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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아 버텨!” 꼭 안아준 의인들… 신림 반지하 ‘기적의 3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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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지난 8일 밤 10시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건물 반지하방 창문 앞에서 시민 영웅들이 갇혀 있는 이웃을 구조하는 장면. /뉴스1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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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버텨! 침착해! 불빛 보고 와, 바로 손잡으면 돼!”

기록적 폭우가 서울을 매섭게 덮치던 지난 8일 밤 10시쯤.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골목에서는 사람들의 다급하고도 다정한 외침이 울렸다. 고작 70㎝ 폭에 불과한 담벼락과 건물 외벽 사이, 이 좁은 공간에 몰려든 이들은 반지하 방에 갇힌 이웃의 이름을 부르며 ‘3분의 기적’을 이뤄내고 있었다.

당시 상황은 현장을 목격한 시민 나종일씨가 직접 카메라에 담은 영상이 공개되며 전해졌다. 반지하방 침수로 일가족 3명이 숨졌던 그곳에서 불과 4분 거리에 있던 또 다른 건물에서 촬영된 영상이다. 뉴스1과 SBS 등을 통해 보도된 장면을 보면, 이미 빗물이 차올라 보이지 않는 반지하방 창문 앞에 선 남성 여러 명이 등장한다. 이들은 “이거 깨야돼요!” “뒤로 비켜!” “차에 가면 창문 깨는 거 있어요. 그것 좀 갖다줘요!”라고 외치며 창문을 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파이프렌치와 소화기 등을 동원해 있는 힘껏 창문을 쳤지만 구조 작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창문은 수압 탓에 꿈쩍하지 않았고 물속이라 내려치는 힘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와 땀에 젖은 얼굴을 물에 씻어내면서도, 의인들은 멈추지 않았다. 소화기를 든 남성은 유리 파편에 손을 다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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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방에 갇힌 이웃을 구조해 낸 의인들이 구조자를 품에 안고 다독이는 모습. /뉴스1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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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성은 방 안에 갇힌 이웃의 이름을 부르며 “○○아 조금만 버텨!”라고 소리쳤다. “침착해, 침착하게 있어. 조금만 기다려” “불빛 보고 오면 돼! 바로 손잡으면 돼!”라는 말로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 역시 휴대전화 불빛을 켜 이들의 구조 작업을 도왔다.

그러기를 얼마 후 “깼어, 깼어!”라는 외침이 들려왔고 곧이어 “바로바로” “손 손 손! 숨 쉬어!” “다 나왔어, 괜찮아”하는 말들이 이어졌다. 잠시 후 갇혀 있던 이웃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현장에서는 “살았다” “아이고”라는 탄성과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기적을 만들어 낸 남성들의 행동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한 남성은 급박했던 상황에 놀란 구조자를 끌어안아 준 뒤 등을 토닥였다. 온몸이 빗물에 젖은 구조자는 그렇게 한동안 남성의 품에 안겨 호흡을 가다듬었다. 공포와 환희와 감동이 차례대로 몰아친 순간, 3분 남짓한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의인들 도움으로 구조된 이승훈씨는 빗물이 종아리 정도까지 차자 탈출하려 했지만 수압 때문에 문이 열리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30분만 더 있었다면 저는 아마 이 세상에 없었을 수도 있다”며 “저도 항상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감사하다”고 SBS에 말했다.

[문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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