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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미국 주도 ‘칩4’ 숨겨진 목적은 “대만 독점 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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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대만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이달 말~다음달 초쯤 예비회의 예정

“‘동맹’ 표현 붙이는 거 과하고 부적절”

“지정학적 불안 대만 의존도 줄이기”


한겨레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전경.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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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핵심은 대만이다.”

미국 주도의 ‘칩4’ 결성 추진을 둘러싼 추측과 논란이 무성했던 이 달 초,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미국은 대만을 끌어안으려는 것이고, 중국은 거기에 반발하는 것”으로 풀이했다. 한국이 칩4에 참여하느냐, 마느냐보다 대만을 중심에 놓고 봐야 한다는 분석이었다. 그는 우리나라가 ‘기술’(미국)과 ‘시장’(중국)이라는 선택 갈림길에 선다면 “당연히 기술”이라고 했다. ‘기술이 있어야 물건을 만들고, 물건을 만들어야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미국 주도 아래 한국·일본·대만을 아우르는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칩4에 대한 한국의 참여는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한국의 참여 뜻은 이미 미국에 전달됐고, 칩4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한 논의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예비회의가 이 달 말이나 다음 달 초에 열릴 것으로 8일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 문답에서 칩4 참여와 관련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관련 부처와 잘 살피고 논의해서 우리 국익을 잘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칩4 구상의 열쇳말을 대만으로 꼽은 인식은 산업연구원(KIET) 보고서에서도 명확히 드러났다. 산업연구원은 지난 달 펴낸 ‘반도체 지정학 변화와 한국의 진로’에서 “일각에서는 한국의 글로벌 ‘칩 동맹’ 소외 가능성과 위험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면을 들추어보면, 서방의 대만 안보 상황에 대한 위협 인식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며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진정한 목적은 중장기 ‘대’대만 의존도 축소와 자국 점유율 제고”라고 짚었다.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은 물론 유럽연합 지도부와 기업 또한 아시아 의존도를 축소하는 것을 중심 과제로 삼고 있으며, 그 핵심은 곧 “대만의 시장독점 탈피”에 있다는 게 산업연구원의 분석이다. 산업연구원은 “공공연히 무력통일을 주장하고 있는 중국의 압박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서방은 (중국의) 대만 병합과 동시에 첨단 및 성숙 공정 반도체 공급이 차단될 경우 주력산업이 입게 될 궤멸적 타격에 대해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반도체 산업 지원 방안, 주요 인사들의 발언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국 상무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22~2026년 전략 계획’에서 미국 제조업 및 공급망 강화를 제1번 목표로, 이를 위한 제1번 추진 전략으로 국내 첨단 반도체 역량 강화를 든 게 한 예다. 대만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데 따른 위험성을 강조하는 미국·유럽연합 주요 인사들의 경고 목소리도 같은 맥락이다. 지나 러몬드 미국 상무부 장관은 지난 5월 언론 인터뷰에서 “대만 의존은 위험하다”고 했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언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같은 달 세계경제포럼 화상 연설에서 “극소수 외국기업으로부터 반도체를 수입하는 데 따른 의존성과 불확실성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대만을 안으려는 것”(업계 인사)과 “대만 독점 탈피”(연구원)라는 분석은 언뜻 상반된 방향인 것으로 비치지만, ‘단기’와 ‘장기’라는 관점의 차이를 들어내면 결국 같은 지점을 가리킨다. 반도체 제조 기반을 당장 구축하기 어려운 미국 처지에서 우선은 동북아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길게는 자체 제조 역량 강화로 나아갈 것이란 분석이다.

칩4 결성을 중심으로 대만 등 동북아 국가와 협력 관계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 산업연구원은 “제조 역량 열세의 상황에서 향후 공급망 충격에 따른 (미국 내) 수요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단기적인 수급 안정화 목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이준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미국의 속내를 다 알 수는 없으나 대만의 지정학적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큰 것은 사실”이라며 “시간을 두고 천천히 ‘페이드 아웃’(대만 의존도 축소) 전략을 쓸 텐데, 위험 분산의 일차적인 대안은 한국이고, 궁극적인 대안은 (미국) 자국 내로 (제조기반을) 많이 갖고 가는 것”이라고 관측했다. 반도체 제조기반을 구축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이런 점진적인 전략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따라서 칩4 구상이 단기적으로는 한국에 기회 요인으로 꼽힌다. 고부가가치 시스템반도체 수요자인 미국과 유럽연합의 대만 의존에 따른 불안과 공급선 다변화 욕구를 “기술 경쟁력 측면에서 세계 유일의 대안인 한국”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반면, 장기적으로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아시아 의존도 축소 시도에 따라 한국의 반도체 산업 역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연구원은 “2025년을 전후해 공급 과잉 리스크를 중심으로 우리 반도체 산업의 경쟁 환경이 악화할 것으로 전망되며, 세계 경제 및 반도체 수요산업 경기의 불확실성 또한 점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퀄컴·엔비디아 등 설계 전문기업(팹리스)을 통해 세계 반도체 시장을 틀어쥐고 있고, 일본은 반도체 소재·부품 영역에서 독보적이다.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분야에선 대만의 티에스엠시(TSMC)가 부동의 1위다. 한국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메모리 분야에서 최강자 반열에 올라 있는 동시에 파운드리 분야에서 대만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칩4는 미국·일본·한국·대만 네 나라의 반도체 협력을 강화하자는 것으로, 중국을 견제한다는 미국의 구상에서 비롯됐다. 이 때문에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일종의 경제·안보 ‘동맹’이란 해석을 낳기도 했다. 한국의 ‘사드’ 배치 때처럼 중국의 경제 보복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와 전망이 나왔던 배경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칩4와 관련해 “순수하게 경제적인 국익의 차원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중국 등 특정 국가를 배제하거나 폐쇄적인 모임을 만들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칩4 참여 때 중국의 외교적 보복 가능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칩4의 내용과 수준, 방식 등에 따라 (중국의 보복) 가능성은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며 “칩4 예비회의에서 바람직한 방향성에 대해 우리 나름대로의 의견을 제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산업부 당국자는 “칩4에 붙어있는 ‘동맹’이라는 표현은 언론에서 잘못 씌운 닉네임이라며 적절치 않고 너무 많이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실질적인 참여의 주축은 삼성전자와 티에스엠시 등 기업들이고, 이들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인데, 어떻게 동맹을 맺는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반문을 덧붙였다. 그는 “동맹이라면 다른 곳(나라)에는 배타적이라는 것인데, 반도체 분야에서 (최대 시장인) 중국을 디커플링(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칩4는) 공급망 안정을 꾀하기 위한 협의체 내지 대화 채널이라고 보는 게 적절하다”고 말했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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