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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월드리포트] 펠로시 타이완 방문, 중국에 실보다 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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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타이완 방문으로 일었던 거센 격랑이 조금씩 잦아드는 분위기입니다. 우려했던 중국과 미국, 타이완의 직접적인 군사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펠로시 의장의 타이완 방문은 결과적으로 중국에 득이 됐을까요, 실이 됐을까요. 손익계산서를 따져봤습니다.

중국인들, 펠로시 방문 막지 못한 정부에 '실망과 분노'



펠로시 의장이 타이완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중국에게는 분명 득보다 실이 훨씬 컸습니다. 앞서 중국은 여러 차례 방문 저지를 공언했습니다. 국방부 대변인은 "좌시하면서 손 놓고 있지 않겠다"고 했고, 관영매체들은 전쟁도 불사할 것처럼 연일 보도했습니다. 전투기를 보내 펠로시 의장이 탄 비행기를 가로막거나 심지어 격추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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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밤 타이완 쑹산공항에 도착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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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펠로시 의장은 굴하지 않고 타이완 방문 강행을 택했으며, 결국 타이완 땅을 밟았습니다. 비록 직전 기착지인 말레이시아에서 타이완으로 가는 직항로를 선택하지 않고, 중국의 앞마당인 남중국해를 피해 우회해서 타이완으로 가긴 했지만, 어쨌든 미국 권력 서열 3위는 타이완에 갔습니다. 이렇게 펠로시 의장은 25년 만에 타이완을 찾은 미국 최고위급 인사가 됐습니다. 중국이 그토록 주장했던 '마지노선'이 허망하게 뚫린 순간이었습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했던 "불장난하면 반드시 불에 타 죽는다"는 말은 공염불에 그치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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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에서 출발한 펠로시 의장은 남중국해를 우회해 타이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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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이런 중국 정부의 '말잔치' 대응에 큰 실망과 분노를 나타냈습니다. 중국 SNS에는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막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정부가 좌시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뭘 했는지 궁금하다"는 글이 넘쳐 났습니다. "분에 차서 잠을 못 잤다", "실망해서 울었다"는 중국인들도 있었습니다. 펠로시 의장이 말레이시아를 떠나 타이완에 도착하기까지, 중국인 10만 명 이상이 실시간 항공기 경로 추적 사이트에 접속했습니다. 펠로시 의장이 '무사히' 타이완에 도착하지 못할 것으로 믿은 중국인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펠로시 의장의 비행기를 격추해서라도 타이완 방문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대표적 관변 언론인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은 "우리의 억지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반영한다"며 "하지만 우리가 졌다거나 치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장된 것으로, 우리는 절대 집단적 나약함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SNS에 적었습니다.

중국 탄도미사일 첫 타이완 상공 가로질러…중국인 '환호'



펠로시 의장의 타이완 도착 직후 중국 정부가 보인 태도도 중국인들에게는 실망스럽게 비쳤을 수 있습니다. 지난 2일 밤 펠로시 의장이 타이완에 도착하자마자 중국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장문의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마치 펠로시 의장이 '무사히' 도착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면서 4일부터 7일까지 타이완 주변에서 군사훈련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당장 이튿날인 3일부터도 아닌 이틀 뒤인 4일부터라니….' 역시 펠로시 의장이 '무사히' 돌아간 뒤 훈련을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렇게 펠로시 의장의 타이완 방문은 펠로시 의장과 타이완의 완승으로 끝나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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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4일 타이완을 향해 11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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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은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4일 낮 12시. 중국이 예고했던 시간이 되자 타이완 주변에선 로켓포가 잇따라 발사됐습니다. 이어 11발의 탄도미사일이 중국 본토에서 쏘아 올려졌습니다. 이 탄도미사일들의 탄착점은 다름 아닌 타이완 동부 해역이었습니다. 탄도미사일이 타이완 상공을 가로질러 타이완 동쪽에 떨어진 것입니다. 중국의 미사일이 타이완 상공을 통과한 것은 처음입니다. 중국이 예고했던 훈련 기간 이와 유사한 미사일 발사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훈련 첫날 이렇게 전격적으로 단행할 줄은 몰랐습니다. 타이완 당국은 미사일이 날아가는 동안 사이렌을 울리기는커녕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탄착점을 공개한 것도 타이완이 아닌 중국이었습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우리 군당국이 실시간으로 발사 사실과 미사일 궤적을 공개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났습니다. 타이완 국방부는 "미사일이 고각으로 발사돼 대기권 밖으로 비행할 것으로 예상돼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봤다"고 뒤늦게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시 상황으로만 보면 타이완은 미사일이 상공을 가로질러 날아간 사실을 몰랐던 것 아닌지 의심마저 듭니다. 고각으로 발사됐더라도 11발 중 일부는 언제든 타이완에 떨어질 수 있는 데다, 처음으로 중국 미사일이 타이완 상공을 지나갔는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타이완 주변에는 미국 로널드레이건 항모전단도 배치돼 있었지만, 항모전단 역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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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공개한 탄도미사일 탄착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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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군당국과 관영매체들은 이례적으로 훈련 장면을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공개했습니다. 중국 본토에서 미사일이 잇따라 발사되는 영상이 여러 차례 전파를 탔습니다. 중국인들은 환호했습니다. '그럼 그렇지, 중국이 순순히 물러설 리 없지', '드디어 반격이 시작됐구나'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중국, '펠로시 방문 보복' 이유로 무력 통일 모의훈련



이후에도 중국의 군사훈련은 대대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예고했던 타이완 주변 6개 해역과 공역에서 타이완을 포위한 형태로 실탄 사격을 벌였습니다. 타이완은 봉쇄됐습니다. 관영매체들은 '무력 통일 리허설', '무력 통일 모의훈련'이란 말을 공공연하게 꺼냈습니다. 중국이 훈련 기간으로 설정한 시간은 72시간. 중국 최신예 전투기와 폭격기 등 수백 대의 군용기가 동원됐고, 구축함 등 군함도 대거 훈련에 참여했습니다. 수시로 중국 본토와 타이완 사이 해협의 중간선을 넘으며 화력을 과시했습니다. '타이완 통일 72시간 작전'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중국에 훈련 원인을 제공한 탓인지, 긴장을 더 고조시키고 싶지 않은 탓인지, 미국과 타이완은 속수무책에 가까울 정도로 거의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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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해협을 건너는 중국 군용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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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은 펠로시 의장의 타이완 방문이 없었다면 중국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의식해서라도 이런 훈련을 할 수 없었을 것이란 점입니다. '너희가 마지노선을 넘었으니 우리도 마지노선을 넘겠다'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펠로시 의장 방문에 환호했던 타이완인들은 예상 수위를 넘은 중국의 군사훈련에 심리적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른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어기고 외국의 고위 인사가 타이완을 방문하게 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중국이 타이완과 서방에 제대로 보여준 셈입니다. 아울러, 중국 입장에서는 오는 10월로 예상되는 시진핑 주석의 3연임 결정을 앞두고, 내부 결속을 다지면서 애국주의를 다시 끌어올린 '기회'였을 수 있습니다.

중국 정법대 문일현 교수는 "중국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지 않을 경우 어떤 후과가 초래되는지 보여줬다"며 "타이완 문제에 경각심을 갖게 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하지만 펠로시 의장의 타이완 방문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이 국제사회에서 도전 가능한 원칙으로 변질됐다는 점은 앞으로 중국에 도전이 될 수 있다"면서 "중국 입장에서는 득과 실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지성 기자(jis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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