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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독일의 무지개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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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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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유럽은 노쇠했다는 세평은 그저 호사가들이 지어낸 말 같다. 하지를 맞아 기분 좋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 코로나19로부터 막 해방된 사람들이 뿜어내는 즐거운 기운으로 유럽의 여러 나라 도심(都心)들은 터질 듯했다.

이 활기(活氣)를 굳건하게 지지해주는 것은 철도였다. 유럽의 대도시 도심은 모두 철도로 연결되어 있다.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도 공항은 도시 외곽에 있어 대부분 기차를 타고 도심으로 입성한다. 거대한 중앙역이 도시의 중심을 잡고, 하루에도 수천 편의 열차를 타고 오는 수십만 명의 승객들을 맞이하는 것이다. 취리히 중앙역은 하루 이용객이 도시 인구 40만 명보다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도시의 활기는 다양한 곳에서 온 사람들이 섞여 있어 배가되는 듯했다. 아랍, 터키, 인도, 아프리카에서 온 수많은 이민자들이 도시의 색깔을 다양하게 만들었다. 내가 이번에 돌아본 대부분의 유럽 대도시 역에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아들이기 위한 임시 센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도시의 색깔은 사람들 손에 들린 형형색색 물건들의 색깔로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독일의 뮌헨 중앙역과 광장을 오가는 수많은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무지개 색 물건을 들고 있었다. 6월을 맞은 유럽 도시 곳곳은 ‘퀴어 퍼레이드’ 행렬로 가득했다. 이들은 도시가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는 공간이라는 점을 자신들의 색깔로 입증하고 있었다.

이 다양한 모습을 가능케 하는 비밀을 찾기 위해 나는 역 주변을 수색하듯 걸었다. 뮌헨역에서였다. 멀리 독일 고속열차(ICE)가 승강장에 정차하는 것이 보였다. 열차의 측면에 6가지 색깔로 이뤄진 띠가 그려져 있었다. 빨·주·노·초·파·보, 퀴어 퍼레이드의 무지개와 일치했다. 독일 철도가 퀴어 퍼레이드를 기념해 진행한 ‘레일보우’ 캠페인의 일환. 열차는 소수자 옹호와 개방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정신도 함께 실어 나르고 있었다. 열차를 본 나는 비밀의 실마리를 잡아 낸 느낌을 받았다. 공공 서비스가 다양한 삶의 양식을 지지하고 있다는 감각을 전해주는 이러한 시도가 계속되는 한, 유럽 도시의 활기는 지속될 것 같았다.

조선일보

전현우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거대도시 서울 철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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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우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거대도시 서울 철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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