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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주정완의 시선] 월세의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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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주정완 논설위원


8월 전세대란은 없었다. 임대차2법 시행 2년을 맞아 일부에서 제기했던 전세대란설은 결국 헛다리를 짚은 셈이 됐다. 오히려 주택시장의 통계 지표는 전셋값 하락세를 가리킨다. 한국부동산원이 일주일 간격으로 내놓는 아파트 가격 동향을 살펴보자. 지난 8일 기준으로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은 일주일 전보다 0.03% 내렸다. 9주 연속 하락세다. 경기도와 인천에선 전셋값 하락 폭이 서울보다 컸다.

그럼 세입자의 주거난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걸까. 그건 아니다. 현재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건 전세가 아니라 월세 시장이다. 월세난은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 맹점이 있다. 주택시장 통계에서 월세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서다. 한국부동산원과 KB부동산 모두 주간 단위로는 월세 통계를 내지 않는다. 대신 월간 보고서 뒷부분에서 월세 관련 내용을 잠깐 다루는 정도다.



금리 급등하자 월세도 함께 뛰어

9주 연속 하락한 전세와 대조적

임대차2법 개편 서둘지 말기를

가장 최근에 나온 월세 통계는 KB부동산의 7월 보고서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월세는 한 달 전보다 0.3% 상승했다. 지난달만 유난히 오른 건 아니다. 올해 들어 7개월간 서울 아파트 월세는 지난해 말보다 3.6% 올랐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전세와 월세 시장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일반적이다. 지금처럼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건 이례적이다. 올해는 결정적인 요인이 양쪽 시장에 서로 다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바로 금리 인상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은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올렸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직후 연 0.5%까지 내려갔던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현재 연 2.25%로 올라섰다. 최근 1년간 여섯 차례에 걸쳐 1.75%포인트 인상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올해 말까지 추가로 금리를 인상할 뜻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제 초저금리로 대출이자를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던 시절은 잊어야 한다.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최고 금리는 10년 만에 연 6%를 넘어섰다. 만일 연 6% 금리로 2억원을 빌린다면 연간 이자는 1200만원이다. 매달 전세대출 이자로 100만원씩 내야 한다는 얘기다. 저소득층은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중산층에게도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그런데 전세금 일부를 월세로 돌린다면 계산이 조금 달라진다. 집주인이 대출이자와 비슷하거나 낮은 수준의 월세를 제시한다면 세입자가 마다할 이유가 별로 없다. 집주인 입장에서도 손해 보는 거래가 아니다. 사실 전세금을 목돈으로 받아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다. 세금을 제하고 은행 예금이자보다 많이 받는다면 월세 전환도 나쁘지 않다. 최근 전세 비중은 작아지고 월세 비중은 커지는 현상(전세의 월세화)에 속도가 붙는 배경이다.

월세는 은행의 변동금리 대출과 비슷한 속성이 있다. 계약 갱신 주기인 2년마다 금리 수준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다. 이미 시중금리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전세금을 월세로 돌릴 때 적용하는 이율(전·월세 전환율)도 함께 올랐다. 그만큼 월세 계약서를 새로 쓸 때 세입자 부담도 커졌다.

이럴 때 세입자를 돕기 위해 정부가 초점을 맞춰야 하는 쪽은 어딜까. 당연히 월세 시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엉뚱한 방향을 겨냥하는 분위기다. 국토교통부와 법무부는 지난달 말 임대차2법 개정을 목표로 한 국장급 태스크포스를 출범시켰다. 앞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5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임대차2법에 대해 “폐지에 가까운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 장관은 지난 6월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2년 전 문재인 정부와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임대차법을 졸속으로 통과시키면서 심각한 부작용을 안겨준 건 사실이다. 통계 수치가 명확하게 보여준다. 2020년 하반기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10.8%를 기록했다. KB부동산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86년 이후 34년 만에 최고치였다. 날씨에 비유하면 쓸데없이 집중호우를 유도하는 바람에 엄청난 피해를 자초한 셈이다.

법 시행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거나 개선하는 건 필요하다. 그렇다고 임대차법을 아예 폐지하거나 무력화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 야당의 반대만 문제가 아니다. 국민 생활에 매우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지난 2년간 시장 참여자들은 좋건 싫건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이고 적응한 상태다. 이미 시행 중인 제도를 거꾸로 되돌리면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더구나 최근 전세 시장은 하향 안정세를 보인다. 이 시점에서 전 정권과 차별화하기 위해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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