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에서 공천이나 경선 과정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당대표가 자기 당을 피고로 소송을 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더구나 집권 석 달 만에 여당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경우는 파란만장한 우리 정당 역사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 전 대표 측은 지난 2일 최고위가 비대위 전환을 위한 전국위 소집 안건을 의결할 때 이미 사퇴 입장을 밝힌 배현진·윤영석 전 최고위원이 참여했기 때문에 해당 의결 자체가 무효라고 한다. 하지만 두 최고위원이 아직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여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비대위 출범 안건은 지난 9일 국민의힘 전국위에서 90% 찬성 투표로 통과됐다. 만약 법원이 절차적 하자를 인정해 가처분을 인용하면 집권당 대표가 2명이 되는 희한한 상황이 된다. 법원이 기각하면 이 대표는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는다.
이 전 대표는 자신에 대한 징계가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억울한 감정을 누르지 못하는 것 같다. 이른바 ‘윤핵관’들이 자신을 밀어내려고 문제를 만들었다는 생각도 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국민 상당수는 ‘윤핵관’ 못지않게 이 전 대표의 처신에도 반감을 표시하고 있다.
지금 국민은 고물가·고금리에 허덕이고 물난리까지 겹쳐 삶이 고달프다. 그러나 여당은 지난 석 달간 민생을 안정시키기는커녕 내분으로 날을 보냈다. 그마저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법원에 내분을 들고 갔다. 여기에 이 전 대표 책임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법원은 오는 17일을 가처분 신청 첫 심문 기일로 잡았다. 그전에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기 바란다. 이 전 대표는 손해 보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 후일을 기약하고, 국민의힘은 당 차원에서 이 전 대표가 결단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집권당의 지리멸렬은 민생 고난으로 이어진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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