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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사설] 당대표가 자기 당을 상대로 소송을 낸 적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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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당 전국위의 비대위 전환 결정에 반발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이 전 대표는 “‘절대 반지’에 눈먼 사람들이 국민 심려가 큰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대위를 강행했다”고 했다. 이 전 대표를 지지하는 ‘국민의힘바로세우기’ 소속 책임당원 1550여 명도 11일 같은 취지의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는 13일 기자회견도 예고했다. 내분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당에서 공천이나 경선 과정에 불만을 품은 사람이 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당대표가 자기 당을 피고로 소송을 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더구나 집권 석 달 만에 여당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경우는 파란만장한 우리 정당 역사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 전 대표 측은 지난 2일 최고위가 비대위 전환을 위한 전국위 소집 안건을 의결할 때 이미 사퇴 입장을 밝힌 배현진·윤영석 전 최고위원이 참여했기 때문에 해당 의결 자체가 무효라고 한다. 하지만 두 최고위원이 아직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여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비대위 출범 안건은 지난 9일 국민의힘 전국위에서 90% 찬성 투표로 통과됐다. 만약 법원이 절차적 하자를 인정해 가처분을 인용하면 집권당 대표가 2명이 되는 희한한 상황이 된다. 법원이 기각하면 이 대표는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는다.

이 전 대표는 자신에 대한 징계가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억울한 감정을 누르지 못하는 것 같다. 이른바 ‘윤핵관’들이 자신을 밀어내려고 문제를 만들었다는 생각도 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국민 상당수는 ‘윤핵관’ 못지않게 이 전 대표의 처신에도 반감을 표시하고 있다.

지금 국민은 고물가·고금리에 허덕이고 물난리까지 겹쳐 삶이 고달프다. 그러나 여당은 지난 석 달간 민생을 안정시키기는커녕 내분으로 날을 보냈다. 그마저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법원에 내분을 들고 갔다. 여기에 이 전 대표 책임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법원은 오는 17일을 가처분 신청 첫 심문 기일로 잡았다. 그전에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기 바란다. 이 전 대표는 손해 보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 후일을 기약하고, 국민의힘은 당 차원에서 이 전 대표가 결단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집권당의 지리멸렬은 민생 고난으로 이어진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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