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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한복판서 발견한 한글 상표...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이용석의 전쟁이 묻지 않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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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석의 전쟁이 묻지 않는 것들] 예멘 난민과 한국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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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4월 18일 예멘 북부 암란주에 있는 국내 난민 수용소의 임시 대피소 근처에 예멘 난민 어린이들이 모여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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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서울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근처 장충단 공원에서 나데르(가명)를 처음 만났다. 세계 병역거부의 날 행사 때 쓸 인터뷰 영상을 찍기 위해서였다. 배우가 꿈이라는 나데르는 인터뷰 영상을 촬영하는 내내 카메라를 의식하며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장난스럽게 지어보았다. 그러다가도 인터뷰가 시작되면 진지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데르는 전쟁을 피해서 도망쳐 나온 병역거부자 난민이었다. 나데르의 고향은 예멘 남서부에 위치한 다마르. 2017년, 17살인 그는 학교에 들이닥친 후티 반군에 강제로 끌려가 소년병 되기를 종용받았다. 나데르는 도망쳤고, 걸어서 국경을 넘은 뒤 오만과 카타르를 거쳐 인천으로 왔다.

나디아(가명)을 처음 만난 건 2019년 10월. 무기박람회 아덱스 저항행동 행사 중 하나였던 평화토크쇼 '예멘에서 한국까지'에서였다. 나디아는 토크쇼 패널이었다. 토크쇼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나디아도 예멘에서 온 난민이다. 형부와 오빠와 함께 수단, 카타르, 벨라루스, 말레이시아를 거쳐 2018년 1월 제주에 왔다.

나디아는 토크쇼에서 예멘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한국에 도착해서 난민으로 겪은 경험을 이야기했다. 언제 어디서 폭격이 일어날지 몰라 어디에도 나갈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예멘을 떠났다면서 특히 여성과 아이들이 너무나 많은 권리를 잃는다고 말했다.

나데르와 나디아가 예멘을 떠나야만 했던 가장 큰 핵심적인 이유는 내전 때문이었다. 많은 예멘인들이 전쟁을 피해 예멘을 떠나 난민이 되어 세계 곳곳으로 떠나야만 했다.

도의적인 책임뿐 아니라 직접적인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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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6월 29일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제주시 일도1동 제주이주민센터에서 국가인권위 순회 인권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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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500여 명의 예멘인이 제주에 들어왔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난민은 드러나지 않는 존재였다. 소수의 난민이 있었을 뿐, 한국 사회 전체가 '난민'이라는 존재를 피부로 느끼지는 못했다. 난민들이 떠나온 나라도, 난민들이 당도한 나라도 마치 머나먼 남의 일처럼 여겨졌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도 난민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집단적이고 역사적인 경험이 있었다. 20세기 초반 제국주의 국가들의 전쟁 틈바구니에서 많은 조선인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멀리 북간도로, 더러는 더 먼 중앙아시아나 하와이로 떠나야만 했다.

한국전쟁 또한 무수한 피난민을 양산했다. 머리에 허리에 짐을 싸매고 아이의 손을 잡고 열을 지어 떠나는 피난민의 사진을 처음 보는 한국인은 없다. '피난민'이라는 단어는 익숙하지만 '난민'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우리와 상관없는 것 같은 감각, 그것이 바로 한국 사회가 난민을 인식하는 정도였다.

한국은 1992년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했다. 2013년 아시아에서 최초로 국내 난민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난민 인정에 매우 박하고 난민의 인권상황은 매우 열악한 나라다. 2021년 한 해 동안 2341건의 난민 신청이 있었고, 모두 7109건의 심사 결정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전체의 1%인 72명,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사람은 45명이다.

2021년만 유난히 난민들에게 까다로웠던 것이 아니다. 1994년부터 2021년까지 난민 신청은 모두 7만 3383건인데 그중 난민으로 인정받은 이는 1156명이고 인도적 체류자는 2412명이다(난민인권센터). 난민들은 심사 과정에서 제대로 된 통역을 제공받지 못하고, 난민으로 혹은 인도적 체류 허가자로 한국 땅에 머물면서도 제대로 된 일자리나 생계 수단을 구하지 못하는 등 여러 차별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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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도별 난민 현황 ⓒ 난민인권센터



제주에 도착한 500여 명의 예멘 난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중 2명만 난민 지위를 부여받았을 뿐이다. 그나마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난민은 412명으로 많은 편이었다. 이들을 기다리는 건 각박한 난민심사 결과만이 아니었다.

난민을 환대하는 한국인들도 많았지만,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주에 온 예멘인들에 대한 난민 수용을 거부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여러 개 올라왔고 그중에는 70만 명이 넘게 찬성한 게시글도 있었다.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의견 중에는 이슬람에 대한 무지와 편견, 혐오를 드러내는 주장도 제법 있었다.

난민 수용을 찬성하는 쪽도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쪽도 500여 명의 예멘인들이, 나데르와 나디아가 예멘을 떠나 한국까지 오게 된 원인인 예멘 내전에 한국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와 평화활동가 동료들도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것을 천명한 헌법을 가진 나라의 국민으로서, 민주주의의 확장과 인권의 보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계시민으로서 예멘인들의 난민 신청을 한국 정부가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 예멘 난민에 한국이 도의적인 책임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한국이 예멘 내전에 연결된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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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멘 후티 반군이 예멘 정부군으로부터 획득한 무기에서 발견된 한화의 '세열수류탄' ⓒ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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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인들이 제주도에 들어온 지 몇 달이 지난 2018년 6월 한 평화활동가가 전쟁없는세상으로 캡처한 이미지 한 장을 제보해왔다. 후티 반군이 정부군을 습격해 빼앗은 무기를 늘어놓고 자랑하는 영상이 트위터에 올라왔는데 그 무기 중 '세열수류탄'이라고 한글로 쓰여 있는 장면을 클로즈업한 이미지였다.

이 수류탄은 한화에서 생산한 것으로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한 것이었다. 아랍에미리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예멘 정부군을 지원하며 예멘 내전에 깊숙이 개입한 나라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예멘 정부군이 한국 국방과학연구소와 LIG 넥스원 한화가 합작한 대전차 미사일 현궁을 민간인이 거주하는 도시 한복판에서 사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이 예멘 내전에 연결된 고리는 무기뿐만이 아니다. 한국과 아랍에미리트가 군사 업무협약(MOU)을 맺어 한국의 아크부대가 예멘의 특수전 부대의 교육과 훈련을 맡기도 했다. 이 부대원들은 예멘 내전에 참전했다.

결국 한국은 한국군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아랍에미리트를 통해서 예멘 내전에 깊숙하게 개입한 중요한 책임 국가 가운데 하나다. 물론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예멘, 혹은 무기를 지원해온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과 비교하면 책임의 정도가 약할지는 몰라도 한국에 당도한 예멘 난민 500여 명을 무시할 수는 없을 정도의 막중한 책임이다.

우리가 무기를 판매하고 군사훈련을 한 것은 아랍에미리트일 뿐이고, 예멘 내전에 아랍에미리트가 개입한 것까지 우리가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이 가입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은 기업이 "기업활동 중 인권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야기하거나 이에 기여하지 않아야 하며, 부정적 영향이 발생한 경우에는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화나 LIG넥스원더러 무척 복잡한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예멘 내전을 해결하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국산 무기 수출의 혜택을 한국 사회가 함께 누린다면 적어도 예멘 내전으로 인한 난민을 한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맞다.

또한 한국이 가입했고, 2019년 당사국 연설까지 한 무기거래조약 제6조에서는 "민간 목표물 또는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나 "그밖의 전쟁 범죄 수행에 사용될 것임을 허가 시 인지하고 있다면, 어떠한 이전도 허가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가 예멘 내전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전쟁없는세상처럼 조그만 단체도 알고 있는데 한국 정부가 몰랐을 리 없고 정말로 몰랐다면 외교부나 국방부의 정보 라인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더욱이 한국 정부는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당도한 이후에도 아랍에미리트에 무기 수출하는 것을 멈출 생각이 없다. 최근에는 4조가 넘는 금액의 천궁Ⅱ를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했고, 이 무기는 예멘 내전에서 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멘 난민에 실질적 책임 있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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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이후 대규모 난민 발생 원인과 현황. 자료출처 : 퓨리서치센터, 유엔난민기구. ⓒ 스태티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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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기후난민이 늘어나고 있지만 전쟁은 전통적으로도 그리고 현재에도 난민 발생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역사상 가장 많은 난민을 발생시킨 사건은 2011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시리아 내전으로 시리아 국민의 35%인 690만 명이 난민이 되었다.

두 번째로 많은 난민은 1989년부터 1996년까지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내전으로 발생한 630만 명의 난민이다.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이어진 아프가니스탄과 소련의 전쟁으로 560만 명의 난민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7월 말까지 990만 명을 난민으로 내몰았고 전쟁이 길어질수록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예멘 내전은 7년 동안 400만 명이 넘는 실향민을 발생시켰고 그중 수십만 명이 국경선을 넘었다. 제주도에 온 500여 명의 예멘인들은 수십만 명 중 아주 소수였다.

전쟁이 난민 발생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이야기는, 다시 말하면 전쟁과 군사 분쟁에 책임 있는 국가들이 난민 발생에 대해서도 큰 책임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이 예멘 난민에 대해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앞선 연재글 '한국은 어쩌다 전 세계 '큰 손'이 됐나'(http://omn.kr/1zol4)에서 이야기했듯이 한국은 세계 무기 시장에서 손에 꼽히는 큰 손이고, 큰 손들 가운데서도 가장 급속도로 성장하는 국가다. 한국산 무기와 시위진압 장비가 세계 곳곳에서 쓰이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전쟁과 군사분쟁에 대해, 그로 인한 난민 발생에 대해 한국은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하는 나라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난민 발생 원인인 전쟁과 군사분쟁에 대한 책임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한국산 무기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더 많은 무기 수출이 더 많은 전쟁과 무력 분쟁으로 이어지고, 그 때문에 더 많은 난민이 발생할 거라는 너무 쉬운 예측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소년병으로 후티 반군에 끌려갔다가 도망쳐서 한국에 온 난민 나데르의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수월한 인터뷰를 위해 질문지를 먼저 보냈는데 나데르에게서 답장이 굉장히 늦게 왔다. 그마저도 문장이 엉망이어서 아랍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분이 고생했다.

그런데 인터뷰 당일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나데르의 대답을 친구가 글로 써줬다는 것이다. 내전이 길어지다 보니 많은 예멘 청소년들이 안정적으로 학교 수업을 듣지 못하고 있고, 그 때문에 안 그래도 쓰기 어려운 아랍어를 쓸 줄 모르는 청소년이 제법 많다는 것이었다. 전쟁 때문에 모국어를 쓰지 못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나의 감각은, 한국 사회의 상식은 전쟁의 한가운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기에 너무 무뎠다. 인터뷰 말미에 나데르에게 한국이 판매한 무기가 예멘 내전에서 쓰인 사실을 아냐고 물어봤다. 나데르는 당황하며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렇다면 왜 한국 정부가 자신의 난민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삼키며 유감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나데르의 당황스러운 표정 앞에서 예멘 내전에 책임이 있는 한국 국민으로서 우리는 적어도 미안한 마음,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그 마음 바탕으로 한국 정부에 더 많은 난민을 책임감 있게 수용하고, 적어도 분쟁지역과 그 인근에는 무기를 수출하지 말라고 요구해야 한다.

이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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