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1 (일)

또래와 잘 놀면서도 짜증·예민…아이의 우울증은 성인과 달라요[김효원의 마음건강 클리닉]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3) 우울하지 않다는 오해

경향신문

중학교 1학년 서윤이(가명)는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하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는 아이였다. 잠도 잘 자지 못하고 죽음에 대해서도 종종 생각하는 것을 보니 우울증이 심한 것 같아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서윤이 엄마는 “친구들이 부르면 용수철처럼 튀어 나가서 늦게까지 놀다가 오는데 무슨 우울증이냐”며 화를 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서윤이는 “일상생활을 하고 친구를 만나는 저는 제가 아닌 것 같아요. 친구를 만나고 온 다음에 지쳐서, 침대에 누워 우는 저만 저인 것 같아요”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서윤이 엄마처럼 아이가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것을 보고, 혹은 휴대폰이나 게임을 밤늦게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가 우울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보호자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청소년 우울증은 성인의 우울증과는 그 모습이 매우 다르다. 우울하고 무기력한 기분보다는 짜증이나 예민함, 심한 감정기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가깝고 편한 사람인 가족에게 짜증을 내곤 한다. 또 두통이나 복통, 어지러움과 같은 신체증상을 보이는데 검사를 해보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자신감이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며, 자포자기로 매사에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자해를 반복적으로 하거나, 자살에 대한 생각을 하는 청소년들도 많다. 이렇게 청소년 우울증의 증상이 성인의 우울증과는 다르다 보니 부모이나 주변 사람들은 우울증이 아니라 ‘버릇이 없는 것’, ‘하기 싫어서 꾀를 부리는 것’, ‘관심을 받으려고 증상을 과장하는 것’ 등으로 오해하기가 쉽다.

청소년기는 또한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하려고 하면서, 또래집단에 심리적으로 의지하게 되는 시기이다. 우울증을 겪은 청소년들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서 받을 수 없는 위로를 또래로부터 받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요즘 학교에서 다양한 방식의 따돌림과 괴롭힘이 많아서, 친구들 그룹에 끼기 위해서 혹은 적어도 제외당하지 않기 위해서 지치고 힘든데도 친구들과의 모임에는 꼭 나가는 경우도 있다.

서윤이는 자신감이 부족하고 항상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아이였다. 공부도 잘하고 싶고 좋은 대학에 진학해서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던 적도 있지만, 작은 실패나 실수에도 쉽게 좌절감을 느끼면서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절망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관심 받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부모님은 기대치에 못 미치는 서윤이를 항상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지적하고 다그치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서윤이는 친구들에게 더 감정적으로 의존하게 되고, 친구들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도 쉽게 상처를 받고, 점점 더 자기의 진솔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고 깊이 있는 관계를 맺기도 어려웠다.

서윤이와 같은 우울증이 있는 청소년에게는 우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겪고 있는 우울감, 무기력감, 외로움에 대해서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고, 부모와 주변 사람들이 아이들의 슬픔과 어려움을 이해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관심을 기울이고, 도움을 주려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청소년에게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줄 수 있다.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뉴스레터]좋은 식습관을 만드는 맛있는 정보
▶ ‘눈에 띄는 경제’와 함께 경제 상식을 레벨 업 해보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