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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사설] 국민 생명 걸린 일은 지나칠 정도로 과하게, 그것이 행정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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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서울과 경기북부 등 수도권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8일 밤 서울 강남역 일대 도로가 침수되어 시민들이 대피한후 차들이 도로에 그대로 놓여있다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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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 당시 서울시가 대용량 빗물터널 계획을 백지화한 것이 수도권에 집중된 이번 호우의 피해를 키웠다고 한다. 지름 10m 규모의 대심도(大深度) 터널이 계획대로 들어섰다면 피해 규모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계획은 2011년 집중호우로 인한 우면산 산사태 직후 오세훈 당시 시장이 긴급 수방 대책의 하나로 발표했다. 하지만 후임 시장이 “무리한 토목공사”라는 이유로 양천구 신월동을 제외한 6곳의 건설 계획을 취소했다. 이번 호우로 큰 피해를 본 강남역 일대도 취소된 그 중 한 곳이다.

당초 계획한 대심도 터널의 폭우 처리 능력은 시간당 최대 강수량 100㎜ 수준이었다고 한다. 현재 강남 지하에 깔린 배수로는 시간당 최대 85㎜까지 호우를 처리할 수 있다. 작은 차이인 듯하지만 집중호우 때 나타나는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이번 호우 때 강남구의 시간당 최대 강수량은 116㎜였다. 대심도 터널이 계획대로 건설됐다면 침수 피해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더라도 상당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도 상습 수몰 지역이었으나 2020년 예정대로 건설된 대심도 터널 덕분에 이번엔 심각한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대심도 터널의 효력이 확인된 것이다. 잘못된 정책 판단이 피해를 키웠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박 시장 재임 당시 서울시가 강남 지역 수해 방지를 위해 아무 일도 안 한 것은 아니다. 2015년부터 1조4000억원을 투입해 하수관 개량, 빗물 펌프장 증설, 빗물 저류조 설치, 하천 정비 사업 등을 벌였다. 하지만 빗물을 빨리 강으로 빠져나가게 만드는 데 집중해 하천 수위 자체가 올라가는 이번 같은 집중 폭우 때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당시에도 상당수 전문가가 같은 문제를 지적했으나 환경단체 등의 주장을 따랐다고 한다.

행정력엔 한계가 있다. 100년, 200년에 한 번 일어날 일을 대비하기 위해 무조건 막대한 세금을 사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이 달린 일엔 항상 과하다 싶을 정도로 대비해야 한다. 그것이 행정의 기본이다. 이번 수해는 불가항력의 측면이 있지만 행정의 기본을 지켰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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