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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최유식의 온차이나] 펠로시 대만 방문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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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시진 등 강경파, 인민해방군 무대응에 망연 자실

서방에선 “대만 힘 실어준 의미 있는 방문”, “4차 대만해협 위기 부를 위험한 행동” 시각 엇갈려

전 세계의 시선을 끈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의 대만 방문이 마무리됐습니다. 중국은 일촉즉발의 충돌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험악한 말을 쏟아냈지만, 막상 펠로시 의장 일행이 대만에 머무르는 동안은 비교적 조용했어요.

중국 내 매파 이론가들과 ‘샤오펀훙’으로 불리는 극단적 애국주의 네티즌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입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정부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데 항의하는 시위 동영상이 올라오기도 했더군요.

서방 언론의 시각은 엇갈렸습니다. 침략 위협에 시달리는 대만에 확실하게 힘을 실어준 의미 있는 방문으로 보는 전문가도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 이런 식으로 중국을 자극하는 건 무모한 일이라는 비판도 적잖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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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지난 3일 대만 타이베이 총통부에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만나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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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방문 동안 조용했던 중국 군

펠로시 의장의 방문을 앞두고 중국 내에서는 호전적인 언사가 쏟아졌습니다.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은 “공군 전투기를 대만 상공에 보내 펠로시가 탄 비행기와 동반 비행을 하자” “미국 전투기가 호송을 하고 대만 상공에 들어오면 전투기를 보내 경고사격을 해 저지하고,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쏴서 격추해야 한다”고 했죠.

‘늑대전사 외교’의 선봉장으로 꼽히는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엄진이대(嚴陣以待·진을 짜고 기다린다)하고 있으며, 중국군은 가만히 앉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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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이 7월30일 웨이보와 트위터 등에 올린 글. 그는 "펠로시 의장이 미군 전투기 호송을 받으면서 대만 상공에 진입하면 격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웨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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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위협에 굴복할 펠로시 의장이나 미군이 아니죠. 로널드 레이건호 항모 전단과 강습상륙함 트리폴리호가 대만 동남쪽 1000㎞ 지점에 대기한 상태에서 펠로시 의장을 태운 공군 수송기가 타이베이 쑹산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중국은 평소처럼 군용기 20여대를 대만방공식별구역(ADIZ) 안으로 들여 보내는 방식으로 항의하는 시늉만 냈어요.

후시진 전 편집장은 네티즌들의 실망이 쏟아지자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나도 실망했지만 그들(중국 군)의 입장도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미중 군사 핫라인 통해 협상한 듯

중국은 펠로시 의장이 한국으로 떠난 뒤인 8월4일에야 대만을 포위하고 대대적인 군사 훈련에 돌입했죠.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미중 양국 군이 핫라인을 가동하면서 상황을 통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펠로시 의장 방문 기간에는 자제했다가 그 뒤에 실력 행사를 하는 것으로 정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8월2일 브리핑에서 ‘미중 양국이 오해나 오판이 없도록 서로 소통하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양국은 각급 채널을 통해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고 답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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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시 의장의 아시아 순방 기간에 대만 동남부 필리핀해에서 대기 중인 로널드 레이건호 항모전단의 행로. /베이징대 SC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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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전문가인 마르신 제르제프스키 유럽가치안보정책센터 대만사무소장은 독일 타게스슈피겔 인터뷰에서 “펠로시 의장의 방문은 미국이 일종의 위협적 태도를 과시한 것”이라면서 “비록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긴 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여기에 있으며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공약을 잊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했습니다.

독일국제안보문제연구소의 앙겔라 스탄젤 박사도 “대만이 단순한 협력 파트너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신호”라면서 “독일 장관들도 대만을 방문해야 한다”고 했어요. 일국양제 약속을 깨고 홍콩을 통합한 중국이 대만까지 손대지 않도록 미국과 유럽연합이 확실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프리드먼이 공개한 비화

반면, 펠로시 의장 개인의 정치적 영예를 위한 방문으로, 민감한 시기에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위험한 행동이라는 지적도 있었어요.

뉴욕타임스의 유명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칼럼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무모한 이유’에서 “이런 상징적 의미의 방문으로 대만이 더 안전해지거나 더 번영할 수 없으며 수많은 나쁜 결과만 불러올 것”이라며 “비할 수 없이 무모하고 위험하며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푸틴은 패전이 명확해질 경우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소형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서 이 시점에 대만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면 미국은 핵무기를 다량 보유한 두 개의 강대국과 동시에 싸워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빠진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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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비판하면서 쓴 칼럼. 이 칼럼은 뉴욕타임스 중국어판에도 실렸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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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주석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의 요구를 들어줬다는 점도 언급했더군요. 미국의 설득과 압박을 받아들여 무인기를 지원해달라는 러시아의 요청을 거부했다는 겁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만약 러시아를 지원하면 중국은 미국과 유럽연합이라는 두 개의 중요한 수출 시장을 잃게 될 것”이라며 시 주석을 압박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백악관 안보팀과 미 국방부가 대만 방문을 반대했는데, 펠로시 의장이 이를 무시해버렸다는 거죠.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8월3일 “펠로시는 대만을 떠났지만 진정한 위기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라며 “3차 대만해협 위기 때보다 더한 ‘4차 대만해협위기’가 벌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최유식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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