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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인터뷰] ‘이브’ 유선 “내 가능성 스스로 증명해내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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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투데이

유선에게 ‘이브’는 연기 고민과 슬럼프를 느낄 무렵 찾아와 준 선물 같은 드라마였다. 사진ㅣ블레스이엔티


“대학 동기인 황석정 언니가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힘이 나는 칭찬을 많이 해줬어요. 동기로서 좋은 길을 가고 있는 모습에 힘을 받는다고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펑펑 났어요. 연기에 대해 같이 고민하던 배우에게 받는 피드백이라 큰 격려가 됐던 것 같아요.”

배우 유선(46)에게 tvN 수목극 ‘이브’는 단순한 치정 멜로 드라마가 아니었다. 21년간 해온 연기였지만, 고민과 슬럼프를 느낄 무렵 찾아와 준 비상구 같은 작품이었다.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13년 만에 연극무대로 돌아간 직후 만난 대본이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물리적으로 두 작품을 병행하는 건 생고생을 자처하는 일이었지만, 그는 강행군을 펼쳤고 혼신의 힘을 쏟아냈다.

“제겐 정말 중요한 지점에 찾아와 준 특별한 작품이에요. 정말 오랜만에 연기에 대한 고민과 집중의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한소라’ 역은 표현할 수 있는 방법들이 너무 다양해 새롭고 신선했어요. 무엇보다 제 가능성을 봐준 사람들에게 증명해내고 싶었거든요. 죽을 둥 살 둥 해보자 하고 덤볐고, 정말 최선을 다하니까 시청자들과 만나는 지점들이 있더라고요. 스스로에게 용기를 준 고마운 작품이었어요.”

집에 따로 연기 공부방이 있다고 동료 배우들이 증언할 정도로, 그는 이번 작품에 올인했다. 딸을 둔 엄마였지만 남편의 든든한 배려와 응원 속에 “아무 것도 안하고 대본만 봤다”고 한다. 감정신 하나조차 사전 리허설을 엄청나게 했을 정도다. 그래도 “연극과 드라마 두 작품 병행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고 묻자 고개를 흔든다.

“(드라마) 촬영하고 (연극) 공연하고 그런 날이 많았는데 그 시간들이 내게 많은 텐션을 준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연기의 확장을 경험한 것 같아요. 연극은 2인극이라 하는 내내 감정적으로 에너지를 엄청 썼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오히려 더 큰 용기를 줬죠. 결론적으로 소라를 소화해내는데 자신감과 힘을 실어준 것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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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이 발견한 한소라만의 차별점은 ‘천진난만함’이었다. 사진ㅣ블레스이엔티


양쪽을 오가며 에너지를 소모하다 보니 4kg이 저절로 빠졌다. 야윈 유선의 모습은 그에게도 새로웠다. 그는 “여태껏 드라마에서 봤던 얼굴 중 가장 다른 얼굴이 나온 것 같다. 오래 전 몸무게로 돌아가니 새로운 얼굴이 보이더라”고 했다.

‘이브’에서 그는 악역 ‘한소라’를 연기하며 집착과 광기의 절정을 보여줬다. 정·재계 실세 한판로(전국환)의 고명딸로 자신이 원하던 것은 다 가졌던 안하무인이었던 한소라. 완벽하고 화려한 겉모습 속에 정서적 불안과 남편에 대한 집착을 지닌 그는, 모든 것에 최고여야 하는 강박을 드러내며 폭주했다.

그는 이런 ‘한소라’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상류층 악역 스타일을 답습하진 않을까,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한소라만의 차별점은 ‘천진난만함’이었다. 때로는 아이 같은 면모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나 처연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웃고 울렸다.

유선은 “지능적이고 교활한 악녀이기보다는 아버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앞만 보고 최고가 되기 위해 살아온 사람”이라고 했다.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해서, 비뚤어진 인간관계 때문에 이런 인격이 형성된 것”이라며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그런 부분을 살리고 싶었다”고 돌아봤다.

‘한소라’의 최후는 비참했다. 예상했던 순간이지만, 그 역시 충격이 있었다고 한다. 강윤겸(박병은)이 한소라(유선)를 태운 차를 몰아 동반자살을 시도했고, 스스로 불행한 기억을 지우는 중증 무드셀라증후군으로 정신병동에 입원하는 비참한 결말을 맞았다.

유선은 “찍는 내내 ‘어떤 비참한 말로를 맞이할까’ 궁금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이었다”고 얘기했다.

무엇보다 “사고로 얼굴이 망가지고 기억을 잃은 채 정신병원에 있는 소라의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었다”며 “연기를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촬영하러 가는 날 발걸음이 무거웠다”고 그날을 떠올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자 16회 이혼 통보신을 꼽았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붙잡으려고 하는데 결국 이혼이 됐다는 통보를 받는 거잖아요. 절벽 끝에 서 있는 한소라에겐 모든 게 다 무너지는 상황이었죠.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광기의 화장을 하지 않나. 대본으로 봤을 때도 너무 강렬한 신인데 리허설 때도 눈물이 너무 나더라고요. 그 신을 찍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사람들이 ‘조커소라’ ‘처키소라’라고 불러줬는데 앞선 감정들이 응축되어 있는 최종화라 마음이 아팠고 기억에도 많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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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자 16회 이혼 통보신을 꼽았다. 사진ㅣ블레스이엔티


이번 작품에서 베드신까지 소화한 그는 “방송의 파급효과가 커서 나도 놀랐다”며 웃었다.

“어깨까지만 나와 수위가 세지는 않았는데 본 분들이 장면에서 오는 분위기와 느낌 때문에 파격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설명한 그는 “최소한의 인원만 참여해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셨고 일사천리로 계획된 콘티 안에서 순조롭게 촬영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아직 한소라를 떠나보내질 못했다”는 유선은 “이렇게 사랑한 캐릭터가 또 있을까 싶다. 연기적으로 많은 고민을 하던 지점에서 만난 역할이라 내겐 비상구 같은 더 애정이 가는 존재”라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이브’를 통해 다시 전진할 힘을 얻은 그는 “지금도 끝을 알 수 없는 모험을 떠나는 중”이라고 했다.

“물 만난 물고기 같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이 있는데 난 아직 그렇게 놀아본 적이 없어 내게 잘 맞는 옷은 뭘까 그걸 계속 찾아 헤맨 과정인 것 같다”고 여전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차기작을 언급했다.

넷플릭스 ‘종이달’에 출연하는 그는 “밝은 캐릭터를 해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좀 더 가벼워진, 경쾌한 에너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씽긋 웃었다.

[진향희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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