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28억짜리 땅 20년간 공짜로 쓰게 해줘"… 광주시, 출연기관 땅뺏기 논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일보

지난달 20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월출동 광주테크노파크 2단지에서 열린 마이크로의료로봇개발지원센터 착공식에서 참석자들이 공사 시작을 알리는 발파 버튼을 누르고 있다. 광주시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광주광역시가 정부 공모 사업 수행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산하 출연기관인 광주테크노파크에 28억 원짜리 땅을 20년간 무상 제공해 달라고 요구한 뒤 이를 관철시킨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광주테크노파크가 해당 부지를 무상 임대해 줄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배임 시비까지 불거지자 내부에선 "땅을 빼앗겼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11일 광주시 등에 따르면, 광주시는 지난해 4월 광주테크노파크 및 한국마이크로의료로봇연구원과 마이크로의료로봇 개발지원센터(지상 2층 지하 1층) 신축에 따른 부지 사용 협약을 맺었다. 광주테크노파크가 소유한 북구 월출동 2단지 내 유휴 부지 7,494㎡를 한국마이크로의료로봇연구원에 20년간 무상 제공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협약은 2020년 5월 총사업비 309억 원 규모의 보건복지부 마이크로의료로봇개발지원센터 구축 사업자로 선정된 광주시가 광주테크노파크에 부지 무상 사용을 요구하면서 체결됐다. 공모 당시 한국마이크로의료로봇연구원을 운영 기관으로 내세웠던 광주시는 보건복지부가 센터 설립 부지를 자치단체가 부담하도록 하자, 광주테크노파크와 협약을 통해 부지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광주시가 공모 사업 신청 때 반영한 토지 감정평가 금액을 적용하면 이 땅값은 28억3,300여만 원에 달한다.

그러나 협약서를 뜯어보면 부지를 무상 제공 받는 주체가 한국마이크로의료로봇연구원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협약서(제3조)엔 광주테크노파크가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할 기관명으로 한국마이크로의료로봇연구원이 적혀 있고, 괄호 안에 '광주광역시'가 추가 기재돼 있다. 광주시는 "광주테크노파크가 한국마이크로의료로봇연구원과 광주시에 해당 부지를 제공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지만, 협약서 내용을 두고는 여전히 뒷말이 나온다. 통상 협약서엔 협약 당사자 간 권리와 의무 사항이 담기는데, 이 협약서엔 광주시가 부담할 의무 사항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 센터 신축에 필요한 인·허가 등 행정 절차 진행, 부지 사용에 따른 세금 및 공동 관리 유지비 부담이 모두 한국마이크로의료로봇연구원 몫으로 돼있다.

문제는 광주테크노파크가 해당 부지를 20년간 무상 제공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광주테크노파크는 '원장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는 사업 참여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법인 자산을 무상으로 임대할 수 있다'는 자산관리규칙을 근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광주테크노파크는 이번 공모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고, 정관에도 법인 재산을 정당한 사유 없이 무상 대여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어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광주시가 광주테크노파크를 압박해 부지 무상 사용 승인을 받아낸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광주테크노파크는 광주시가 2020년 4월 부지 무상 사용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자 "대체 부지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도 광주시는 지난해 1월 또 공문을 통해 "센터 건축 실시설계 발주 단계인 현재까지도 사업 부지를 확정하지 않았다.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적극 협조 바란다"고 통보했다. 결국 광주테크노파크는 같은 해 4월 광주시에 부지 무상 사용 승인을 통보했다.

광주테크노파크 직원들 사이에선 "우리 땅으로 남 좋은 일만 하고 있다"는 불만 섞인 반응이 나온다. 한 직원은 "당초 2단지 부지는 자체 수익 사업 등 미래 먹거리로 활용할 계획이었는데, 다른 기관에 무상 임대하는 사례들이 잇따르자 '빛 좋은 개살구다', '땅을 뺏겼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전했다.

광주테크노파크 관계자는 "광주시가 추진하는 의료헬스케어산업 육성에 협조하는 차원에서 부지를 내준 것"이라며 "광주시에 해당 부지를 20년간 무상 사용하도록 해준 게 법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선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광주=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