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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따로 없다” 상인들 한숨···물폭탄에 아수라장된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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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 등 중부지역에 기록적인 폭우 이어지고 있는 9일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서초구 진흥아파트 앞 서초대로에서 소방·경찰 등 관계자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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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가 역류해서 맨홀 뚜껑이 들썩거리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출근하는데 차들이 도로에 막 엉켜있는 거예요. 재난영화 한 장면 같았어요.”

80년 만에 수도권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 여파로 9일 서울 곳곳은 아수라장이 됐다. 침수 피해가 유독 심했던 서울 강남 일대에선 도로 곳곳에 버려진 차량들이 보였다. 도로에 방치된 차량이 여기저기 뒤엉켜 강남 일대는 이날 오전 극심한 교통 정체를 빚었다. 침수된 도로에 물은 빠졌지만 물이 몰고 온 토사가 남아 길이 흙빛을 띠었다.

침수피해 상인들 “지옥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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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등 중부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9일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서 상인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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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들은 망연자실했다. 이날 오전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은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냉장고, 피아노, 의자 등 물에 떠내려온 물건들이 시장 바닥에 산더미처럼 쌓였다. 상인들은 쓰레기를 치우거나 가게 안 물을 퍼내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 상인은 “지옥이 따로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강남역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안모씨(40)는 이날 휴업을 공지했다. 안씨는 “가게가 지하 1층에 위치하다보니 침수 피해가 심했다”며 “오전 내내 펌프로 물을 퍼냈는데, 집기며 식자재며 다 못 쓰게 돼 장사를 언제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도서관·공연장 등 시설물 피해도 속출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침수 피해로 이날 하루 임시 휴관했다. 국립국악원 역시 침수 피해로 오는 15일까지 예정된 국립국악원 주최 공연을 연기하거나 취소했다. 서울대는 도서관 등이 침수됐고, 일부 건물에서 붕괴 위험이 감지돼 학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K-직장인’의 숙명···좌충우돌 출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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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등 중부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이어지고 있는 9일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서초구 진흥아파트 앞 서초대로에 전날 쏟아진 폭우로 고립된 차량이 인도에 올라와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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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은 회사 지침에 따라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한 직장인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한 회사 공지에는 “일찍 출근해서 (침수) 수습을 도우라”는 지시가 담겨 있었다. 반면 광화문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A씨는 “재택근무 공지를 오전 7시쯤 받았는데 이미 회사에 도착한 상황이었다”며 “회사에서도 미안해 하더라. 재택근무를 하기 위해 집에 간다”고 했다.

서울 지하철 운행이 일부 중단되자 평소보다 출근을 서두른 직장인도 있었다. 이날 오전 9호선 노량진역과 신논현역 사이 7개역에서 열차 운행이 중단됐다. 개화~노량진 구간, 신논현~중앙보훈병원 구간은 일반 열차만 운행했다. 직장인 유모씨(30)는 “출근길에 지하철 9호선 개화행을 이용했는데 운행 지연이 길었다”며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는데 겨우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고 했다.

‘오전 11시 이후 출근’ 지시를 받은 수도권 행정·공공기관 직원들은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공지가 출근시간과 겹치는 이른 아침에서야 전파됐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비를 피해 새벽에 나왔는데 오전 7시20분쯤 ‘11시까지 출근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 정부서울청사에 근무하는 다른 공무원은 “출근길 버스 안에서 출근시간 조정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했다.

“대통령 어디갔냐” 정부 비판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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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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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없는 폭우에 정부가 ‘컨트롤타워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밤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을 찾지 않고 재택근무를 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모든 인력이 현장 대처에 매진한 상황이었다. 대통령이 현장이나 상황실로 이동하면 보고나 의전에 신경쓸 수밖에 없고, 대처 역량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내부 판단에 따라 집에서 전화로 실시간 보고받고 지시를 내린 것”이라며 “(윤 대통령 자택) 주변에도 침수가 있었지만 대통령이 현장에 나와야겠다고 했다면 나오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피해가 발생하는데 경호의전을 받으면서 나가는 게 적절치 않다는 것은, 이후에도 어제 상황이라면 똑같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임모씨는 “대통령도 재택근무를 하는데 내가 왜 이 난리에 출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날 트위터에서는 ‘무정부 상태’라는 단어가 1만회 이상 언급되며 실시간 트렌드에 올랐다. 누리꾼들은 그간 재난상황 발생시 대통령이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에서 긴급회의를 주재한 사례를 언급하며 “서울이 물바다가 됐는데 대통령이 안 보인다” “애초에 무리하게 집무실을 옮기지 않았다면 됐을 일”이라고 했다.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폭우가 한창이던 8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녁식사를 하며 손으로 ‘브이(V)’를 그린 사진을 올렸다 뭇매를 맞았다. 마포구를 포함해 서울 전역에 호우경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부적절한 게시글이란 비판이 이어지자 박 구청장은 “게시글을 올린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사과한 뒤 해당 게시글을 삭제했다.

강남역 슈퍼맨·서초동 현자 등 시민대응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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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강남역 인근 도로에서 배수관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시민(왼쪽)과 서초구에서 침수된 차량 위에서 해탈한 듯 대기 중인 시민의 모습이 화제가 됐다. SNS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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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에 대처하는 다양한 시민의 모습도 화제가 됐다. 이날 SNS에서는 ‘실시간 강남역 슈퍼맨’이라는 제목과 함께 폭우로 침수된 강남역 인근 도로에서 한 남성이 배수관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의 사진이 확산했다. 사진을 공개한 B씨는 “아저씨 한 분이 폭우로 침수된 강남역 한복판에서 배수로에 쌓인 쓰레기를 맨손으로 건져냈다”며 “덕분에 종아리까지 차올랐던 물도 금방 내려갔다. 슈퍼맨이 따로 없다”고 했다.

서초구 한 아파트 앞에서 침수된 차량의 보닛 위에 올라앉아 비가 멎기를 기다리는 시민의 모습도 회자됐다. 차량 위에서 해탈한 듯 휴대폰을 하고 있는 양복 차림의 이 남성에게는 ‘서초동 현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신림동 일대 침수된 도로에서 수영을 하는 한 시민의 영상도 공개됐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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