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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인 역차별 해소 못하고 변죽만 울린 총수지정제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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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전경.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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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시대착오적인 '대기업집단 총수 지정 제도'를 개혁하겠다고 하더니 변죽만 울리고 태산명동서일필 꼴이 됐다. 한국에서 우리 기업인이 역차별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외국인도 총수로 지정하겠다"고 기세등등하더니 이 추진 계획을 슬그머니 빼버렸다.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의 대주주를 총수로 지정하고 그 총수 친인척의 주식 현황과 계열사와의 거래를 일일이 간섭·규제하는 이 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규제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갈라파고스 규제이다 보니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반발하는 외국 정부를 설득할 방법이 없었던 탓이다.

'내·외국인 차별 해소'라는 핵심은 이렇게 해서 쏙 빠지고 변죽만 울려댔다. 내부거래 규제 대상인 총수의 친족 범위를 혈족은 6촌에서 4촌으로, 인척은 5촌에서 3촌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핵가족화가 진행된 시대 변화를 반영해 친족 범위를 줄였다고 생색을 내고 싶겠지만 우스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총수가 되면 연좌제 그물을 씌우듯 친인척들의 거래를 규제하는 데 대해 어느 선진국이 이해를 하겠는가.

한국 기업인에게 적용하는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한국GM의 경우 미국GM 본사의 최고경영자, 에쓰오일의 경우 사우디 왕실을 총수로 지정해야 한다. 이들을 총수로 지정할 수 없다 보니 애꿎은 한국 기업인들만 1987년부터 총수로 지정해 규제폭탄을 떠안기고 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2020년 친족 기업의 자료 미제출로 검찰에 고발됐는데, 그 기업 중에는 사촌이 운영하는 한식점도 있었다고 한다. 세계 시장에서 구글·페이스북과 경쟁하는 경영자에게 이런 자료까지 내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는가. 더욱이 자료를 누락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한다.

정부는 사익 편취를 막기 위해 규제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억지 논리다. 사익 편취는 형법상 배임·횡령죄나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 조항을 적용해 처벌하면 될 일이다. 우리 땅에서 우리 기업인을 더 차별하는 총수지정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정부가 개선에 나섰다가 모양만 더 우스꽝스러워졌다. 총수지정제는 폐지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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