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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명의를 찾아서] 하정훈 서울성모병원 교수 “골다골증 우습게 보면 안돼…자칫 잘못하면 합병증으로 단기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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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지난 6월 21일 서울 강남구 아셈타워에서 만난 하정훈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최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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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대한골대사학회가 골다공증 진료지침에 ‘초고위험군 환자 분류를 새로 넣었다. 국내 골다공증 환자와 내분비내과 의사들은 환호했다. 골다공증은 골밀도가 떨어져 뼈가 약해지는 병이다. 골다공증 환자인지는 골밀도로 판단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골밀도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인 ‘T-score(T 점수)’가 -2.5 이하면 환자로 분류한다.

여기에 골절 여부로 일반군, 고위험군으로 나눠왔다. 고위험군은 ▲골밀도 수치 -2.5 이하 ▲엉덩이 혹은 척추 1회 이상 골절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이들은 추가 골절을 예방하고, 주사제 등을 통해 골밀도를 천천히 높이는 데 집중됐다.

하지만 골다공증 환자의 척추나 대퇴골(넓적다리 뼈)가 부러졌다면 상황이 다르다. 척추뼈나 대퇴골은 웬만해선 부러지지 않는다. 이 뼈가 부러졌다는 것은 건드리기만 해도 뼈가 부러질 수도 있을 정도로 연약한 상태란 뜻이다. 그러나 올해 4월까지만 해도 국내에 이런 ‘초고위험군’을 분류할 기준은 없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런 환자를 치료하려면 골밀도를 단기간에 끌어올려야 하는데, 마땅한 수단이 없었다. 그러니 굳이 따로 분류할 필요도 없었다. 다행히 미국 제약사 암젠이 기존 골다공증 치료제보다 성능이 좋은 ‘이베니티(성분명 로모소주맙)’ 개발에 성공하면서 희망이 보였다.

이베니티는 뼈에 생긴 상처를 갉아먹는 파골세포, 상처에 새로운 뼈를 자라게 하는 조골세포를 조절하는 세계 최초의 이중기전 골다공증 치료제다. 이베니티는 파골세포가 과하게 활동하지 않도록 조절하면서 조골세포를 빠르게 활성화시키는 방식으로 기존 치료제보다 빠르게 골밀도를 끌어올린다.

지난 2019년 미국에서 허가를 받았고, 2020년 미국임상내분비학회(AACE)는 골다공증 초고위험군 기준을 만들어 치료 현장에 적용했다. 하정훈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골다공증 초고위험군 분류 기준 국내 도입 과정을 주도했다. 6개월 간 골다공증 초고위험군 환자들에게 이베니티를 투여하며 데이터를 쌓았다.

그 결과 주사를 맞은 환자들은 3~10년 안에 골절 부상을 입을 확률(FRAX 척도)이 10% 밑으로 떨어졌다. 그렇지 않은 환자의 FRAX는 30%를 넘었다. 초고위험군 10명 중 3명은 3~10년 안에 뼈가 부러지는데, 약을 맞은 환자는 10명 중 1명 정도 그렇단 뜻이다.

하 교수는 “골다공증은 ‘소리 없는 암살자’”라고 했다. 뼈가 부러지기 전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지만, 뼈가 약해진 상태에서 신체 여러 곳이 부러지면 누운 채로 오랜 기간 지내야 하고, 이 경우 폐렴 등 합병증으로 단기간에 사망하고 만다. 하 교수가 “고령의 골다공증 환자를 치료하는 건 목숨을 살리는 일”이라고 했다.

하 교수는 “고령화로 골다공증 환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초고위험군 환자를 돌볼 방안이 생겨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2015년 82만3764명이었던 국내 골다공증 환자 수는 2020년 105만 4892명으로 늘었다. 하 교수를 얼마 전 서울 강남구 아셈타워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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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1일 서울 강남구 아셈타워에서 만난 하정훈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가 골다공증 초고위험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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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골다공증 환자 진료지침에 ‘초고위험군’ 항목은 왜 없었던 건가.

“마땅한 치료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초고위험군은 지금 당장 뼈가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골밀도가 떨어져 있거나, 반복된 골절로 뼈가 약해져 있는 환자들이다. 이런 환자들은 단기간에 골밀도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이전까지는 그런 약이 없었기 때문에 환자군 분류를 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목소리가 의료계에서 더 컸다.”

一 지금은 치료제가 생긴 건가.

“암젠에서 개발한 ‘이베니티’라는 치료제가 세계 최초로 파골세포와 조골세포를 동시에 조절하는 기전을 갖고 있다. 우리 몸속 단백질 중 ‘스클레로스틴’은 조골세포 활동을 억제하고 파골세포 활동을 촉진해 뼈 생성을 방해한다. 이베니티는 스클레로스틴이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식으로 뼈 생성을 역으로 촉진한다.”

一 수치로 증명됐나.

“지난 2016년 골절 위험이 높은 폐경 후 여성 환자 700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이베니티를 투여받은 환자군은 위약군과 비교해 척추 골절 발생 위험이 73% 감소했다. 척추를 포함한 모든 부위에서 골절이 발생할 위험은 38% 줄었다.”

一 한국인 환자 대상 임상시험도 있나

“2021년 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6개월간 서울성모병원을 비롯해 국내 주요 대형병원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기존 약제는 1년을 투여해도 골밀도가 4~5%만 좋아진 반면 이베니티는 투여 6개월 만에 골밀도가 9%씩 좋아졌다.”

一 서울성모병원 한 곳이 아니라, 여러 병원에서 임상을 한 이유가 있나.

“지역별로 인구분포가 달라서 병원 한 곳에서만 연구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

一 골다공증을 연구하는 이유가 있나.

“외할머니가 골다공증으로 고관절이 골절 돼 오랜 기간 누워 지내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 그 때 ‘뼈가 부러졌는데 왜 죽는 걸까’ 생각했다. 대부분 골다공증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의대에 진학해서 골다공증 환자를 보다 보니, 치명적인 병이라는 걸 알게 됐다.”

一 골다공증이 어떻게 사망으로 이어지나.

“고관절이 부러지면 젊은 사람도 2~3개월 누워 있어야 한다. 노인은 척추와 허벅지 뼈만 부러져도 그 정도 기간 입원이 필요하다. 누워 있으면 폐와 심장이 눌려서 잘 움직이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심폐 기능이 떨어지면서 폐렴 같은 호흡기 질환으로 이어진다. 엉덩이나 어깨 등 누워 있을 때 압력을 받는 부위의 피부가 썩어 욕창과 혈전이 생기기도 한다. 골절은 시작일 뿐이고, 각종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른다. 연구 논문에 따르면 여성이 고관절 골절로 사망할 위험은 2.8%로 유방암 사망률과 비슷하다.”

一 골다공증을 미리 진단할 수는 없나.

“진단은 쉽다. 골밀도를 검사하면 된다. 문제는 증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골다공증을 ‘소리 없는 암살자’라고 한다. 고령층에게 골다공증 검사를 받을 것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다. 골다공증은 폐경 이후 여성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만큼 주기적인 검사를 권한다.”

一 골다공증은 전조 증상이 아예 없나.

“최근 진료한 60대 후반의 여성 환자는 어머니가 골다공증을 앓다 대퇴골 골절로 사망한 가족력이 있었다. 검사를 해보니 척추뼈 T 점수가 -3.7까지 떨어진 초고위험군이었다. 폐경이 왔다면 골밀도 검사를 해보는 걸 추천한다. 여성호르몬은 파골세포 활성화를 조절하는 기능이 있는데, 여성호르몬이 줄어들면 파골세포가 과도하게 활성화돼 뼈가 퇴화한다.”

一 목표가 있나.

“‘골다공증 캠페인’을 하고 싶다. 내리막이 많고 도보 정비가 잘 안 된 지역에 골절 환자가 많이 나온다. 어르신들이 골절 위험에서 안전할 수 있게 열악한 환경을 고쳐나가는 캠페인을 하고 싶다.”

최정석 기자(standard@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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