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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20년 전부터 "반지하주택 금지"…그런데도 4만가구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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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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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폭우로 고립돼 일가족 3명이 사망한 다세대 주택 현장을 찾아 점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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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9일 집중호우에 따른 침수 피해로 시내 반지하주택 거주자들의 인명, 재산 피해가 속출하자 서울시가 "앞으로 반지하주택 건축을 전면 금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저렴한 임대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반지하주택에 거주해야 하는 취약계층 이주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현실적 한계 때문이다. 정책이 효과를 내려면 꼼꼼한 이주 대책부터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1년, 2010년 수해 때도 반지하주택 축소 대책…건축허가 규제 이후에도 4만 가구 신규 공급

11일 서울시에 따르면 이번 주 안에 각 자치구에 건물 지하·반지하의 주거용 건축을 불허하는 지침을 전달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정부와 협의해 반지하주택 건축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건축법 개정을 추진하고, 10~20년에 걸쳐 반지하주택을 전면 폐쇄하는 '일몰제'를 추진할 방침이다.

시가 반지하주택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고 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1년과 2010년 여름철에도 일일 200~250mm 폭우가 쏟아져 수 만 가구의 다세대, 다가구 반지하주택 거주자가 피해를 입었을 때도 "지하층에 사람이 살 수 없게 하겠다"며 반지하주택 신규 건축허가를 제한하는 방안을 정부에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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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2010년 침수 피해 이후 발표한 반지하주택 건축규제 방안. 당시에도 신규 건축규제를 제한하는 방안이 추진됐고 건축법도 개정됐으나 2012년 이후에도 시내에 약 4만호의 반지하주택이 공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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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현재 건축법 11조에 '상습 침수지역 또는 침수 우려지역 건축물 지하에 주거용 공간이나 거실을 설치하는 것을 건축위원회 심의로 불허할 수 있다'는 근거 규정이 마련됐다. 하지만 시에 따르면 이 법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시내에 약 4만 가구의 반지하주택이 신규 공급됐다. 시가 자치구 소관인 소형 건축물 인허가를 모두 관리할 수 없는 현실을 반증한다. 시가 이번 기회에 건축법을 바꿔 반지하주택 건축을 '불법'으로 규정하려는 이유다.

서울에 반지하주택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온라인 부동산 매물을 살펴보면 신축 빌라 반지하주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 보증금 500만원, 월세 40만원 내외로 같은 크기 지상층 매물의 반값 수준이다. 저소득층에겐 사실상 이를 대체할 주택이 없는 게 현실이다. 집주인도 창고나 주차장보다 월세를 받는 반지하주택을 선호한다.

시는 이런 점을 고려해 현재 반지하주택에 거주 중인 세입자가 나간 뒤 해당 공간을 근린생활시설, 창고, 주차장 등 비주거용으로 전환하는 건물 소유주에게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하거나 재개발, 모아주택 등 정비사업 추진 시 용적률 혜택을 부여할 계획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예산을 들여 반지하주택 공실을 매입해서 주민 공동창고나 커뮤니티시설로 리모델링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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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대방역 사거리 인근 빌라촌에서 주민이 침수된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다. 202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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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반지하주택 20만호...공공주택 부족, 예산 한계로 이주 수요 충족 어려워

하지만 기존 반지하주택 대체 주거지가 마땅치 않다. 즉시 이주할 수 있는 공공주택이 부족한 까닭이다. 정부는 2020년 7월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사업' 관련 지침을 바꿔 고시원, 쪽방촌 외에도 침수가 우려되는 지역의 반지하주택 거주자도 이주 희망시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허용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56가구가 이주 및 보증금·이사비 지원을 받았지만 근본적인 이주 대책으로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SH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공사가 보유한 아파트 등 공공주택은 10만1998호다. 아파트는 대부분 입주했고 다세대, 빌라 매입 임대주택 공실 약 400호와 재난 긴급지원용 공가 397호 등 즉시 입주가 가능한 주택은 약 800호에 불과하다. SH공사는 부채 감축을 위해 연평균 2400억원 이상 투입한 매입 임대주택 예산을 점차 삭감하는 추세여서 단기간에 많은 반지하주택을 사들일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하다. 약 20만 가구에 달하는 반지하주택 거주자들의 이주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전문가들도 현실적인 이주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존 반지하주택 거주자 이주 대책을 꼼꼼히 마련하지 않고 일몰제를 강행하면 멸실 등에 따른 공급부족으로 임대료 상승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반지하주택 자가 보유자는 공공주택 이주가 어렵고, 향후 주거용 용도를 불허하면 매매가 어렵기 때문에 결국 공공이 매입해야 하는데 예산 투입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이주 해법은 공공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시가 이주 대책 대안으로 재개발, 모아주택 등 민간 정비사업을 거론했지만 이런 대책은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기대할 수 없고 개발 과정에서 기존 세입자는 주거 상향 이동이 어렵다"며 "공공주택 개발을 확대하고 중장기적으로 적정 임대주택을 지속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조치가 대형 수해가 발생하면 공식처럼 나오는 '재탕 정책'이란 비판도 적지 않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은 정책 추진 의지를 밝혔다. 오 시장은 전일 진행한 '집중호우 피해 복구 시·자치구 구청장회의'에서 "대표적 침수 취약지이자 열악한 주거 환경인 반지하주택을 없애 나가겠다"며 "앞으로 주거용 건축허가를 전면 불허하고 관련 법령 개정을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했다.

유엄식 기자 usy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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