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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2030 플라자]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마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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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떻게 죽고 싶어? DNR(심폐소생술 거부) 어디까지 할 거야?”

환자의 연명치료 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지면 결국 보호자들이 DNR 동의서에 서명을 하러 병원을 찾는다. 그날 동료들과 퇴근길에 나누는 대화는 늘 이렇다. 참고로 나는 속칭 ‘콧줄’이라 불리는 ‘L-tube(비위관 영양)’부터 거부하고 싶다. 근무했던 부서가 호스피스 병동이 아닌 암 병동이어서 그런지 연명치료에 매우 부정적인 편이었다. 환자들의 편안한 죽음을 본 적이 없고, 간호사 친구들도 대부분 연명의료에 부정적이다. “난 부모님한테도 미리 DNR 동의서 받아놓을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동료도 있었는데 실천에 옮겼는지는 모르겠다.

조선일보

임종을 앞둔 환자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치료에 대해 연장 또는 중단을 선택할 수 있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이행 기관에서 사용되는 연명의료계획서./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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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죽음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없진 않다. 국내 첫 존엄사 사례로 꼽히는 ‘김 할머니 사건’ 이후 2018년 2월 연명의료 결정 제도가 시행되었고, 연명의료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미리 작성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서류는 크게 3가지가 있다.

첫째, 사전연명의료의향서다. 19세 이상의 건강한 성인이 자신의 연명의료에 대한 의향을 작성하는 문서이다. 둘째, 연명의료계획서다. 말기 환자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자신의 연명의료에 대한 유보나 중단을 작성한다. 셋째, 심폐소생술 거부 서약서(DNR 동의서)다. 소생이 불가능하거나 생명 유지 치료의 도움 없이 생존이 어려운 환자가 본인의 CPR(심폐소생술) 거부를 작성하는 문서이다.

우선 세 가지 서류 모두 의미 없는 연명의료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것으로, 존엄사나 안락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 연명의료 관리 기관 통계에 따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2022년 5월 기준 약 130만명이 작성했다. 이를 준비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아직 나는 임상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절차가 복잡하고 작성 가능한 기관이 한정적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DNR 동의서를 보호자에게 주로 받는 편이다. 즉, 환자의 임종 직전에 CPR을 어디까지 할 것인지를 보호자에게 묻는 것이 보편적이다.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반대하던 나는 ‘DNR 예찬론자’가 되었으나 요양 병원으로 이직한 후 생각이 바뀌었다. 요양 병원은 환자를 살리는 치료가 아닌 장기 요양을 위한 곳으로 인력이 적고 할 수 있는 치료가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중환자는 DNR 동의서를 먼저 써야 입원을 받아주기도 한다. 중환자가 아니면 재원 기간이 길어져 더 큰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경우 보호자가 아무 치료도 하지 말아달라며 DNR 동의서 작성을 원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DNR 예찬론이 사라지고 좀 더 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학 병원은 비싼 치료비를 감당해서라도 환자를 살리려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래서 임종 직전까지 DNR 동의에 대한 결정을 못 내리는 경우가 흔했다. 반면에 요양 병원은 보호자들에게 면회를 요청하거나 연락을 자주 하면 오히려 싫어하기 때문에 DNR 동의서를 받기 어렵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 일을 하든 DNR 동의서가 없는 경우에는 의미 없는 CPR을 반복했다. 어느 병원에서 임종을 맞든 원하는 대로 죽긴 어렵겠다는 결론을 마음속으로 내린 지 오래다.

간호사를 하기 전에는 어떻게 살지를 고민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죽을지 자주 생각한다. 젊다면 위관 영양과 수혈까지만 시도하는 DNR, 늙어서는 집에서 낙상을 해도 좋으니 재가 요양, 치매에 걸리면 공기 좋은 요양원에 보내주고 가족들이 한 번씩 면회를 왔으면 한다. 꽤나 구체적이라 누가 들으면 시한부 환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건 마지막 순간에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는 내 나름의 준비다.

[박소진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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