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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기자의 시각] 포장도 중요한 걸 몰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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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정부청사에서 근무하는 한 경제 부처 과장은 “정권이 바뀌고 일하기 편해졌다”고 했다. 일이 적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일이 몰리면 주말도 출근하지만, 일에만 집중하니 일하기 편하다고 했다.

지난 정부에서는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각 부처 대변인실에 주문하는 게 많았다고 한다.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유튜브 영상, 카드 뉴스 제작도 있었고, 아직 얼개뿐인 정부 정책에 대한 ‘예고편’까지 만들라는 주문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이런 주문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포장보다 ‘알맹이’를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했다.

조선일보

포장은 내용물을 더 돋보이게 한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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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는 직전 장관인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시절에 매일 아침 8시 40분 장·차관, 실·국장이 모여 언론 대응 회의를 했다. 이른바 ‘840 회의’다. 기재부 관련 기사를 일일이 스크랩한 두툼한 자료와 이를 다시 A4 용지 한 장으로 정리한 요약본이 매일 회의 테이블에 놓였다. 대변인실 직원들은 오전 6시에 출근해 자료를 만들었다. 손이 많이 갔다고 한다. 이 회의가 끝나고 나면 두꺼운 보도 해명 자료, 보도 참고 자료 만드는 일도 허다했다고 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오면서 ‘840 회의’는 없어졌다. 회의는 필요할 때 수시로, 유연하게 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요즘 보도 설명 자료는 1쪽을 넘지 않는다.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검토 중인 사안이지만 구체적 내용은 결정된 바 없다” 정도로 처리한다. 기사에 대한 해명을 위해 시간 쓰는 일이 확 줄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다던 실무진이 요즘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일은 죽어라 하는데, 우리가 뭘 하는지 국민이 제대로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경제 부처의 또 다른 과장은 “이 정부는 정책에 모자 씌우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딱딱한 문장으로 쓴 보고서를 풀어서 알기 쉽게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새 정부 들어 굵직한 대책을 쏟아냈다. 민생 경제 안정 대책,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재정 전략 회의, 세제 개편안, 공공 기관 혁신 가이드라인…. 대책마다 내용도 많고 고민한 흔적도 보인다. 하지만 국민은 “정부가 도대체 뭘 했느냐”고 묻는다. 대통령 지지율은 20%대로 떨어졌다. 정부 세종청사 복도에는 “요즘처럼 일은 일대로 하는데 칭찬은 못 받긴 처음”이라는 말이 나온다.

흔히 정치는 ‘쇼(show)’라고 한다. 비하하는 뜻도 있지만, 그만큼 세심한 연출과 포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전 정부가 대국민 홍보에 ‘과몰입’했다면, 이 정부는 무관심해 보인다. 전 정부의 ‘과대 포장’도 문제지만, 포장 없이 과자만 덩그러니 놔둔 것도 문제다. 먹고 나서도 무슨 과자를 먹었는지, 국민은 알 길이 없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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