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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매경포럼] 대통령의 대화법과 진실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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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5일 갤럽 발표 기준으로 24%까지 떨어졌다. 이제 대통령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성찰할 때다. 우선 참모들에게 피드백부터 받아야 한다. 로버트 캐플런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리더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부하 직원"이라고 했다. 리더 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대통령의 귀가 열려 있느냐는 것. 대통령이 쓴소리를 받아들일 거라는 믿음 없이 입을 열 참모는 세상에 없다.

부하 직원의 입을 열기 위해 캐플런이 썼던 대화법을 윤 대통령이 참고했으면 한다. 그는 22년간 투자회사 골드만삭스에서 일하면서 부하 직원에게 "내가 뭘 바꿔야 하나요"라고 묻곤 했다. 직원의 첫 대답은 "매우 잘하고 계십니다"였다. 캐플런이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 부하 직원은 "생각나는 게 없다"고 대답했다. 그럴 때면 캐플런은 "함께 앉아서 생각해 보자"고 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에 부하 직원이 비로소 입을 연다. 캐플런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그 경험담을 이렇게 썼다. "듣고 있으면 끔찍한 기분이 듭니다. 직원의 말이 진실이기 때문이죠." 윤 대통령 역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참모들에게 물어야 한다. 진실의 순간 앞에 끔찍한 기분도 느껴야 한다. 그래야 진실을 토대로 국정을 쇄신할 수 있다.

캐플런은 리더들에게 거울 앞에 서서 '내가 듣기 싫어하지만 들을 필요가 있는 것을 말해줄 부하 직원이 5~6명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라고 했다. 대통령 측근 중에 그런 말을 해줄 폴로어가 몇이나 있는지 의문이다. 아무리 '인적 쇄신'을 한다고 한들 예스맨들로 요직을 채운다면 '국정 쇄신'은 불가능하다.

잭 웰치 전 GE 최고경영자(CEO)는 "회사 상황을 가장 잘 모르는 사람이 CEO"라고 했는데 대통령이라고 다를 바 없다. 폴로어는 리더가 듣기 좋은 정보만 골라서 보고하기 때문이다. 앨런 멀럴리가 경영난에 빠진 자동차 회사 포드의 CEO로 부임했을 때였다. 그는 CEO에게 내는 보고서에 색칠을 하라고 했다.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으면 녹색을, 어려움에 봉착해 있으면 노란색을, 계획에서 크게 일탈한 중대 상황이라면 빨간색을 칠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모든 중역들이 녹색 보고서만 냈다. 이처럼 참모들은 부정적인 정보는 리더에게 숨기기 마련이다.

멀럴리가 "녹색 보고서뿐이냐"고 수차례 묻자 한 중역이 용기를 내 빨간색 보고서를 냈다. 멀럴리는 일어나서 그에게 박수를 쳤다. 그의 정직함과 용기에 감사했다. 이후에는 빨간색 보고서가 종종 등장했다. 윤 대통령도 참모들에게 진실을 말할 용기를 격려해야 한다. 해법 없이 문제만 보고한다고 참모를 질책하면 진실은 죽는다.

대통령은 한쪽 의견만 들어서도 안 된다. 반대쪽 논거에 귀를 막으면 오판 가능성이 높아진다.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대화법은 참고할 만하다. 루스벨트는 참모들이 의견을 내면 "동의합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참모들 의견이 상충될 때도 그렇게 했다. 참모들은 대통령 동의에 힘입어 더욱더 치밀하게 논리를 발전시켰다. 루스벨트는 양측의 정교한 의견을 모두 듣고 난 뒤에야 최종 결정을 했다. 윤 대통령이 취학연령을 5세로 낮추는 방안에 대해 찬반 양쪽 의견을 모두 들었다면 섣불리 "취학연령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1961년 쿠바 피그스만 침공이 참담하게 실패한 뒤에 참모들을 바꾸는 대신 '대화의 규칙'을 바꾸었다. 소수 의견을 독려하고 일이 실패할 가능성도 적극 거론하도록 했다. 그는 똑같은 참모진을 이끌고 옛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는 것을 막아냈다. 윤 대통령 역시 더 많은 진실을 듣기 위해 대화법을 쇄신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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