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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박항서의 베트남

박항서, 어머니 100세 생일 맞아 귀향…베트남 주석의 '특별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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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과 모친 백순정 여사. [사진 박항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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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말썽 피우는 아들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무래도 축구를 하다 보니 어머니와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었지요. 지금은 베트남에 머물고 있어서 또 자주 찾아뵙지 못하네요. 드러내 표현한 적은 거의 없지만, 어머니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입니다. 앞으로도 막내 항서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 건강히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도중 ‘어머니’라는 단어가 반복되자 박항서(63) 베트남축구대표팀 감독의 표정과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몸이 불편한 남편 대신 4남1녀를 억척스럽게 키워낸 어머니에게 운동하는 막내는 항상 애틋한 아들이었다. 7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에서 진행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 감독은 “오는 9월 100번째 생신을 맞는 어머니(백순정 여사)를 뵙기 위해 한국에 왔다”면서 “모처럼만에 고향(경남 산청군 생초면)을 찾을 생각을 하니 기대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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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의 모친 백순정 여사(오른쪽)와 부친 故 박록 씨. [사진 박항서 감독]




경남 사천시 축동면 출신으로 ‘축동띠(축동댁)’라 불린 어머니 백 씨는 박 감독 고향 마을에서 ‘여장부’로 통했다. 경찰 공무원으로 재직 중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다리를 다친 남편(故박록 씨)을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지 않던 시절 지역 명문 진주여고(당시 일신여고)를 졸업한, 이른바 ‘신여성’이기도 했다.

박 감독은 “어머니는 그리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아들딸을 모두 서울에서 공부시키고 대학까지 보낸 분”이라면서 “처음엔 약방을 운영하셨는데, 자녀 교육비 지출이 늘자 식당 운영, 소금 도매상 등 여러 가지 일을 하셨다. 어머니 덕분에 나도 서울에 유학 와 축구를 접할 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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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오른쪽 두 번째)은 현역 시절 지칠 줄 모르고 뛰어 '밧데리(배터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중앙포토



가족사를 잘 아는 지인들은 “박 감독의 성정이 모친을 쏙 빼닮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역 시절 체력이 0%로 방전될 때까지 열심히 뛰어 ‘밧데리(배터리)’라 불릴 정도로 지기 싫어하는 성격, 감독이 된 이후 선보인 다정다감한 스킨십 리더십 등이 모두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라는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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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우옌 푸언 쑥 베트남 국가주석(오른쪽)이 박항서 감독 모친 백순정 여사의 100번째 생일을 기념해 증정한 선물. [사진 DJ매니지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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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은 “막내다 보니 어머니께 종종 떼를 쓰기도 했고, 따끔하게 혼이 난 적도 많다”면서 “가장이 되고, 또 아버지가 되고 보니 자상하면서 때때로 단호하셨던 어머니의 마음을 뒤늦게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이어 “베트남에서 대표팀 선수들을 모아 놓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부모님께 효도하자’,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자’, ‘부모님은 현찰을 좋아하신다’를 함께 외친다. 늘 총기 넘치던 어머니가 연세가 늘어 기억이 흐릿해 진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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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게임 남자 축구 우승을 확정한 베트남 선수들이 박항서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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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의 100세 생일을 맞아 특별 휴가를 요청한 박 감독의 애틋한 효심을 전해 들은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 주석은 ‘특별 선물’을 전달했다. 귀국에 앞서 박 감독을 주석궁으로 초대해 한글로 ‘백순정 여사님 만수무강 기원합니다’라고 적힌 글귀와 장수할 '수(壽)'자가 새겨진 액자를 증정하며 격려했다.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으로는 80점, 아들로는 70점을 스스로 매기고 싶다”면서 “늘 내게 100점이셨던 어머니께 받은 만큼 보답하지 못한 것 같아 10점을 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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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베트남축구대표팀 감독은 올 연말 미쓰비시컵(스즈키컵의 새 이름) 우승에 도전한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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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 베트남으로 돌아가면 박 감독은 다시 전쟁을 앞둔 장수로 변신한다. 카타르월드컵 본선행에 실패했지만, 오는 12월 ‘동남아시아 월드컵’이라 불리는 미쓰비시컵(스즈키컵의 새 이름)을 앞두고 있다. 베트남 국민들이 월드컵 만큼이나 열광하는 대회다. 지난 2019년 이 대회에서 10년 만의 우승을 일궈내며 일약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는데, 지난해 4강에서 숙적 태국에 발목을 잡혀 2연패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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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은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모친 백순정 여사와 거스 히딩크 감독(왼쪽)을 꼽았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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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은 “지난 5년 간 베트남 축구의 장기적인 비전을 고민하며 대표팀을 운영했지만, 주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국민들께 기쁨을 주는 것 또한 포기할 수 없는 과제”라면서 “어머님께 물려받은 성품과 거스 히딩크 감독님께 배운 전략적 판단 방법을 활용해 베트남 축구의 선진화를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내년 1월 베트남축구협회와 계약 만료를 앞둔 박 감독은 “오는 10월 경부터 대리인을 통해 재계약 협상을 시작할 예정”이라면서 “계속 베트남 축구에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자리에 연연하진 않겠다. 언젠가 내 역할을 대신할 후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유산을 남기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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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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