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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진짜 학제 개편 지금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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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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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만 5세 입학' 추진의 역풍으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물러났고 학제 개편안은 백지화되는 분위기다. 의견수렴 없이 졸속 추진한 정책의 당연한 귀결이지만, 학제 개편 시도와 논의를 '절대악'처럼 여기는 건 온당치 않다. 오히려 이참에 본격적인 학제 개편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6년(초등학교)-3년(중학교)-3년(고등학교)-4년(대학)' 학제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만들어져 71년간 한 차례도 바뀌지 않았다. 1950년대는 정부 주도의 문맹퇴치운동이 벌어지던 시기이고, 지금은 당시엔 존재하지도 않았던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가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다.

세상이 달라진 만큼 학생들도 바뀌었다. 한때 학교에 들어가 한글과 구구단을 배우던 시절이 있었지만, 조기교육 열풍에다 일찍부터 인터넷 등 각종 매체를 접한 요즘 초등학생의 지적 능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사춘기를 겪는 연령도 중학생에서 초등 고학년으로 빨라졌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를 5년으로 줄이는 대신 중학교를 4년으로 늘리는 '5-4-3-4' 학제, 고등학교를 4년으로 하는 '5-3-4-4' 학제가 대안으로 꾸준히 거론됐다. 유치원을 갓 졸업한 1학년과 체격·정서가 '중고생급'인 6학년을 같은 시설에서 함께 공부하도록 하는 것은 여러모로 부적절하다는 이유에서다. 사회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대학 입학까지 필요한 초중고 과정을 12년에서 10년으로 줄이는 대신 대학을 5년으로 늘리는 '5(초등)-5(중고등)-5(대학)' 학제를 제안했다. 인간 생애 중 가장 창의적인 시기(17, 18세)를 입시에 얽매여 '반복학습'하는 데 쓰지 말고, 일찍 대학에 들어가 적성을 살리도록 하자는 취지다.

이처럼 학제 개편 아이디어는 천차만별이지만 문제 의식만큼은 동일하다. 획일화된 현행 학제가 급변한 학생들의 성장발달 수준을 담지 못한다는 것이다.

3월에 새 학년을 시작하는 것도 박정희 군사정부 시절인 1962년에 정해진 후 60년째 불변이다. 열악한 난방 시설 때문에 겨울방학이 길어야 했던 현실적인 이유가 반영된 것인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2월 수업이 부실해졌고, 9월 신학기제인 외국과 달라 국제 통용성이 떨어지는 게 문제로 지적됐다.

이 때문에 역대 정부는 학제를 바꾸고자 했다. 박정희 정부부터 전두환·김영삼·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까지, 군사정권,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손대려 했다. 교육적인 요구보다는 정치적 목적이 강했다. 대선 후보들도 단골 공약 메뉴로 '학제 개편'을 들고 나왔다.

이런 시도들이 모두 실패한 것은 교사 증원, 시설 확보에 천문학적 예산이 들어가고, 정책으로 변화를 겪게 되는 학생·학부모의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교육 정책은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조정해야 하는 세밀한 작업인데, 윤석열 정부 역시 임기 중 성과를 보여주려는 정치적 욕망 때문에 서두르다 일을 그르쳤다.

마침 중장기 교육정책을 논의할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학제 개편 논의를 접을 게 아니라, 국교위에서 어떻게 교육을 바꿀 건지, 무엇을 준비하고, 누구를 설득할지, 길고 고단한 작업을 시작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뒤늦게라도 윤석열 정부가 교육 개혁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는 길이다.

한준규 정책사회부장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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