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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 위 올라 덜덜덜"... 그때 나무 막대기가 사람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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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폭우에 고립된 반지하, 세 명의 목숨 구한 군포 경찰 그리고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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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집중호우로 경기도 군포시 금정역 인근 반지하 주택에서 경찰의 도움으로 구조된 황춘실씨가 11일 오전 자신의 집에서 당시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물이 허리까지 차올라 변기를 밟고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 유성호



8월 8일 밤 11시, TV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어느 때와 다름 없는 저녁이었다고 했다. 낮에 비가 많이 온 건 알았지만 '설마'했다고 한다. 그런데 난데없이, 발 아래로 물이 찰랑했다. 비가 집안으로 들어차고 있었던 것이다.

황춘실(63)씨는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대문은 열리지가 않고, 어디 빠져나갈 데가 있어야지. 반지하라 화장실이 다른 데보다 좀 높게 지어져 있거든요. 그리로 옮겨갔는데 순식간에 물이 불어서 허리까지 차오르는 거라. 그래서 변기를 밟고 올라갔죠. 화장실 문을 붙잡고, 이게 떠내려가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동생한테 전화하고 친구한테 전화하고... 아무도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정말 이 길로 죽는구나 그랬어요."

첫 전화를 건 시간이 오후 11시 14분께. 겨우 동생과도 통화가 됐다. 경찰에 신고도 했고 가까운데 사는 친구도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했다.

"정말 변기에서 발을 못 떼겠더라고요. 다리가 덜덜덜덜 떨려서... 그러고는 계속 기다리는데 물이 여기까지 찼어요."

황씨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바닥으로부터 1m60cm가량 돼 보이는 지점이었다. 11일 오전에 찾은 황씨의 집은 옷장이 무너졌고 싱크대가 부서졌으며, 대문마저 수압에 우그러진 상태였다. 모든 가구와 집기들이 흙에 범벅이 돼 있었다. 빗물이 할퀴고 간 검은색 흙길이 집안 벽면을 빙 둘러싸고 진하게 남아 있었다.

황씨의 집은 지하철 4호선 금정역 인근,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빌라촌이다. 큰 도로에서 다섯 계단 아래로 내려오면 빌라들이 모여있는 곳에 닿는다. 저지대라는 뜻이다. 당시 군포의 1시간 강수량은 112.5㎜(8일 오후 10시 26분∼11시 26분)로 도내 최대치였다고 한다.

빗물이 아래로, 아래로 몰려 들었고 황씨의 집은 그때 침수된 반지하 중 하나였다.

"창 밖에 사람이 서더니 창문이 깨지고 나무 막대기가 쑥 들어와서 그거 잡고 겨우 나왔어요. 정말 공포에 질렸지. '이제는 살았다' 그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요."

황씨가 지상에 발을 디딘 건 8일 자정이 지나고난 뒤였다. 그리고, 비가 그쳤다.

창 밖의 순간... "창문 너머로 사람이 보이니 일단 깨야겠다 생각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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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포경찰서 금정파출소 소속 송진혁, 정재형 경장 등 4명은 지난 8일 집중호우로 경기도 군포시 금정역 인근 반지하 주택에서 계단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 빗물 때문에 고립된 전순녀씨와 황춘실씨를 방범창을 뜯어내고 극적으로 구조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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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집중호우로 경기도 군포시 금정역 인근 반지하 주택에서 경찰의 도움으로 구조된 황춘실씨의 지인이 11일 오전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게 “언니를 구해줘서 고맙다”며 연신 감사를 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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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집중호우로 경기도 군포시 금정역 인근 반지하 주택에서 경찰의 도움으로 구조된 전순녀씨가 11일 오전 자신의 집을 찾은 송진혁, 정재형 경장에게 “생명의 은인이다”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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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창 밖, 출동한 경찰들 역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11일 만난 군포경찰서 금정파출소 소속 송진혁 경장은 "8일 현장에 가보니 허리까지 물이 차올라 있었고, 어느 구간은 가슴팍까지 물이 차오른 상태였다"며 "창문 너머로 사람이 보이니 일단 창문을 깨야겠다 생각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집에 물이 차서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는 다급한 신고 전화가 걸려온 건 8일 밤 11시 10분께. 금정역 인근이 물에 잠겨 거점 순찰 중이던 송진혁·정재형 경장 등 4명은 그 길로 빌라촌으로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한 것이 11시 13분이었다.

경찰들은 앞서 B102호에 사는 전순녀(62)를 구한 후 "안 쪽 집에도 사람이 있다"는 주민들의 외침에 건물을 돌아 B101호의 황씨를 구조했다. B102호 전씨의 집은 외부로 나 있는 창 모두에 방범창이 설치돼 있었다. 송 경장은 "물 위에 떠다니는 나무 막대기 등을 집어다가 지렛대로 밀어내서 창틀을 뜯어냈다"고 설명했다.

자신을 구해준 송진혁·정재형 경장을 사건 이후 처음 만난 전순녀씨는 연신 "고맙습니다"라며 허리를 숙였다.

"갑자기 물이 목까지 차서 제가 소리를 질렀는데도 밖에서 안 들리는 거 같더라고요. 정말 죽는구나 했는데, 아이고... 정말 고맙습니다."

황춘실씨 동생 황미선(61)씨도 "경찰분들이 있어 나라가 안전할 수 있다. 생명의 은인"이라며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조선족인 황미선씨는 8년 전 한국에 들어와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날도 간병일을 하느라 병원에서 밤을 지샜고, 폭우에 언니를 잃을까봐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한국 살기 좋다'며 언니까지 5년 전 한국으로 오게했는데 까딱하면 언니를 잃을 뻔 했다"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창 밖의 또 다른 순간... "사람 구하는 게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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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집중호우로 경기도 군포시 금정역 인근 반지하 주택에서 경찰의 도움으로 구조된 황춘실씨가 11일 오전 자신의 집 벽면에 남겨진 침전물을 가리키며 “당시 쏟아져 들어온 빗물로 여기 높이까지 잠겼다”며 설명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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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집중호우로 경기도 군포시 금정역 인근 반지하 주택에서 경찰의 도움으로 구조된 황춘실씨가 11일 오전 자신의 집에서 침수된 방을 둘러보며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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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집중호우로 경기도 군포시 금정역 인근 반지하 주택에서 경찰의 도움으로 구조된 전순녀씨가 11일 오전 자신의 집에서 침수된 부엌을 둘러보며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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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수라장 같은 현장에 조력자들이 있었다. 모두 내 일처럼 발을 동동 굴렀고, "저 안에 사람이 있다"고 소리쳤다. 같은 빌라 1층에 사는 정상매(60)씨는 8일 밤 11시 경 비오는 소리에 문을 열고 나와 봤다고 했다.

"어디서 콸콸콸 소리가 나서 나왔더니 세상에, 무릎까지 물이 올라와있더라고요. 빌라에 물이 안 들어오게 유리문을 막아 서는데 아랫집에 사람이 있다 생각이 들더라고. 지하에 두 집이나 사니까. 아래는 벌써 머리 위까지 물이 차서 달랑 한 거야. 그 자리에서 경찰에 신고도 하고 근처에 사는 큰사위도 오라고 했지 '사람 살리라'고."

정상매씨의 큰사위 왕국강(38)씨는 장모의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와 지하에 사는 전순녀씨를 구했다. 경찰이 방범창을 뜯자 창문을 타고 넘어들어가 전씨를 물속에서 붙잡아서 끌고 나왔다.

왕씨는 "(지하에 거주하는 이웃) 이모님 구한다고 들어간 거고, 무섭지는 않았다"며 "'사람 구하는 게 먼저다' 그 정신으로 들어갔고 아무도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1시간여 동안 전씨와 황씨 외에 바로 옆 건물 반지하에 거주하는 남성까지, 세 명의 목숨을 구한 송진혁·정재형 경장은 자신들이 직접 구한 사람을 대면한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주민들의 "고맙습니다" 인사에 몸둘바를 모르던 두 경장은 "주민들이 다 합심해서 도와주셔서 가능했다. 주민분들 몸이 안 다치쳐서 다행이라는 생각 뿐"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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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경기도 군포시 금정역 인근 반지하 주택에 수해 피해 주민의 지인이 찾아와 양수기를 이용해 지하에 찬 빗물을 빼내는 일을 도와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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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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