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외국인 총수 지정 물 건너가나? 정부는 2년째 ‘검토중’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윤수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10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동일인의 친족 범위 조정 등 대기업집단 제도 합리화를 위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와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동일인(총수) 지정 개편 방향을 담은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10일 발표했지만 ‘외국인 총수 지정’ 문제는 또 빠졌다. 상대국과 통상 문제를 우려한 부처 내 이견을 넘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이는 외국 국적인 총수 2·3세로의 경영권 승계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현실을 외면한 결정이다. 규제 사각지대를 막기 위해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공정위는 외부용역까지 주고서 외국인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총수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공정거래법에서는 총수 지정 여부에 따라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적용도 정해진다. 사익편취 규제는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통해 부당한 방법으로 총수일가가 부를 늘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총수가 자연인일 경우에만 적용된다. 대표적으로 미국 국적인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국내 쿠팡 계열사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명백한데도 외국인을 총수로 지정하는 명확한 요건이 없어 제외됐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가 ‘통상 마찰을 우려해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공정위에 전달하면서 개정 작업은 사실상 무산됐다. 외국인의 총수 지정이 사실상 불가능함에 따라 내년에도 공정위는 쿠팡 총수를 ‘자연인’ 김범석이 아닌 ‘법인’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에서는 구체적으로 통상 마찰 가능성이 제기되지 않았는데도 제도 개선을 미룬 것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 김 의장의 총수 지정을 두고 공정위와 산업부는 지난해부터 협의를 진행했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통상 전문가들은 국내 투자자도 같은 규제를 받기 때문에 통상 마찰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국책 연구기관 한 관계자는 “외국 기업을 차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정당한 규제의 경우에는 외국인에게도 충분히 규제를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외국계 기업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낮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의 자회사가 최대주주인 에쓰오일의 경우 법인을 총수로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아람코가 국영기업인 이유가 더 크다. 국내도 공정위가 2016년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에서 한국전력과 같은 공기업은 제외했다. 한국GM의 경우는 전문경영인 체제여서 김 의장이 기업 의사결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쿠팡의 사례와는 다르다.

사실 산업부는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가능성에 대해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산업부 당국자는 “FTA 위반 가능성이 있다기보다 공정위에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통상 주무 부처인 산업부는 미국 측으로부터 미국인 김 의장의 총수 지정과 관련해 어떤 의견도 전달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현재 대기업 총수 2·3세 중에 외국 국적자가 상당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인 총수’ 지정 문제는 계속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으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씨는 일본 국적자다. 신씨는 최근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동경지사 영업·신사업 담당 미등기 비상근 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는 경영 승계 작업이 시작됐다는 해석을 불렀다.

공정위도 외국 국적을 보유한 총수 2·3세가 상당수 있어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공정위 당국자는 “현재 알려진 사례는 롯데만 있지만 상당수 그룹의 총수 2·3세가 외국 국적자인 것으로 파악했다”며 “이번 제도 개선은 국내에 거점을 두고 회사에서 총수일가 사익편취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추진했기 때문에 관계부처와 협의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 [뉴스레터]좋은 식습관을 만드는 맛있는 정보
▶ ‘눈에 띄는 경제’와 함께 경제 상식을 레벨 업 해보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