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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총에 맞고 살아나…한국 정부, 왜 인정 안 하나"(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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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목격자, 54년 만에 한국 법정서 증언

"수류탄으로 협박…생김새·언어 모두 한국인 맞아"

연합뉴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 오늘 법정 진술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 목격자인 응우옌 득쩌이 씨가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국가배상 소송 법정 진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응우옌 득쩌이 씨의 조카인 응우옌 티탄 씨(오른쪽)는 1968년 2월 12일 한국군 청룡부대 1대대 1중대 군인들이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촌에서 70여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며 2020년 4월 한국을 상대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티탄 씨와 득쩌이 씨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한국 법정에 서서 당시 피해 내용을 증언할 예정이다. 2022.8.9 hwayoung7@yna.co.kr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현장에 있던 생존자와 목격자가 처음으로 국내 법정에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증언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9일 베트남인 응우옌 티탄(62·여) 씨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8회 변론기일을 열고 원고 본인과 당시 민병대원이던 응우옌 득쩌이(82) 씨의 증인 신문을 진행했다.

한국 법정에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베트남인들의 증인 신문이 이뤄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학살 당시 함께 있던 가족을 잃고 자신은 총상을 입은 채 살아남은 피해자 응우옌 티탄 씨는 54년 전 상황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만큼 여전히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복부 총상이 드러난 사진을 보며 "한국 군인이 총을 쏴서 만들어진 상처"라고 단호한 목소리로 진술했다.

사건 당시 집 밖에서 총소리가 나 함께 있던 가족과 집 안에 마련된 방공호에 들어갔는데, 곧이어 한국 군인들이 들어와 수류탄으로 협박하며 방공호 바깥으로 나오도록 했다는 것이 그날의 기억이었다.

그는 가족들이 차례로 나가자 군인들이 마구 총을 쏜 뒤 집에 불을 질렀고, 자신은 배에 총을 맞아 쓰러졌지만 집이 불타는 것을 보고 도망쳤다고 설명했다.

응우옌 티탄 씨는 당시 공격한 군인들을 한국군으로 기억하는 이유로 '얼룩무늬 군복과 철모', '알아들을 수 없는(베트남어가 아닌) 말', '쌍꺼풀이 없는 눈' 등을 들었다.

베트남 학살에 대해 한국군은 공식적으로 부인하며 한국군으로 위장한 베트콩이 벌인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응우옌 티탄 씨는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사건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자신과 가족을 더 고통스럽게 한다고 진술했다.

당시 마을 초입에서 학살 장면을 망원경 등으로 지켜본 응우옌 득쩌이 씨도 학살의 주체는 "한국 군인들이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평소 마을에서 한국군을 자주 봐왔기 때문에 얼굴을 알고 있었고, 군인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한국말이라는 것도 알아챌 수 있었다고 했다.

응우옌 득쩌이 씨는 이어 한국군들이 현장을 떠난 뒤 마을로 진입해 직접 확인한 참혹한 현장을 묘사했다. 당시 마을의 모습을 담은 지도에서 시신 더미가 발견된 지점들을 손으로 짚으며 표시해 보이기도 했다.

응우옌 득쩌이 씨의 조카인 응우옌 티탄 씨는 1968년 2월 12일 한국군 청룡여단 1대대 1중대 군인들이 마을 민간인 70여 명을 학살했다며 2020년 4월 한국을 상대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응우옌 티탄 씨와 응우옌 득쩌이 씨는 이날 재판에 각각 원고와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지난 5일 한국에 입국했다.

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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