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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NGO 발언대] 온전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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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인권운동은 혐오에 맞서 자신을 드러내고 권리를 요구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취약한 정체를 숨기고 규범을 따르면서 얻는 편리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 지정 성별과 이성애 문화에 순응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정체가 들킬지 모를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소위 ‘은둔’의 삶은 나를 설명하는 번거로움을 피해 조용한 일상을 확보하리라는 기대가 있다.

경향신문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배타적인 이성애 가족 규범에서 매번 마주하는 불편에 둔감해지면서 은둔의 시간은 흘러간다. 바깥으로 나오지 말고 조용히 욕구만 충족하며 살 것. 이는 성소수자로 온전한 일상을 누릴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사회적 거절과 불이익에 익숙해지길 종용한다.

최근 동성애자 친구가 결혼하면서 생각이 복잡했다. 가족의 바람에 부응한 ‘정상’ 결혼 이후 그는 부모의 지원과 신혼부부 대상 혜택을 합쳐 집을 마련했다. 동성 파트너라면 접수만 가능했을 혼인신고가 막힘없이 처리될 때, 친구는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앞으로 그는 살면서 재생산의 압박과 성별에 기대되는 역할을 견디며 홀로 속을 삭이거나 가까운 이들을 속이면서 원치 않는 상처를 주고받을지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정상 가족 기준에 부합하며 보험과 주택, 사회적 상승의 기회를 당연하게 누리며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결혼 직후 그가 성소수자 인권운동단체에 후원을 시작한 마음은 좀 더 헤아리게 된다.

모든 성소수자가 자신을 숨길 수 있는 건 아니다. 트랜지션을 진행 중인 다른 동료는 소득의 많은 부분을 호르몬 치료에 쓰고, 성별 재지정 수술을 위한 비용을 모으기 위해 주택 자금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가족과는 일방적인 단절을 겪고, 일자리는 제한적이고 불안정하다. 집을 구한다 해도 남들보다 집주인과 이웃의 눈치를 살핀다. ‘남자예요, 여자예요?’ 주민등록번호와 다른 몸, 변해가는 몸은 참견의 소재부터 이상한 사람이라고 눈총받으며 흔한 계약서에 사인하는 것마저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노동자와 세입자로서 정당한 요구조차 스스로 참고 포기하라고 설득당하기 쉬운 그의 일상은 고립과 고난, 가난에 좀 더 가깝다. 그럼에도 그는 도움을 구하고 요구하기를 택한다. ‘나도 숨은 쉬어야지, 이런 피해가 또 나와서 되겠냐’고, 개인의 자리 대신 정체성으로 가득한 그의 일상은 바득바득 살겠다는 결의의 다른 표현이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차별과 혐오에 반대한다’는 구호를 어떤 방식으로든 체화해온 노력의 집합이다. 남들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진 일상을 구축하기 위해 지지할 이웃을 만들고 취약한 삶의 여건을 바꿔온 일련의 시도는 저마다 성소수자로 온전히 살기 위해 필요한 변화를 요구하는 공동의 실천으로 확장한다. 일상을 확보하기 위한 개별의 시도들을 이제는 보편적인 권리로 이행하며 함께 요구할 때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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