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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하루종일 바빴다는 당신···'진짜 노동'은 몇 시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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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노동(데니스 뇌르마르크 외 1인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생산적 결과 없는 '시간낭비 노동'

신기술 발전으로 오히려 더 늘어

생산직보다는 사무직에서 일반화

회의는 짧게·눈치 안보고 퇴근 등

무의미한 노동시간 최대한 줄이면

'진짜노동' 재발견···주15시간도 가능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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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00년 뒤에는 평균 노동시간이 주 15시간으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1960년대 미국 상원은 더 적극적으로 2000년까지 주 14시간 노동이 실현 가능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당시 미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는 인구 2% 정도면 미국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밖에 미국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 카를 마르크스, 영국 철학자 버틀런드 러셀 등 수많은 지식인들이 생산력 발전에 따른 노동 시장의 획기적인 단축을 예언했다. 물론 서구 사회의 노동시간은 1870년 평균 70시간에서 2000년 40시간 가량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주 15시간 근무는 공상과학(SF) 소설에나 나올법한 먼 미래의 일로만 여겨지는 실정이다. 1980년대 들어 미국 근로자들의 노동 시간은 오히려 늘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최근 국내 번역 출간된 ‘가짜노동,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는 그 이유를 ‘가짜 노동’(pseudowork)에서 찾는다. 저자는 덴마크 인류학자 데니스 뇌르마르크와 철학자 아네르스 포그 옌센이다. 이 책은 2018년 현지 출간 당시 덴마크 총리마저 영감을 받았다고 말할 정도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여기서 가짜 노동은 하는 일 없이 바쁘고 무의미하게 시간만 낭비하는 일이다. 바쁜 척하는 헛짓거리 노동, 노동과 유사하지만 노동이 아닌 활동, 무의미한 업무 등이다. 즉 단지 급여를 받기 위해 아무 결과도 내지 못하는 작업이나 누가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 업무 등을 바쁘게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모두가 시간 낭비라는 것을 아는 큰 프로젝트를 저연차의 직원에게 그저 할 일을 주는 차원에서 맡기거나 이미 알고 있는 주제를 회의에서 듣는 것, ‘나는 일하는 사람’이라는 기분을 지키기 위해 서류 정리를 다시 하는 것 등이 가짜 노동이다.

이런 가짜 노동은 역설적이게도 인류의 발전과 발명을 위한 현대사회 합리성, 신기술 발전으로 저변이 확대됐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유행에 따라 바뀌는 시스템, 쓸데없는 잡무, 시간만 잡아먹는 회의, 산더미 같은 이메일의 수렁에 빠져 바쁘게 일하지만 아무런 생산적인 결과도 가져오지 못하는 가짜 노동의 굴레에 갇히게 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루한 노동을 하다 보니 직장인들은 만족도는 낮아지고 실제 시간보다 자신이 오래 일한다는 착각에 빠져 살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에 142개국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일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전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63%, 회사에 나가기 싫어하는 적대적 부류는 24%에 달했다. ‘열심히 일한다’는 직장인은 13%에 불과했다. 또 덴마크 인터넷 가격 비교 사이트 방문의 90%는 직장인 근무시간인 오전 8시에서 오후 4시 사이에 이뤄진다. 미국의 또 다른 조사에서는 직장인들은 일주일에 평균 8.3시간을 업무와 관련 없는 장소에서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저자들은 생산직보다 사무직에 ‘텅빈 노동’이 일반화돼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무직에게는 노동 시간이 임금과 직결되다 보니 비생산적인 방식으로 근무시간만 늘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봉급이 많은 최고위직일수록 보고서, 발표, 제안, 전략 세우기 등 실제 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노동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파킨슨의 법칙을 발견한 시릴 노스코프 파킨슨의 말대로 “일은 그것의 완수에 허용된 시간을 채우도록 늘어난다.”

이런 현상은 대학 졸업장을 가진 지식노동자가 과잉 공급되면서 가속화하고 있다. 인사, 홍보, 마케팅, 영업, 경영 전략, 준법감시, 감사, 브랜딩, 회계, 품질 관리, 다양성, 프로젝트 관리 등 기업만 놓고 봐도 세분화된 틈새 일자리가 숱하게 생겨나고 있지만 이들 분야 종사자들마저 자신의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시니컬한 주장이다.

가령 2009년 넷플리스는 단번에 각 현장의 인사 담당자 대부분을 없애버리는 충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대신 직원들이 직접 근무 시간과 휴가 기간을 정하도록 했다. 경영진은 처음부터 회사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인력을 채용한다면 직원의 97%는 제대로 일할 것이라고 봤다. “대부분의 회사는 나머지 3%가 일으킬지도 모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사 방침을 규정하고 시행하면서 끝없는 시간과 비용을 소모한다”. 졸지에 불필요한 인력으로 몰린 인사 담당 종사자들이야 억울했겠지만 효과는 있었다.

그렇다면 무의미한 노동 시간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저자는 일에 대한 보상 기준을 과정이나 시간이 아니라 결과로 바꿔야 한다면서 △눈치보지 않고 퇴근하기 △의미 있는 일 하기 △무조건 짧은 회의 △가짜 노동 구분하기 △다른 회사 따라 하지 않기 △도덕적 책임감과 신뢰 등을 구체적인 대안으로 제시한다. 근본적으로는 진짜 노동에 대한 존경을 재발견하고 일과 삶의 의미를 되찾자고 말한다. 인간이 자신을 자연의 구속에서 해방시킨 것은 ‘경영 자문’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고 활동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환경과 의미 있는 유기적 상호작용에 참여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1만6,800원

최형욱 기자 choih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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