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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경쟁사 낸드 기술 추월에도 느긋한 삼성전자… “무작정 쌓는다고 다 좋은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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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SK하이닉스가 개발한 업계 최고층 238단 낸드플래시 모습. /SK하이닉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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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이 잇따라 200단 이상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하면서 현재 176단에 머물러 있는 업계 1위 삼성전자의 시장 지배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높은 시장 지배력과 이미 확보하고 있는 기술 등을 고려하면 전혀 급할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200단 이상 낸드는 시장 요구에 따라 언제든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삼성전자 설명이다.

8일 전자 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각) 232단 낸드플래시 양산을 알렸다. 마이크론은 지난 2020년 12월 세계 최초로 176단 낸드를 출하했다고 알렸는데, 1년 7개월여만에 200단 이상 낸드도 업계 처음으로 고객사에 공급한다고 밝힌 것이다. 일각에서는 마이크론이 연달아 세계 최초 적층 기술 선보이며 업계 수위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뛰어넘은 것 아니냐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이어 지난 3일(현지시각) SK하이닉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서 개막한 ‘플래시 메모리 서밋 2022′ 현장에서 238단 낸드 제품을 공개했다. SK하이닉스는 내년 상반기 238단 낸드를 본격 양산할 예정이다.

낸드플래시는 스마트폰이나 PC 등 전자기기에 탑재되는 데이터 저장용 반도체다. 과거에는 단층 주택 형태로 데이터 저장 셀(Cell)를 평면(2D) 구조로 만들었지만, 기술이 고도화하면서 고층 건물처럼 수직(V・vertical) 형태로 높게 쌓는 기술이 고안됐다. 삼성전자가 지난 2013년 23단으로 만든 3차원(3D) V낸드가 시초다. 건물의 층수가 높아지면 사무 공간도 늘어나듯이, 낸드를 쌓아 올리면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공간(Cell)도 늘어나는 구조다. 때문에 얼마나 낸드를 쌓아 올릴 수 있느냐는 기술력의 척도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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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Gb 128단 V낸드가 적용된 기업용 SSD.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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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드 적층의 선두주자는 언제나 삼성전자였다. 100단 이상 6세대 V낸드까지 세계 최초 자리를 도맡아 왔던 것이다. 그러다 2019년 SK하이닉스가 가장 먼저 128단에 다다랐고, 176단에 마이크론이 가장 빨리 도달하면서 삼성전자의 초격차 기술력이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시장 점유율 1위도 다른 회사에 빼앗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낸드를 단순히 높게 쌓아올리는 것만이 기술력의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 예를 들어 200층짜리 건물을 짓는다고 하면 10층짜리 건물보다 사람이 많이 살 수는 있지만, 살기가 좋은지, 건축 비용이 비싸지는 않은지, 시장에서 어떤 가치를 인정받는지는 전혀 별개 문제라는 것이다.

송재혁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장 부사장은 “층수가 높은 아파트라고 해서 무조건 명품 아파트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라며 “높지만 튼튼해야 하고, 높을수록 안전한 고속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출입도 쉽게 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층간소음도 고려해야 할 문제고, 고도제한으로 무작정 높게만 지을 수도 없다”라며 “V낸드 역시 층수는 비슷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반도체 세계에서 어마어마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미세한 차이들이 있다”고 했다.

실제 현재 낸드 시장의 주력 층수는 128단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낸드 기술별 비중은 128단 56.3%으로 절반 이상이다. 3분기에도 128단 낸드는 54.1%, 4분기는 50.1%를 차지한다. 현재 7세대로 분류되는 176단 낸드플래시가 시장 절반 이상으로 올라서는 시점은 내년 2분기쯤이다. 200단 이상 낸드가 두 자릿수 점유율을 갖게 되는 때는 2023년 4분기 이후다. 삼성전자 200단 이상 낸드보다 현재 176단 낸드의 기술적 완성도에 더 집착하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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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낸드플래시 생산라인 등이 있다.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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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관계자는 “더블스택 176단 수율 향상은 이미 128단 싱글스택에서 확보한 에칭(뚫는) 기술을 바탕으로 전 세대(6세대) 대비 약 2배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라며 “더블스택에서 기대하는 절대적 비용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 200단 이상 8세대 V낸드는 동작칩을 확보해서 라인업 확대를 위한 만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2002년 이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1위를 20년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고성능, 고용량, 저전력을 요구하는 기업용 서버와 모바일 시장에서 올해 1분기 기준 각각 57.4%, 42.9%(옴디아 기준)의 절대적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의 낸드 시장 전체 점유율인 35.5%를 크게 상회하는 것이다.

이런 시장 지배적인 점유율을 바탕으로 수익성으로 최대로 끌어올리고 있다. 메모리 시장 침체 전망에도 불구하고, 원가절감과 고용량 매출 비중 확대로 수익성 확보를 노리겠다는 게 삼성전자 전략이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낸드의 높은 가격 탄력 특성을 고려하면 원가경쟁력, 안정적 공급 여력 확보 등이 중요하다”하고 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올해 삼성전자 반도체 영업이익의 28%를 차지하는 낸드 부문은 하반기 20% 이상 가격이 하락해도 원가구조 개선 효과로 영업이익률이 20% 이상 유지될 것이다”라며 “4분기 적자전환이 예상되는 경쟁사 대비 차별화된 수익성을 확보할 전망이다”라고 했다. 이어 김 연구원은 “연간 두 자릿수 낸드 원가절감이 예상되는 가운데 128단 생산비중이 연초 45%에서 연말 75%로 확대될 것이다”라며 “평택 낸드 생산라인 효율화로 원가절감 폭 확대가 예상된다”고 했다.

박진우 기자(nichola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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