던 공중탕

선명하게 나오는 전쟁의 흔적···역사는 목욕처럼 개운하지 않다

경향신문

<전쟁과 목욕탕> 속 일러스트. 저자들은 부산 국제시장에서 다양한 종류의 이태리 타월을 발견한다. | 이유출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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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목욕탕

야스다 고이치 글, 가나이 마키 글·그림 | 정영희 옮김 | 이유출판 | 384쪽 | 1만8000원 

부산에서 온천 하면 흔히 동래를 떠올리지만 해운대 역시 예로부터 온천지대였다. 뜨끈한 온천수가 퐁퐁 솟아나온 곳이라, 그곳을 들락거리는 고관대작의 뒤치다꺼리를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온천수 용출구를 막아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다. 이런 해운대에 온천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세기 초다. 부산에 살던 일본인 의사 와다노 시게루는 1905~1906년 무렵 해운대 일대 논밭을 사들인 뒤 욕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유명한 동래의 온천거리 개발 배경에도 역시 일본인들이 있었다. 1898년 부산에 살던 일본인들이 동래 온천의 임차 권리를 얻은 것을 계기로 온천이 하나둘 늘었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에는 거대 자본이 투입돼 시내 중심부와 동래 온천을 잇는 경편철도가 개통하고, 일본인을 상대로 하는 여관과 식당도 문을 열었다.

한국인의 목욕을 책임지는 ‘이태리타월’, 영남 지역에만 있다는 ‘때밀이 기계’가 태어난 부산. 이 지역 목욕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일제 강점, 그리고 전쟁의 기억과 마주하게 된다.

<전쟁과 목욕탕>은 이 기억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두 일본인의 책이다. 기자 출신 논픽션 작가인 야스다 고이치와 수필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가나이 마키가 함께 썼다. 야스다는 일본의 ‘일베’ 격인 재특회를 취재한 책 <거리로 나온 넷우익>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작가다. 가나이는 단골 술집 사람들의 이야기인 <술집 학교> 등을 통해 따뜻하고도 예리하게 삶의 단면을 포착해왔다.

다른 성별, 10년이 넘는 나이 차에도 두 사람은 ‘목욕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덕분에 친구가 됐다. 이 책 또한 목욕을 마친 뒤 이자카야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며 일본 사회를 비판하다 구상한 것이라고 한다.

시작은 가벼웠다. 태국과 한국, 일본 각지의 목욕탕을 탐방하며 가볍게 떠난 여행이었다. 두 사람의 마음은 그러나 일제가 남긴 전쟁의 상흔과 마주하며 점점 무거워진다. 느긋하게 온천을 즐기다가도 ‘가해국’ 일본의 국민으로 속죄 의식에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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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목욕탕> 속 일러스트. 오키나와현에 유일하게 남은 대중목욕탕인 ‘나카노탕’의 모습. | 이유출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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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힌다드 온천은 정글 속에 만들어진 천혜의 휴양지다. 현지인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온천이다. 그러나 이곳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자신들을 위해 지은 시설이다. 이 온천으로 향하는 옛 타이멘 철도는 일제가 동남아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건설했다. 건설 과정에는 전 세계의 포로들이 동원됐다. 이들은 처참한 노동 환경 속에서 일했다.

전쟁의 흔적은 일제 침략을 받은 나라들 외에 일본 국내 곳곳에도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은 일본의 해외 귀환자 마을 사무카와에서 이곳 최초의 공중목욕탕 ‘스즈란탕’을 취재하려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지역에 전쟁 무기로 사용된 독가스 공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꼬리에 꼬리를 문 취재를 통해 이곳에 있었던 징용공들의 기록을 찾아낸다. 열여섯 나이에 군수 공장에서 독가스 폭탄을 만들었던 노인을 만나기도 한다.

저자들은 각 지역 온천의 역사와 목욕 문화에 대해 깊숙이 탐구하지만 이야기는 늘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연으로 흘러간다. 부산에서는 전직 주한 일본대사관 직원인 최병대씨를, 오키나와에서는 유일한 대중목욕탕 주인 나카무라를 만난다. 그들이 오랜 기억을 더듬어 꺼내는 한마디 한마디에는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딸려 나온다. 목욕탕에서 발가벗은 채 취재하는 경우가 많지만 저자들은 오히려 진솔한 이야기가 나오기 쉬운 환경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결과물인 만큼 같은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두 사람이 번갈아 서술한다. 탕 안에 몸을 담그고 머리 위에 타월을 올리고 있는 야스다의 일러스트가 나오면 야스다의 차례다. 가나이가 바통을 넘겨받을 때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가나이의 모습이 나온다. 비슷한 듯 다른 시선이 흥미롭다. ‘부산 편’에서 가나이는 수건이 무제한 제공되는 남탕과 달리 1인 2장으로 제한되는 여탕 운영 방식에 ‘성차별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야스다 혼자였다면 절대 ‘발견’되지 않았을 장면이다.

공동 작업이기에 생겼을 고충도 중간중간 등장한다. 야스다와 가나이는 오키나와 미군 기지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말다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내 반성하고, 사과하고는 다시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성숙하고도 인간적인 두 사람이기에 ‘취재의 신’(야스다가 믿는 유일한 신으로 불가능할 것 같았던 취재를 가능하게 해주는 존재)이 매번 도움을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전쟁과 목욕탕>을 읽고 있으면 박박 때를 밀고 나서 깨끗해지는 몸과 달리 역사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더욱 또렷해진다. 온탕에 전신을 푹 담근 듯 이완된 마음으로 읽다가도 뾰족하게 치고 나오는 문장에 긴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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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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