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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정신질환 아버지와 가족을 무너뜨린 것은 낙인과 침묵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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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낙인이라는 광기'
美 정신질환 낙인 연구 권위자 스티븐 힌쇼 회고록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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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종종 예고 없이 종적을 감췄다. 스티븐 힌쇼(69) 미국 UC버클리대 심리학과 교수는 만점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아 들고 귀가했지만 아버지의 부재를 확인하고 실망했던 학창 시절을 기억한다. 그는 아버지 없이 쓸쓸하게 새 학년을 맞았고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어머니는 철학과 교수인 아버지가 학술회의를 갔다거나 친가를 방문 중이라고 둘러댔다. 힌쇼 교수가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 아버지는 오랫동안 양극성 장애를 앓아 왔고 정신병원에 입원하느라 집을 비웠음을 그제서야 털어놓는다. 자녀들에게 정신질환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주치의의 권고 때문이었다.

신간 '낙인이라는 광기'는 양극성 장애 아버지를 둔 힌쇼 교수의 가족사를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이 질환 당사자와 가족에게 미치는 파괴적 영향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가족의 절절한 고통과 스스로 이에 맞서 싸우는 치료자이자 연구자로 성장해 온 과정을 세밀하게 써 내려가며 사회적 연대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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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힌쇼 미국 UC버클리대 심리학과 교수. 아몬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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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증과 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양극성 장애는 증상 정도에 따라 극심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정신질환이다. 온화한 저자의 아버지 역시 갑자기 거만하고 노발대발하는 모습이 됐다가 원래대로 돌아오곤 했다. 저자와 저자의 가족은 충격과 불안 속에 생활해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장애보다 그들을 더 크게 괴롭힌 것은 사회적 낙인이었다. 가족은 누군가 병을 눈치채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예상 낙인'을 겪었다. 어머니는 정신질환자 가족으로서 사회 부적격자로 따돌림당하는 '명예 낙인'을 우려해 모든 걸 꼭꼭 숨겼다. 저자는 정신질환 이야기가 가족 간 금기어가 되게 만든 아버지의 정신과 주치의를 비난하면서 "낙인은 정신질환 자체보다 훨씬 나쁜 최악의 광기"라고 역설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하는 데 평생이 걸렸다고 서문에 밝혔다. 정신질환을 향한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책의 원저는 아버지의 양극성 장애 고백이 있던 1971년으로부터 50년 가까이 흐른 2017년에야 출간됐다. 저자는 신체 기형이나 동성 결혼 등을 예로 들어 "사회가 수용적으로 변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면서도 "정신질환과 지적장애는 시대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뚜렷한 낙인이 찍히는 속성"이라고 주장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다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처럼 대중문화는 정신질환이나 정신장애의 부적응 행동조차 매력적으로 그리지만 관련 기사에는 여전히 혐오성 댓글이 달리는 게 현실이다. 저자는 "낙인은 일부 편향된 개인들의 소집단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회에 존재한다"며 "낙인을 극복하려면 인류 전반의 태도와 공감 능력에 거대하고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일보

낙인이라는 광기·스티븐 힌쇼 지음·신소희 옮김·아몬드 발행·453쪽·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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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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