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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송혁기의 책상물림]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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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창부타령, 난봉가, 유람가 등에서 차차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노래에서 인상적인 도입부나 강력한 마무리에 즐겨 쓰이는 말이 있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눈앞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모처럼 만난 친구가 참으로 소중해서, 마침 익은 술맛이 기가 막혀서 던지는 탄성이며, 때로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역설적으로 내뱉는 탄식이다.

놀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는 탄성과 탄식의 바닥에는, 유한한 인생에게 주어진 시간이 영원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붉은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며 고목에는 새가 날아들지 않는다. 길어봐야 백년도 안 되는 인생은 달리는 말처럼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막상 즐길 수 있는 날은 의외로 많지 않다. 참 상투적인 레퍼토리지만 누구도 부인하거나 벗어날 길이 없다.

“낮은 짧고 고된 밤 길기만 하니, 불 밝히고 놀지 않을 수 있는가. 즐기는 것도 때가 있는 법, 어찌 내년을 기약하리오.” 고문진보에 실려서 즐겨 읽힌 고시의 한 구절이다. 불 밝히고 논다는 뜻의 ‘병촉유(秉燭遊)’라는 시구가 밤으로 이어지는 연회 때마다 언급되곤 했다. 전기도 없던 당시, 밤에 놀기 위해서 불을 밝히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갔을 텐데, 시인은 아니 노지는 못할 하룻밤을 위해 이렇게 말한다. “어리석은 자는 돈 아끼려다가 사람들의 비웃음만 받지. 백학 신선 왕자교처럼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니면서.”

고문진보에는 이 시에 “젊어서부터 늙을 때까지 쉴 줄을 모르는 이들을 깨우치는 시”라는 해제를 달아 두었다. “살아봐야 백 년도 못 채울 것을, 늘 천 년의 근심 안고 사는구나”라는 시의 첫 구절처럼, 인생의 무상함을 알면서도 좀처럼 맘 편히 쉬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유몽인은 이 고시를 따라 쓴 작품에서, 천명을 피할 수 있을 것처럼 아등바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침에 잠시 났다가 사라지는 버섯처럼 짧은 인생, 천금의 재물을 쌓아둔다 해도 결국 막걸리 한 병의 값어치도 없게 된다. 오지 않은 것들에 대한 염려와 준비 때문에 오늘의 소중함을 버려두지 말 일이다. 진정한 쉼, 오늘을 즐기는 놂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본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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