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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터널 백지화, 강남 물난리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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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아수라장 된 강남도로 - 9일 오전 서울 강남역 근처 도로에 전날 밤 시민들이 세워놓고 간 승용차 등 차량 수십 대가 뒤엉켜 있다. 지난 8일 밤 시간당 100㎜ 이상 내린 비 때문에 도로 곳곳에서 물이 차오르자 운전자들이 차량을 벗어나 대피한 것이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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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부터 수도권 등 중부 지역에 쏟아진 폭우(暴雨)는 9일 오후 7시 기준으로 사망 9명, 실종 6명, 부상 9명의 피해를 냈다. 전국에서 주택이나 상가 741동이 물에 잠겼고, 산사태가 11건 발생했다.

특히 8일 밤부터 이틀간 서울을 강타한 폭우는 기상청 관측 사상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피해는 자치구별로 달랐다. 한 달 내릴 비(강수량 300㎜)가 하루 만에 쏟아진 강남구(326.5㎜)와 서초구(354.5㎜)는 이번에도 물바다가 됐다. 반면, 양천구는 같은 시간에 200㎜ 가까이 비가 내렸지만 피해는 강남·서초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11년 전인 2011년 7월 이틀 동안 400여㎜의 폭우가 쏟아졌을 때 우면산 산사태 등 강남·서초구에선 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양천구는 신월동을 중심으로 주택 1182가구가 침수되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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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와 비슷한 폭우가 내린 지금, 양천구와 강남·서초구의 피해 규모를 가른 것은 ‘빗물 터널’이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2011년 폭우 피해 이후 서울시는 양천구와 강남역 등 7곳의 지하에 ‘대심도 빗물 터널’을 만들기로 했지만 나중에 양천구만 추진하는 걸로 결론 났다”며 “그것이 두 곳의 ‘운명’을 갈랐다”고 했다.

지난 2011년 7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광화문과 양천구 신월동, 강남역 등 상습 침수 지역 7곳에 17조원을 들여 ‘대심도 빗물 터널’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하 40~50m 깊이에 지름 10m 정도의 대형 배수관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이 대형 배수관은 빗물을 저장했다가 내보낼 수 있는 저류 기능도 겸한다. 한 토목 전문가는 “기존 배수로가 일반 도로라면 ‘대심도 빗물 터널’은 고속도로 같다”고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오 시장이 물러나고 2011년 10월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며 대폭 수정됐다. 박 전 시장은 7개 상습 침수 지역 가운데 양천구 신월동에만 ‘대심도 터널’을 만들겠다고 했다. 당시 정치권 등에서는 “오 시장이 벌이려는 과도한 토목공사를 멈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박 전 시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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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배수시설 관련 일지


이런 과정을 거쳐 2020년 5월 양천구에는 시간당 95~100㎜의 폭우를 처리할 수 있는 신월빗물저류배수시설이 완공됐다. 지하 40m에 지름 10m, 길이 3.6㎞로 설치된 이 시설의 배수 터널은 32만t의 물을 저장하는 저류(貯留) 기능을 갖는다. 이후 양천구에는 심각한 침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가령, 2020년 8월 서울에 폭우가 쏟아졌을 때 강남역과 달리 양천구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강남역 침수가 재발하는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우선 강남역 일대는 폭우에 상당히 취약한 지형이라고 했다. 인근에 있는 역삼역과 비교하면 17.8m, 서초역과 비교하면 12.3m가 낮아 빗물이 고일 수밖에 없는 ‘항아리 지형’이라는 것이다.

저류 용량이 떨어지는 것도 취약점으로 꼽혔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강남역 지하에 깔린 배수로는 시간당 80~85㎜까지 폭우를 처리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배수 시설의 저류 용량이 1.5만t밖에 안 된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양천구 배수 시설의 저류 용량 32만t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강남 일대 배수관과 연결된 반포천의 수위가 높으면 배수가 원활하지 않은 문제도 생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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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일대 침수 - 지난 8일 밤 폭우가 쏟아져 물에 잠긴 서울 강남역 일대의 모습. 서울시는 지난 10년간 3조7000억원을 들여 강남역 일대의 배수 시설을 개선하는 작업을 했지만 또 침수 피해를 입었다.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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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강남역 대심도 배수 터널’을 포기한 후 지난 10년간 총 3조6792억원을 강남역 일대의 배수 시설 개선에 투입했다. 서울시가 지난 2015년 발표한 1조4000억원짜리 ‘강남역 일대 및 침수 취약 지역 종합 배수 개선 대책’도 그 중 일부였다.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를 바로잡는 ‘배수 구역 경계 조정’과, 서울남부터미널 일대 빗물을 반포천 중류로 분산하는 지하 배수시설 ‘반포천 유역분리터널’ 공사 등이 핵심 내용이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시설을 개선하긴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고 했다. 이 공사는 예산과 설계 문제 등으로 계속 지연됐다.

‘반포천 유역분리터널’은 반포천 상류의 하수 처리 용량을 분산하기 위한 터널로, 예술의전당 일대 빗물을 반포천 중류로 향하도록 해 분산하는 역할을 한다. 빗물을 여러 방향으로 분산해 침수 피해를 줄이는 장치다. 그러나 이 터널은 대책 발표 이후 3년이 지난 2018년에야 착공했고 현재 큰 터널만 완공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터널 자체는 완공했으나 주변 하수관이 아직 공사 중이어서 빗물이 빠져나올 길을 다 만들지는 못했다”고 했다. 신월빗물저류배수시설의 빗물터널 지름이 10m인 데 비해, 반포천 유역분리터널은 지름 7.1m 정도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반포천 말고 바로 한강으로 빼거나 송파구의 탄천으로 이어지는 배수로를 만드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에 대비해 시간당 처리 가능한 강수량 목표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시간당 95㎜는 과거 평년 수준을 감안해 설정됐을 것”이라며 “이번처럼 이전의 국지성 호우를 넘어서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면 설계 단계부터 목표를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의 수방·치수 분야 예산은 최근 감소 추세다. 2012년 4317억원에서 2019년 6168억원까지 늘었다가 2020년부터 감소해 올해는 5000억원 밑으로 떨어졌다. 서울시는 “이번 수해에 대해서는 재난관리기금과 예비비 등을 적극 투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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