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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3] 치수(治水) 능력이 곧 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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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메갈로폴리스 도쿄의 역사는 16세기 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히데요시 때문에 반강제로 에도(江戶)로 영지를 옮긴 데서 비롯된다. 당시 에도는 인간 거주에 적합한 땅이 아니었다. 도시를 관통하는 ‘에도강’이 시시때때로 범람하여 거주지와 기반 시설을 황폐케 하는 것이 도시 개발에 큰 애로였다. 에도의 배후에는 ‘간토(關東) 평야’가 있었으나, 이곳도 우기마다 범람하는 ‘도네(利根)강’의 수해로 쓸모가 제한되어 있었다.

초기 쇼군들은 두 강의 치수에 역점을 기울였다. 도네강은 간토(關東) 지방에서 가장 수량이 많고 유역이 넓은 강이다. 상류의 여러 갈래 지류를 합류시킨 다음, 중간 지점에 대규모 제방을 쌓아 에도 쪽으로 흐르는 물길 일부를 도네강으로 돌림으로써 주변 지역의 수해를 제어하고 농경지를 확보하는 것이 치수의 요체(要諦)였다. 이에야스 때부터 3대 70년에 걸쳐 이룩한 이 대업을 ‘도네강 동천(東遷)’이라고 한다.

그 효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에도의 물난리가 줄어든 것은 물론 간토 평야가 일본 제1 곡창 지대가 된 것이다. 에도가 18세기 초반 인구 100만을 수용하며 막부 통치의 거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도네강 동천으로 에도의 거주 안정성을 높이고 든든한 배후 식량 공급지를 확보한 데서 힘입은 바 크다.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극복한 개발 모범 사례가 되어 여타 다이묘들의 국토 개발 의욕을 자극하는 효과도 있었다.

도네강 동천은 과거 일만은 아니다. 2006년에 완공된 ‘수도권 외곽 방수로(放水路)’는 지하 50m 지점에 총연장 6,3km에 이르는 대용량 수로를 만들어 위기 때 에도강의 유량을 도네강으로 유입시키는 시설이다. 400년 시차가 있지만 기본 발상은 도네강 동천과 같은 맥락이다. 도쿄의 발전사는 치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수 능력이 곧 국력이라고 바꿔 말해도 좋을 것이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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