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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신비는 풀렸지만 신화는 계속된다, 과학의 언어로[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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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플라이 미 투 더 문 (Fly me to the Moon)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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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직접 본 달은 ‘울퉁불퉁’
뉴턴·코페르니쿠스 등의 발견 또한 기존 세계관 무너뜨려

“나를 달로 날려주세요(Fly me to the Moon)

별들 속에서 노닐 수 있게(Let me play among the stars)”

바트 하워드의 명곡 ‘플라이 미 투 더 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번쯤 달까지 날아오르고 싶은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품었음직한 꿈이었을 것이다. 달은 태양과 함께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천체이다. 그래도 달은 하늘에 떠 있기 때문에 가깝지만 먼 세계이기도 하다. 중세까지 서양 지성의 2000년을 지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달을 기준으로 천상계와 지상계를 구분했다. 천상계는 한마디로 영원불멸의 무결점 세상으로 에테르라는 제5원소로 가득 차 있으며 완벽한 구형의 천체가 완전한 원운동을 하고 있다. 달 또한 표면이 매끄럽고 완벽한 구체라 여겼다. 반면 지상계는 엠페도클레스가 주창했던 4원소(흙, 물, 불, 공기)로 구성된 세상으로 항상 변화무쌍하고 불완전하다.

맨눈으로만 하늘을 보던 인류가 처음으로 광학기기를 이용해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한 것은 겨우 400여년 전이다. 1609년 이탈리아의 파도바대학에 재직 중이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자신이 손수 제작한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측했다. 당시는 망원경이라는 물건이 세상에 나온 직후였다. 갈릴레이는 광학기기를 이용해 천체를 관측한 최초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갈릴레이가 20배율 망원경으로 관측한 달은 선현들이 묘사했던 모습과 사뭇 달랐다. 달의 표면은 매끈하다기보다 거칠었고 울퉁불퉁했으며 심지어 파인 구덩이도 많았다. 게다가 산과 계곡도 있어서 지구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수학에 능통했던 갈릴레이는 기하학을 이용해 산의 높이를 추정하기도 했다.

갈릴레이가 달을 관측한 결과는 당시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데 메디치 2세에게 헌정된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초반부에 자세히 설명돼 있다. 1610년 발간된 이 소책자에는 갈릴레이가 직접 그린 달의 모습도 실려 있다. 또한 달의 더 밝은 부분을 육지로, 더 어두운 부분을 바다에 해당한다고 적시했는데, 지금도 우리는 갈릴레이를 따라 바다(mare)라 부른다. 가장 유명한 달의 바다는 1969년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착륙한 고요의 바다(mare tranquillitatis)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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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의 관측은 당시의 회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갈릴레이 시대 이전에는 종교적인 성화에 등장하는 달이 모두 매끈한 수정구처럼 표현되었다. 그러나 갈릴레이의 친구이자 화가였던 루도비코 치골리가 그린 그림은 달랐다. 치골리는 갈릴레이와 자주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였고 이 과정에서 갈릴레이는 자신이 망원경으로 관측한 달의 모습을 자세히 전해주었다. 로마의 테르미니 기차역에서 남서쪽으로 네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가면 치골리가 그린 새로운 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조레 대성전 안에 있는 파울리나 예배당의 천장 돔에 그려진 ‘성모마리아’가 치골리의 작품이다. ‘성모마리아’는 “하늘에 큰 이적을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는 요한계시록 12장 1절의 내용을 묘사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 성모 발아래의 달은 갈릴레이의 관측 결과를 충실히 반영해 울퉁불퉁하고 거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같은 내용을 그린 다른 작품들에서는 달이 맑고 매끈한 수정구로 그려진 것과 대조적이다.

성경의 구절을 묘사한 그림이라면 모든 것이 신성하고 완벽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느낌’은 공교롭게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과 무척 잘 부합한다. 신앙심이 깊으면서도 아리스토텔레스에 익숙한 사람들은 치골리의 ‘성모마리아’를 불경스럽게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과학적인 관측 결과는 이처럼 신화나 종교의 환상을 무참하게 깨버리는 경우가 많다. 근대과학의 문을 활짝 열었던 갈릴레이는 그 선봉에 섰던 사람이다. 어쩌면 그가 훗날 종교재판을 받은 것은 필연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달은 갈릴레이가 종교적 환상을 타파하는 출발점이었다.

사실 근대과학의 탄생은 천상의 비밀을 벗겨 내면서 시작됐다. 16~17세기 서유럽에서 근대과학이 태동하고 형성된 이른바 ‘과학혁명’의 시작은 16세기의 코페르니쿠스와 17세기의 케플러 및 갈릴레이가 주도한 천문학혁명이었다. 혁명의 대상이었던 천체들은 신화 속 신들의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까 천문학혁명, 그리고 과학혁명은 신화적 환상을 타파하며 신들에 대한 불경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아쉽게도 갈릴레이는 달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했다. 그에게 종교재판이라는 시련을 안긴 책 <두 체계의 대화>는 원래 밀물과 썰물의 현상을 지구의 자전운동과 공전운동의 조합으로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탄생했다. 이 목적을 달성한 사람은 그가 죽은 지 거의 1년 뒤에 영국에서 태어난 아이작 뉴턴이었다.

뉴턴이 발견한 보편중력의 법칙은 지상계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과 천상계에서 천체들이 회전하는 현상을 한꺼번에 설명할 수 있었다. 이로써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분법적 세계관은 완전히 무너졌다. 뉴턴의 법칙에 보편(universal)이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뉴턴의 중력법칙에 따르면 질량이 있는 두 물체는 각 물체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크기의 힘으로 서로 당긴다. 중력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지구에서 달에 가까운 쪽이 달의 중력을 가장 크게 느끼고 멀어질수록 달의 중력을 작게 느낀다. 그 결과 지구의 중심에서 보자면 마치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것과 같은 힘이 작용해 해수면이 양쪽으로 부풀어 오른다. 이것이 밀물과 썰물의 원인이다.

달의 중력 때문에 부풀어 오른 지구의 해수면은 지구의 자전을 방해하는 효과를 발휘해 미세하게나마 지구의 자전을 늦춘다. 그 결과 하루의 길이도 조금씩 늘어난다. 달의 입장에서는 지구 때문에 비슷한 효과가 작용해 자전주기가 공전주기와 같아져 항상 같은 면만 지구를 향하고 있다. 또한 이런 효과의 결과로 달과 지구의 거리도 조금씩 멀어진다. 과학이 무례하게도 신화적·종교적 환상을 걷어내긴 했지만, 덕분에 우리는 잘못 알았던 현상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었고 이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도 알아낼 수 있었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는 “시심이 파괴됐다” 했지만
과학자들은 우주개발계획에 옛 신화·전설 속 이야기 붙여
우리도 ‘아르테미스’ ‘옥토끼’처럼 새 신화 써내려갈 시간

그렇게 과학혁명의 정점을 찍고 근대과학을 확립한 뉴턴도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의 불만을 피하지는 못했다. 키츠는 뉴턴이 프리즘으로 무지개를 여러 색깔로 풀어헤치는 바람에 시심을 파괴해 버렸다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낭만적인 과학자들은 신화나 전설의 마지막 껍데기까지 모두 내다버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무미건조하고 칙칙한 과학적 성과를 신화와 전설의 외피로 둘러싸기를 즐긴다. 1950~1960년대 미국의 유인우주선 계획은 머큐리-제미니-아폴로 계획으로 이어지는데, 머큐리는 전령의 신(헤르메스)이며 제미니는 쌍둥이자리가 된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 신화에서 따온 이름이고, 아폴로는 태양의 신이다. 아폴로의 쌍둥이 누나인 아르테미스는 달과 사냥의 여신으로, 미국 주도로 새롭게 시작하는 달 탐사 계획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르면 8월 말~9월 초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아르테미스 1호 탐사선(무인)을 달 궤도로 발사할 예정이다. 작년 5월 한국도 아르테미스 약정에 서명했다. 중국의 달 탐사 계획 이름은 창어(嫦娥)로, 중국 신화 속 달의 여신 항아를 일컫는다. 2013년 창어 3호가 달에 착륙시킨 로버의 이름은 위투(玉兎)로 옥토끼를 뜻한다.

이처럼 신화와 전설의 환상을 깨는 우주개발계획에 신화 속 인물들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과학의 성과가 단순히 과거와의 단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 새로운 신화로 거듭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1971년생인 나에게 아폴로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인물이기보다 달에 착륙선을 보낸 우주선으로 더 신화화되어 있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을 때, 달에까지 사람을 보내 떡방아 찧는 옥토끼가 없다는 걸 굳이 확인했어야 했냐는 불만 아닌 불만도 있었다. 그때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못 사는 나라였고 우리에게 달까지 날아가는 과학기술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꿈같은 일이었다. 그 때문에 해외 선진국의 달 착륙은 우리의 꿈과 신화를 앗아간 ‘행패’로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선진 우주기술을 빨리 습득했더라면 우리의 달 탐사선에 옥토끼라는 이름을 중국보다 먼저 사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던 우리도 이제는 달에 우리의 탐사선을 보내게 되었다. 지난 8월5일 발사에 성공한 달 궤도선 다누리호는 지구에서 150만㎞까지 멀어졌다가 다시 올해 말 달 궤도에 안착할 예정으로, 대한민국이 만든 물체 중 지구에서 가장 멀리까지 비행하는 물체이다. 우리보다 먼저 달에 탐사선을 보낸 여섯 나라(소련, 미국, EU, 중국, 일본, 인도)는 모두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크고 인구도 1억이 넘는다. 좁은 땅덩어리에 인구 5000만에 불과한 나라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다. 다누리호에 탑재된 NASA의 섀도캠은 향후 아르테미스 계획에서 요긴하게 쓰일 예정이다. 다누리호 발사로 한·미 간 아르테미스 협력이 이미 시작된 셈이다.

무엇보다 우리도 이제 다누리호를 통해 우리 시대의 새로운 신화와 전설을 함께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마침 다누리호는 방탄소년단(BTS)의 메가히트곡 ‘다이너마이트’를 우주 인터넷 시험 차원에서 지구로 전송할 계획이라 기대가 크다.

“오늘밤 나는 별들 속에 있으니까요(Cos ah ah I’m in the stars tonight) … 다이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마이트 같은 우리 인생(Dy-na-na-na, na-na, na-na-na, na-na-na, life is dynamite)”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영원히 달에서 울려 퍼질 수 있길 소망해본다.

▶이종필 교수

경향신문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이종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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