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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만화와 웹툰

'술도녀' 원작 만화가 "한국 독자 만만치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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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원작 웹툰 작가
미깡, 첫 단편 만화집 '거짓말들' 출간
웹툰과 다른 재미 "컷 연출 즐거움 알게 돼"
친족성폭력·과로자살 등 사회 문제 담아
"해롭지 않은, 재밌는 이야기 쓰고 싶다"
한국일보

웹툰 데뷔작 '술꾼도시처녀들'로 알려진 작가 미깡이 19일 한국일보 스튜디오에서 이달 출간한 자신의 단편 만화집 '거짓말들'을 얼굴 앞에 들고 촬영했다. 김하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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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셋이 술 마시는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지난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판을 흔들고 올 하반기 시즌 2로 돌아오는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술꾼도시여자들'은 드라마의 틀을 깬 작품이다. 남자주인공이 없고 서사의 중심은 로맨스가 아니다. 그런데 작가 미깡(42)은 '대박 드라마'의 원작 웹툰인 '술꾼도시처녀들'(술도녀)을 그리고도 한동안 자신을 만화가로 소개하기가 겸연쩍었다고 한다. 운이 좋았다는 생각에서다. 그랬던 그가 "내가 만화가구나"라고 스스로 인정하게 된 작품이 나왔다. 바로 첫 단편 만화집 '거짓말들'이다.

지난 19일 한국일보에서 만난 작가 미깡은 이번 신간을 처음 손에 받아들었을 때 "내가 만화책을 냈구나. 내가 만화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 '술꾼도시처녀들'과 동거 커플의 결혼 고민을 그린 '하면 좋습니까?'와 같이 웹툰 연재물을 모아 출판한 책을 손에 쥐었을 때와는 "굉장히 달랐다"는 설명이다. 출판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라서 그럴 수도 있고 이제 그림에 자신감이 생겨서 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한 장 한 장 컷 구성을 고민하는 '컷 연출'의 재미를 제대로 알게 해준 '거짓말들'은 만화가 미깡에게 확실한 전환점이 됐다.

'거짓말들'은 미깡의 이야기꾼으로서 면모가 잘 살아난 작품이다. 과로로 힘들어 하는 딸을 위한 부모의 거짓말, 사기꾼에게 당하지 않으려 한 거짓말 등 우리 주변의 다면적이고 역설적인 거짓말을 다룬 단편 9편을 모았다. 모두 지극히 현실적인 서사와 캐릭터로 독자를 몰입시킨다. 재미를 더하는 반전의 묘미도 크다. 친족성폭력, 과로자살과 같은 소재로 묵직한 울림도 준다.

작가는 "씁쓸한 뒷맛"을 남길 수 있는 작품을 위해 사전 조사에 공을 들였다. 책의 시작점인 'A의 거짓말'과 그 연작인 '나만 아는 거짓말'을 쓰려고 친족성폭력과 관련된 각종 보고서를 샅샅이 탐독했다. 열 살 소녀가 친구가 털어놓은 친족성폭력 피해 사실을 거짓말이라 생각한 에피소드를 다룬 'A의 거짓말'을 쓰고 난 후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쓴 단편이 책 마지막 장인 '나만 아는 거짓말'이다. "마지막 이야기를 그려줘서 감사하다"는 독자의 말로 그간의 고생은 씻긴 듯하다.
한국일보

술도녀 당시 그림을 너무 못그렸다고 말한 작가 미깡이 신간 '거짓말들'을 기자에게 펼쳐 보이며 이번에는 그림이 좀 늘지 않았느냐고 웃으며 물었다. 김하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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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웹툰은 전 세계 콘텐츠 산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웹툰 영상화의 대표 성공 사례인 '술도녀'의 작가가 생각하는 'K웹툰'의 힘은 무엇일까. 그는 역동성과 속도감, 서사를 끌고 가는 힘, 마지막으로 '만만하지 않은 독자들'을 꼽았다. "박찬욱 감독님도 한국 관객은 웬만한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하셨잖아요. 영화든 만화든 한국인을 만족시키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더 노력하다 보니) 외부에서 보면 (우리 문화의) 수준이 높은 게 아닐까요."

K웹툰의 성장은 반가운 일이지만 9년 차 작가로서 걱정도 있다. 무엇보다 만화를 만화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영상화 시 상업성을 주로 따지는 분위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에서는 '술도녀'처럼 대작은 아니지만 개성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 산업이 커져도 창작자 수익은 그대로인 현실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했다. 주변에서 "돈방석에 앉으셨다면서요?"라는 말까지 들어봤다는 그는 "수억 원씩 버는 작가는 정말 소수"라고 말했다. 플랫폼·기획사 등의 수익은 많아져도 작가의 계약 조건은 향상된 게 없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거짓말들·미깡 지음·문학동네 발행·232쪽·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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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소설가를 꿈꿨던 미깡은 지금도 "재밌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게 계획의 전부다. 한 가지 희망이 더 있다면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고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이야기"이길 바란다. 누구도 소외감으로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거짓말들' 속 인물의 외모나 지역 배경도 다양하게 설정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술도녀' 개정판을 작업 중이다. 약 3년의 연재기간 동안 달라진 그림체를 보정하고 외모 평가와 같은 차별적 장면을 수정하고 있다. 연재 당시 유행어나 사회적 이슈를 활용해서 쓴 대사들도 두루 손보고 있다. "특정한 시공간을 떠나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밌게 보고 이해할 수 있게, 그리고 누구도 불편하지 않도록 다듬는 작업"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기존 3권짜리 '술도녀'를 1권으로 묶은 개정판은 올 하반기 출간 예정이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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