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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사설] 무너진 법치주의 현실 보여준 ‘김학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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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9년 11월 1심 선고를 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그는 11일 대법원에서 모든 혐의의 무죄 및 면소 판결을 받았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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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시효 지나 면소됐지만 도덕적 비난 받아 마땅





1·2차 부실수사, 무리한 재수사 모두 권력 눈치 본 탓



어제 대법원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모든 혐의에 무죄 및 면소 판결을 확정했다. 증인 진술이 뒤바뀌어 신빙성을 갖기 어렵고, 일부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나 사법적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로써 2013년 3월 ‘별장 성접대 의혹’으로 불거진 김 전 차관 사건이 9년여 만에 종결됐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도덕적 책임에까지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 증거들은 여전히 실체적 진실 논란을 빚고 있어서다. 성접대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나 면소됐지만, 1심 재판부는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이 맞다고 판단했다.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의 성문 분석 결과도 95% 일치한다.

이 사건이 용두사미로 끝날 때까지 9년간 보여준 대한민국의 법치 현실은 개탄스럽다. 제일 먼저 초동수사가 부실했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013년 검찰은 경찰의 체포영장 신청을 반려했고, 김 전 차관의 집과 휴대전화도 압수수색하지 않았다. 4개월의 짧은 수사로 마무리한 뒤 불기소 처분했다.

이듬해 ‘별장 성범죄’ 피해 주장 여성의 고소로 2차 수사가 시작됐지만 이번에도 무혐의로 끝났다. 특히 김 전 차관에 대한 소환조사 없이 종결돼 권력자 봐주기이자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두 차례의 부실 수사로 증거 수집은 부족했고, 일부 혐의는 재판 과정에서 공소시효가 끝났다.

더 큰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재수사였다. 적폐 수사의 칼날을 지난 정권에 들이대며 이 사건을 수면 위로 다시 끄집어냈다. 뇌물과 성접대라는 자극적 소재를 앞세워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검경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수사하라”며 압박했다.

지난 정권에서 수사를 뭉갰던 검찰은 이번엔 온갖 무리수를 뒀다. 끝내 ‘불법 출국금지’ 국면에 이르러 법치주의의 근간마저 무너뜨렸다. 가짜 내사번호를 써내 김 전 차관을 출국금지하고, 법무부와 대검찰청이 개인의 민감한 사적 정보까지 불법 수집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검찰이 같은 사건을 놓고 서로 상반된 태도를 보인 사태의 본질은 공권력이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받았기 때문이다. 즉 헌법과 법률이 정한 원칙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사하지 않고 권력의 눈치를 보며 상부의 입맛에 맞게 아전인수로 법을 끌어다 썼다는 뜻이다.

법치주의는 국민이 양도한 국가 권력을 오직 집단지성의 총아인 법에 따라 행사하는 걸 의미한다. 법 앞에선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뜻이다. 권력자의 눈치를 보며 사건을 뭉개거나, 거꾸로 무리하게 수사하는 것 모두 법치를 파괴하는 행위다. 9년을 끌어 온 김학의 사건이 공권력과 우리 사회에 던진 묵직한 과제다. 법치가 무너지는 순간, 민주주의도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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