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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늘어난 손배소·뒤로 빠진 원청…5개월째 장기화 하는 하이트진로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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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화물연대 홍천 하이트진로 집회, 경찰 통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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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폭등 속 운송료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들의 파업이 5개월째로 접어들며 장기화하고 있다. 노사 간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최근엔 오히려 갈등이 격화하는 분위기다. 그간 공권력 투입으로 70여명이 경찰에 연행됐고, 1명이 구속됐다. 사측이 낸 손해배상 소송 청구액은 27억여원으로 늘었다.

하이트진로 자회사인 수양물류 소속 화물기사들은 지난 3월19일 노동조합을 만들어 부분파업에 나섰고, 6월2일부터 전면 총파업에 나섰다. 이천·청주공장에서 일하는 130여명이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은 동종업계 수준과 비슷해지도록 운송료 30% 인상, 공병운임 인상, 고용승계 및 고정차량 인정, 표준계약서 작성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천·청주공장 사업장에서 파업을 벌여왔고, 지난 2일부터 강원 홍천공장에서 농성 중이다.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노사 간 갈등은 심해졌다. 화물기사들은 사측이 파업 기사 대신 동원한 운송차량이 과적 등 불법을 저질렀다며 진입을 막았는데, 하이트진로는 이로 인해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며 지난 6월17일 수양물류 소속 노동자 11명에게 총 5억7800여만원에 달하는 손배소를 제기했다. 이후 지난달 29일 피해액이 더 늘었다면서 5배 넘게 늘어난 총 27억7500여만원으로 변경했다.

또 지난 6월초부터 공권력 투입이 시작돼 7일 기준 경찰에 연행된 노조원들은 75명이며, 이 중 1명이 구속됐다. 4명은 현재 경찰 조사 중이다. 지난 4일 홍천 공장에서 경찰의 강제해산 시도에 저항해 교량 아래로 뛰어든 5명 중 1명은 현재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권력 투입에 대해 노조는 지난 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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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강원 홍천군 하이트진로 강원공장 입구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사흘째 농성을 이어가자 경찰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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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장기화 이유…“‘특고 노동자’지만 전속성 높은 업무형태, ‘원청’ 교섭 나서야”


파업이 장기화하는 이유는 원청인 하이트진로가 교섭에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수양물류는 하이트진로가 지분 100%를 가진 자회사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수양물류 대표이사는 하이트진로 상무이고, 사내이사 1명과 감사 1명도 하이트진로 전무를 맡고 있다. 파업에 참여한 수양물류 화물 노동자들은 하이트진로의 주류제품만을 길게는 20년 이상 운송해왔다. 일 근로시간도 12시간 가까이 된다. 노조는 “전속성이 높다”면서 “저희는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 하이트진로는 사용자로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트진로는 “직접 계약당사자는 수양물류”라고 선을 긋고 있다.

하이트진로 화물 노동자들의 ‘교섭대상 찾기’ 문제는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보호문제와 맞닿아 있다. ‘특고 노동자’는 노동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하면서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되지 않으면서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해 4월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호)와 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 원칙)를 핵심협약으로 선정했고, 국내에서 지난 4월부터 발효됐는데도 특고 노동자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소속 황규수 변호사는 “특고 위치가 교섭을 더 어렵게 하고 있지만 근무 전속성을 봐야 한다”며 “특히 하이트진로 임원이 수양물류에 이사로도 겸임하고 있다면, 원청(본사)이 가지는 지배력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화물기사들은 지난 6월24일부터 지난 4일까지 수양물류와 교섭을 진행했지만, 운송료 인상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본사 하이트진로 측은 교섭자리에 배석하지 않았다. 정일석 수양물류 대표이사는 지난 4일 화물기사들에게 문자를 보내 “운송료 5% 인상과 공장별 복지기금 1억2000만원 이외 추가적인 인상은 불가하다. 공병 운임료 등 제반문제는 타결 후에 ‘공장별 협의체’에서 충분히 협의하겠다”며 “과격행위에 대해 최소한의 인원은 민형사상 책임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8일 운송복귀를 전제로 이 시한을 넘기면 추가손실에 대한 법적 대응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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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서 농성 중인 화물연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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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기사들도 파업 농성을 계속 이어나간다는 방침이어서 갈등은 더 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공인노무사 출신인 수양물류 사내이사 A씨의 역할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사내이사로 등기를 올린 A씨는 B노사자문 컨설팅업의 대표이사로, B업체는 2011년 노조파괴 문건을 만들었던 유성기업에서 같은 해 11월과 12월에 걸쳐 2200만원 자문료를 받고 자문을 한 사실이 수사과정에서 드러났다. 이 시기는 유성기업이 노조 와해 공작을 위해 창조컨설팅에 자문료를 내고 문건을 만든 시기(2011년 5월~2012년 12월)와 맞물린다.

2017년 대전지방법원 판결문을 보면, A씨는 2011년 11월부터 2012년 1월까지 유성기업 어용노조 위원장, 사무국장과 e메일을 통해 노보(시안), 상집회의자료(수정안), 임금교섭지연공고문, 현판식 기획안 등을 주고 받았다. 이 때문에 유성기업이 창조컨설팅과 별개로 노조파괴를 위한 자문료 대납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2017년 대전고등법원은 “유성기업이 B업체에 자문료를 대납하는 방식으로 유성기업 노조를 지원했다는 의심이 들기는 한다”면서도 “자문료로 대납해 부당노동행위를 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기각했다.

이진수 화물연대 대전지역본부 하이트진로 부지부장은 “현재 하이트진로의 일련의 행위를 보면 노조파괴가 최종 목적인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며 “A씨의 과거전력과 현재 하이트진로와 수양물류에서의 지위·역할을 고려한다면 노동자들의 탄압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공공운수노조는 8일 고용노동부에 하이트진로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신청하는 한편, A씨에 대해서도 수사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하이트진로 측은 A씨의 영입 배경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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