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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회사에 얽매이기 싫다”… 긱워커 220만명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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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 미대를 졸업한 최모(25)씨는 본업은 일러스트 작가다. 소셜미디어 등으로 요청이 들어오면 삽화를 그려주고 돈을 받는다. 따로 얽매인 회사는 없다. 일러스트 일이 없으면 오토바이를 몰고 음식이나 물건을 배달하며 생활비를 보탠다. 이렇게 버는 돈은 한 달에 최대 300만원 정도. 최씨는 “(직장) 스트레스 안 받고, 사람(상사나 동료)에 안 치여도 돼 마음이 편하다”면서 “원하는 만큼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긱 워커’ 자청하는 MZ세대들

이렇게 자기 사정에 따라 그때그때 일했다 쉬는 노동자를 ‘긱 워커(gig worker)’로 부른다. 초단기 임시 노동자들을 뜻한다. 일과 회사에 얽매이는 생활이 싫어 정규직에 취업하려 애쓰기보다 프리랜서 형태로 단기 아르바이트나 임시직을 선택하는 경우다. 과거부터 있었던 노동 형태지만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를 중심으로 ‘긱 워커’ 현상이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한 김모(25)씨는 넷플릭스 등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콘텐츠 번역 일을 하면서 일주일에 3일은 하루 6시간씩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 역시 “정규직이 안정적이긴 하지만 (조직) 스트레스 받긴 싫고, 하고 싶은 일을 이것저것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취업 포털 업체 사람인이 성인 남녀 2848명을 대상으로 ‘긱 워커로 일할 의향이 있는지’ 조사한 결과 58.6%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유는 ‘원하는 기간, 시간에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서’(복수 응답·79.2%)가 가장 많았고, 다음이 ‘직장 내 인간관계, 조직 문화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40.7%)이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평생 직장 개념이 희미해지면서 MZ세대들은 정규직에 목 매달기보다 긱 워커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플랫폼 종사자 절반 이상 20~30대

‘긱 워커’ 시대는 각종 플랫폼 기업이 활발해지면서 증가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전문 지식이나 기술이 있다면 기술 기반 플랫폼을 활용해 일거리를 찾는 작업이 전보다 쉬워졌기 때문이다. 단순 노동(배달·청소·돌봄 등)에서 전문 노동(번역, 논문 조사, 전자제품 수리 등)까지 범위도 다양하다. 프리랜서 중개 플랫폼 크몽에 등록한 프리랜서는 2019년 10만명 안팎에서 최근 30만명을 돌파했다. 증가세는 20~30대 MZ세대가 주도했다. 크몽 측은 “프리랜서 회원 중 20~30대가 70% 이상”이라면서 “최근 3년간 새로 등록한 24~33세 프리랜서가 7만3000명”이라고 전했다. 비슷한 플랫폼 업체 숨고에 등록한 프리랜서도 2019년 34만명에서 올해 104만명으로 3배가량 늘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플랫폼 노동 실태 조사를 했는데, ‘최근 3개월간 플랫폼을 통해 일거리를 구해 일한 사람’은 219만7000명에 달했다. 이 중 MZ세대(20~30대) 비율이 55.2%에 달했다.

◇'긱 워커’ 보호 위해 자문 기구 출범

긱 워커가 증가하면서 이들을 어떻게 보호할지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노동으로 소득을 얻지만 퇴직금, 각종 수당 등 근로기준법상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플랫폼 종사자 고용보험 가입 비율은 29.1%, 산재보험 가입 비율은 30.1%에 불과했다. ‘제대로 보수를 받지 못했다’는 사람도 22.0%에 달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최근 긱 워커에 대한 보호 조치를 만드는 과정에 착수했다. 고용부는 노호창 호서대 법경찰행정학과(노동법 전공) 교수를 중심으로 남궁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등 전문가 5명으로 이뤄진 자문 기구 ‘노무제공자 권리보장 제도화 포럼’을 출범시키고 지난달 29일 첫 회의를 열었다. 이들은 오는 12월까지 긱 워커 등 플랫폼 종사자들 애로 사항을 청취한 뒤 이를 개선하는 방안을 논의해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긱워커(gig worker)

고용주 필요에 따라 단기로 계약을 맺고 일하는 노동자. 1920년대 미국 재즈클럽에서 단기로 섭외한 연주자를 ‘긱(gig)’이라 불렀던 것에서 유래했다. 기술 발전에 따라 이들이 각종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일거리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되면서 점점 늘고 있다.

[이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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