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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인도네시아의 손흥민으로, 손흥민의 나라에서 뛴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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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스타 | K리그2 안산 그리너스 아스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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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그리너스 아스나위가 지난달 31일 경기 안산 와∼스타디움에서 열린 전남 드래곤즈와 2022 K리그2 안방 경기에서 선제골을 터뜨린 뒤 기뻐하고 있다. 안산 그리너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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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고 진중했다. 그라운드에서 골을 넣고 아이처럼 웃음을 터뜨리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몇 차례 질문과 답이 오가고 깨달았다. 적어도 축구와 관련해선, 그에게 작은 농담도 통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가볍게 웃으며 건넨 질문도 그에게로 가면 축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되어 돌아왔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에 온 첫 축구선수. <한겨레>가 만난 아스나위 망쿠알람 바하르(23·안산 그리너스)는 그야말로 ‘축진남’(축구에 진심인 남자)의 표본이었다.

아스나위는 한국 팬들에게 향수와 애틋함을 불러일으킨다. 인도네시아에서 받던 고액 연봉을 포기하고 한국에서 도전에 나선 그가 ‘해버지’(해외축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박지성이나 어린 나이로 유럽축구에 뛰어들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까지 오른 손흥민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스나위에겐 ‘인도네시아 박지성’ 혹은 ‘인도네시아 손흥민’ 같은 별명이 따라붙는다.

실제로 아스나위는 박지성·손흥민과 비슷한 점이 많다. 아스나위는 신태용 인도네시아 국가대표팀 감독 조언으로 K리그2(2부리그) 안산에 둥지를 틀었다.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눈에 들어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번에 이적했던 박지성과 닮았다. 축구선수인 아버지 영향으로 축구를 시작했고, 아버지를 중요한 멘토로 삼고 있다는 점은 손흥민과 그의 아버지 손웅정을 연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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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아스나위.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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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스포츠 스타라는 점도 똑같다. 아스나위는 그간 축구보다는 배드민턴이 인기가 많았던 인도네시아에서 축구 돌풍을 이끄는 스타다. 특히 ‘동남아시아 월드컵’으로 불리는 스즈키컵에서 올해 초 준우승을 차지한 건 화룡점정이었다. 여기에 인도네시아에 불고 있는 한류열풍까지 가세해, 한국에서 뛰는 아스나위와 그가 속한 안산 그리너스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각양각색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온 인도네시아인들에겐 아스나위가 더 특별하다. 세종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야누아 찬드라 위라슴바(32)씨는 “한국에서 잘해내는 아스나위 선수를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졌다”라며 “아스나위 선수처럼 나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23일 안산 와∼스타디움에서 열린 인도네시아 팬 데이를 찾아 아스나위가 직접 데뷔골을 넣는 모습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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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아 찬드라 위라슴바씨가 23일 경기 안산 와∼스타디움을 찾아 포스터 속 아스나위의 포즈를 따라 하고 있다.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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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나위 덕분에 안산 구단도 웃고 있다. 안산은 1∼2부 통틀어 국내 축구 구단 가운데 인스타그램 팔로워 숫자가 약 14만6000명으로 가장 많다. 1부리그 주요 구단인 전북 현대(6만2000명), 울산 현대(6만4000명), FC서울(4만1000명) 등도 범접하기 어려운 숫자다. 총 인구가 2억7900만명에 달하는 인도네시아 팬들 덕분이다. 더욱이 연고지 안산시엔 등록 인도네시아인만 약 960명이다. 권익진 안산 마케팅팀 부장은 “팬 데이 때는 전국에서 3019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아스나위가 요즘 정말 ‘핫’하다”고 했다.

이런 뜨거운 열기에도 불구하고, 아스나위는 좀처럼 들뜨지 않는다. 그는 박지성·손흥민과 비교하는 일에 대해선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두 선수는 워낙 높은 위치에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나와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롤모델로 리버풀 오른쪽 풀백 토렌트 알렉산더 아널드를 뽑았는데, 오로지 “공격과 수비 모두 잘하는” 축구 실력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에게 모든 기준은 오로지 축구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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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나위가 23일 김포FC와 경기를 마친 뒤 경기 안산 와∼스타디움을 찾은 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안산 그리너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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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뛰고 싶은 무대를 묻자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더니 “인도네시아는 사실 주목받는 국적은 아니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어느 곳을 뽑기 어렵다. 내 실력을 키워 한 걸음씩 단계를 밟아가고 싶다”고 했다. 어떤 축구선수가 되고 싶냐고 묻자 “그런 문제는 혼자 판단할 수 없다. 팀과 감독님이 같이 생각할 문제”라며 신중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홀가분한’ 표정으로 영상 교육을 받으러 가는 아스나위를 보며, 전담 통역을 맡은 이한결 통역사는 “훈련장에서도 가장 진지한 스타일”이라고 귀띔했다.

어린 시절부터 “다른 꿈은 없었다. 오로지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다”던 그다. 한국에 오면서도 “오직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 고민”했고, 안산을 택한 이유도 “축구와 관련해서 가장 진지하게 접근해줬기 때문”이다. 축구에 대한 진심이 통한 걸까. 아스나위는 단순히 화제를 몰고 다니는 외국인 선수가 아니라, 팀을 지키는 소중한 버팀목이 됐다. 최근 4경기서 데뷔골 포함 2골. 최하위(11위)를 달리던 안산은 아스나위 복귀 뒤 연패를 끊고 9위까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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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나위가 지난달 31일 경기도 안산 와∼스타디움에서 열린 전남 드래곤즈와 2022 K리그2 안방 경기에서 승리한 뒤 팬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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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손흥민과 비교하는 건 “너무 부담스럽다”라며 끝끝내 사양하던 아스나위. 객관적으로 볼 때, 아직 아스나위는 그들에게 미치지 못 한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보기 좋다. 이게 스포츠가 가진 힘”이란 댓글 반응을 보면, 축구로 사람들을 이어주고 있다는 점에선 아스나위 역시 또 다른 의미로 ‘월드 클래스’다.

한국 팬들이 그저 자신을 “인도네시아에서 온 첫 축구선수”로 기억해주길 바라는 아스나위. 그러나 그가 단순히 ‘인도네시아에서 온 첫 축구선수’로만 기억되지는 않으리란 점은 분명하다. 박지성, 손흥민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그랬듯 그 또한 K리그에 또 다른 숨을 불어넣고 있다.

안산/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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